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모르쇠를 잡다

“…얼만데”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이나 사물을 숫자로 보고 돈으로 계산하는 인간의 속성을 본다. 돈에 달린 꼬리표를 보고 이를 쫓아가는 사람이 있다. 이는 돈에 쏠리는 사람의 본성이다.

한국전의 피의 세대와 경제 발전의 땀의 세대, 그리고 자본주의 돈의 세대를 살아오면서 사회의 공의와 진리가 희미하거나 약하다. 마치 공의와 진리는 사전에만 있는 말같이 들린다.

예나 지금이나‘구라’가 만연한다. 구라는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의미한다. 거짓과 거짓말은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고 있다. 거짓과 거짓말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뜯어내고 빼앗기 위한‘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이다.

누군지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 확인해 보겠다. 시정하겠다. 그리고는 연락을 안 받는다. 추천이라는 말을 통해 청탁하거나 부정의 사실을 분명하게 대답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넘어가려고 한다. 잘못한 일도 무조건 모른다고 딱 잡아떼려고 모르쇠를 잡는다. 이러한 일은 사회에서 자주 보는 현상이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소리를 크게 지른다고 해서 전하고자 하는 말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다. 말이 소리로만 들리고 의미와 뜻을 가진 단어로 구분되지 못하면 귓등으로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하다. 말이 소리로 들려주려고만 한다면 무슨 말인지 모르게 된다.

말은 뜻을 가진 말소리를 통해 들려지게 해야 의미가 전달된다. 말은 소리의 진동으로 울림이 생겨야 마음으로 느껴지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말이 있고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다.

사람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 대신에 부정으로 보는 마음이 들어있다면 타인에 대하여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한다. 혹 사느라고 행복을 잃어버렸는가, 아니면 잊어버렸는가 보라. 그러면 반드시 감사를 모르고 산 세월만큼 우울하거나 불안한 일상을 보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달프고 지칠 때마다 쉬지도 못하고 아픈 마음을 내려놓고 맡길 만한 곳이 없어 방황하다가 빈 마음을 채워줄 예수와 온전한 기독인을 만나면 비로소 쉼을 얻을 수 있다.

엄마가 자녀에게 말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말하면 동감하고 감동한다. 피곤하지, 힘들지, 괜찮아, 잘했어, 고마워, 정말로 딱 좋아, 그렇지 하면서 말의 집에서 사람을 살리는 말을 골라 해라. 이는 돈도 안 들고 말로 전하는 꽃다발과 같은 공감의 선물이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이 보인다. 말로 사람을 읽는다. 말보다 소중한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 사이에서 모르쇠를 잡는 일은 줄어들게 될 것이다.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