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국방 장관이 된 다윗은 이후로 승승장구,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해진다. 그가 손대는 모든 일에서 모자라거나 넘치는 바가 없었고 공명정대(公明正大)하기까지 했으니 국민의 지지가 사울에서 다윗에게로 완전히 옮겨가고 있었다. 다윗이 민심 안에 차기 대권 주자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사울이 다윗을 더욱더욱 두려워하여”(사무엘상 18:29)
사울은 다윗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성경에 ‘더욱, 더욱’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될 만큼 사울은 다윗을 왕권 입지의 커다란 위협으로 느끼기 시작한다.
결국 다윗을 제거하기로 결정, 눈앞에서 충동적으로 창을 두 번이나 던지는가 하면 전사할 가능성이 높은 살벌한 전쟁터에 내보낸다. 결혼 지참금을 핑계로 적의 포피 백 개를 가져오라는 요구를 하며 블레셋 군대의 손으로 처리해보려 하기도 하고 숙소로 자객을 보내기도 한다. 온갖 시도를 자행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다윗은 살아남는다. 눈앞의 창을 두 번 다 피하고 살벌한 전쟁터에서 승리하는가 하면 적의 포피 이백 개를 갖다 바친다. 직접 죽이려 해도 안 되고 남의 손으로 죽이려 해도 안 된다.
더 똑똑하고 능력 있고 권력까지 갖춘 왕이 자기 수하의 신하 한 사람을 없애기 위해 온갖 인맥과 수단을 동원하지만 다 실패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다윗이 사울보다 똑똑해서? 아니면 억세게 운이 좋아서?… 역사 속 수많은 정치사 속에서 왕이 신하를 제거하려고 할 때 살아남는 신하는 거의 없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살아남았던 걸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결론은 하나였다. 하나님이 다윗을 살리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 교민 사업가 한 분을 알게 되었다. 교민사회의 ‘백종원’이란 별칭을 가진 분이었는데 오클랜드에서 여러 개의 레스토랑과 카페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분이었다. 열고 있는 모든 매장이 요즘 말로 ‘핫 플레이스’가 되어 있었다.
우연히 그 분이 운영하는 한 카페로 초대를 받았고 기쁜 마음으로 매장을 방문했다. 시티 시청 앞에 자리 잡은 멋진 외관, 주문한 음식은 훌륭했다. 단순히 맛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한 재료에 창의적 발상까지 더해진 메뉴 구성이었다. 내부 인테리어와 직원들의 서비스, 어디 하나 흠잡을 것이 없었다.
식사 후 교제하며 외식업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었다. 중학교 때 뉴질랜드로 유학을 와서 첫 식당을 열 때의 설렘과 두려움, 지금에 오기까지 과정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후반부에 문장 하나가 가슴에 확 꽂혔다. “제가 잘해서가 아니고 다 하나님의 은혜예요. 일단 식당 문을 열면 사람들이 그냥 찾아와 주더라고요.”
‘찾아와줬다’는… 특별한 표현이었다. 손님들을 찾아오게 만들었다가 아닌 손님들이 찾아와줬다라는 그 수동적 의미의 표현이. 주체가 ‘내’가 아닌 ‘손님’에게로 넘어가 있는 그 말속에서 ‘하나님이 손님을 보내주셨다’란 의미가 담겨있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면 그 분은 실력은 부족한데 그저 억세게 운이 좋은 사업가에 불과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충분히 자신의 힘으로 이뤘다고 말해도 시시비비 가릴 것 없이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업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님의 발걸음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기까지, 그의 실력과 노력 이상의 어떤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인식하고 있었다.
인간의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손님을 보내주기로 결정하는 하늘의 한 수(一手)가 있다는 것이 그의 표현에서 깊이 묻어 나오고 있던 것이다.
결국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한 수를 인지하느냐 아니냐로 결정되는 것 같다. 또한 그 한 수는 다윗과 사울을 구분 짓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