크리스천라이프

“You are now doing more than you did at first”

요한계시록 2장 19절 말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Revelations 2:19(New International Version)
“I know your deeds, your love and faith, your service and perseverance, and that you are now doing more than you did at first.”

의역: NIV 성경을 기반으로 필자가 재번역하다
“나는 네가 한 일과 너의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투지를 알고 그리고 네가 처음 했던 것보다 지금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는 중임을 알고 있다.

단어 공부
Deed: 행위, 행동, 증서 Service: 서비스. 봉사, 섬김, 공짜, 덤
Perseverance: 인내, 투지, 뚝심, 끈기 More than: …보다 많이, …이상(의)

말씀의 나눔 두아디라 교회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 중 가장 작은 교회로 알려져 있지만 주님은 이 교회를 향해 많은 애착을 드러내신다. 그것은 양으로 보았을 때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글쎄…이것이 작은 교회를 향한 주님의 특별한 관심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세상과 달리 큰 교회와 작은 교회를 바라보는 주님의 관점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귀한 말씀으로 교회가 크던 작든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의 가치는 동일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칭찬이 많았던 교회…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주님의 그 첫째 칭찬은 그들이 했던 사업이다. 교회가 사업을 했다고? 영역 성경은 이것은 “I know your deeds”라 표현해 놓았는데 우리말 성경은 “사업”으로 그리고 영역 성경은 “your deeds – 곧 너의 행위들”이라 표현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교인들의 문제는 믿음은 있지만 행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믿음과 행위는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가야 한다. 그것은 행위는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믿음의 열매로서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빌립보 교회를 섬겼던 두아디라 출신의 자주 장사 루디아를 생각나게 한다. 복음과 사도 바울을 향한 루디아의 그 섬김은 바로 이 두아디라교회에서 받았던 영향은 아닐까?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두 번째 주님의 칭찬은 그들의 사랑과 믿음이다. 우리는 ‘사랑과 믿음’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데 영역 성경은 이것을“your love and faith”로 묶어 놓았다. 사랑과 믿음은 왜 이리 묶여 있는 것일까? 혹시 사랑과 믿음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 사랑은 믿음으로 그리고 믿음은 사랑으로 확인 되어져야 한다.

이것은 앞에서 이미 이야기하는“your deeds – 곧 너의 행위”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사랑 없는 믿음을 이야기할 수 없고 믿음이 없는 사랑을 이야기 할 순 없다. 사랑이 없는 믿음, 믿음이 없는 사랑은 헛껍데기일 뿐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않은가?

믿음을 이야기하는 교회 안에 사랑이 없고 사랑을 이야기하는 교회 안에 믿음이 없다는 것이 이 시대의 교회를 향한 세상의 지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아시아 두아디라의 작은 교회에는 이 사랑과 믿음이 아름답게 공존하고 있었다. 마치 앙꼬가 가득 들어 있는 맛있는 찐빵처럼 말이다. 사랑으로 당신의 믿음을 보여라! 그리고 믿음으로 당신이 사랑이 있음을 알려줘라!

세 번째, 두아디라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은 그들의 섬김과 인내였다. 영역 성경은 이것을 “your service and perseverance”라 표현해 놓았는데 이것은 ‘섬김과 끈기 혹은 뚝심’이라 번역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이것 또한 이미 앞에서 언급한 두아디라교회 성도들의 사업 곧 행위에 속한 것으로 그들은 교회 안에서 서로를 잘 섬겼을 뿐 아니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섬김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는가?

섬김을 지속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무슨 일이 있든지 간에 그 섬김을 멈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와 성도들의 섬김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져야 한다. 교회를 향한 우리의 섬김, 그리고 교회 안에서 서로를 향한 우리의 섬김과 세상을 향한 교회의 섬김은 결코 멈추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섬김이란 시작도 중요하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작은 교회인 두아디라 교회와 성도들이 그것을 잘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들의 이 모습을 보시고 맘껏 칭찬해 주셨다.

네 번째, 두아디라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주님의 칭찬은 그들의 이러한 행위가 처음것보다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것을 영역 성경은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You are now doing more than you did at first.’ 한결같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와 성도들의 삶의 모습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아니… 그들은 처음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나갔다. 이 말씀을 보면 주님은 현재 그들이 하고 있는 일과 과거에 그들이 했던 일을 비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비교하는 일이 마땅한 일일까? 나와 남을 비교하는 일은 마땅한 일이 아니겠으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나이 탓일까? 아이고!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그럴 수 있다. 생물학적인 변화는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당연히 나이를 먹고 힘이 떨어지니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와 성도들의 사랑과 믿음 그리고 섬김과 인내가 줄어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생각해 보라! 하나님과 교회, 남편과 아내, 이웃을 향한 나의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는 지난해 보다 더 못한지 아님 더 나아졌는지… 에베소 교회는 그 첫사랑을 잃어버려 책망 받았지만 작은 두아디라 교회와 성도들은 오히려 그 면에 있어서는 칭찬을 받았다.

작은 교회는 규모가 작아 할 일이 많지 않지만 반면 성도가 많이 없어 하나하나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큰 교회에서는 하지 않거나 피할 수 있는 일을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작은 교회를 섬기는 일이 힘들 수 있지만 생각을 전환시켜 더 많이 섬길 수 있어 감사하고 즐겨야 하지 않을까?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기에 나의 삶의 모습으로 인해 혹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와 성도는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 행위가 없는 교회와 성도는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와 성도는 사랑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이며 믿음이 없는 사랑 또한 거짓 된 것이며 절대로 상대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교회와 성도에게는 섬김과 인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섬김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춰지지 말고 계속되어야 한다. 교회와 성도는 처음과 나중이 한결같아야 한다.

아니… 처음의 행위보다 나중의 행위가 더 많아져야 한다. 이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이며 칭찬받는 성도의 삶인 것이다.

영어 한마디! It costs a bit more than I wanted to spend.
그 값이 내가 쓰려 했던 액수보다 조금 비싸네.

Everybody liked him(her) but none more than I. 모두가 그(여)를 좋아했지만 그 누구도 나만큼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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