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부활절이 있는 4월

해가 바뀐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은데 어느덧 4월입니다. 그리고 4월의 첫 주일은 부활절입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큰 명절은 성탄절과 부활절이지만 성탄절보다 더 중요한 날이 부활절일 것입니다.

기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도 그 창시자가 태어난 날을 탄신일(誕辰日)로 기리지만 부활절은 없습니다. 부활이란 놀라운 사건이 있기에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고 또 부활의 약속이 있기에 오늘 우리는 이 어려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부활절이 지난 뒤 처음으로 열린 화요음악회에서는 부활을 생각하며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을 듣기로 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로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빈에서 활동한 후기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 교향곡 작곡가인 말러는 모두 10개의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1번에서 9번까지의 교향곡에 ‘대지의 노래’라는 작품까지 합쳐 10개입니다.

사실상 ‘대지의 노래’가 그의 9번째 교향곡이었지만 선배인 베토벤이나 브루크너(Bruckner)가 9개의 교향곡을 작곡하고 죽었기에 죽음을 두려워한 말러는 9번이란 번호를 붙이지 않고 ‘대지의 노래’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이 곡을 작곡한 뒤에 그는 9번 교향곡을 작곡했고 그 다음 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국 9번 교향곡이 그의 마지막 교향곡이 되었고 이 곡에 흐르고 있는 주제는 아이로니칼하게도 바로 ‘죽음’입니다. 죽음이 두려워 9번이란 번호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은 9번이 된 교향곡을 완성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말러의 삶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언젠간 내 세상이 올 것이다”
교향곡 작곡가였던 말러는 평소에 “나는 교향곡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교향곡엔 온갖 세속의 소음이 섞여 있습니다. 유대인이었기에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기에 그의 삶을 지배했던 깊은 슬픔과 생전에 형제와 어린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며 느꼈던 죽음의 기운이 그의 교향곡에 짙게 서려 있습니다. 살아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는 항상 “언젠간 내 세상이 올 것이다”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결국 ‘내 세상’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가 죽은 뒤 50년이 지난 1960년대에 드디어 ‘그(말러)의 세상’이 왔습니다. 미국이 자랑하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은 말러 음악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지휘자로 명성을 얻자 그는 망각 속에 묻혀있던 말러의 교향곡을 꺼내서 차례로 녹음했습니다.

번스타인 덕분에 말러의 교향곡들은 빛을 보았고 이를 들은 사람들은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말러의 열풍이 일었습니다. 그 열풍은 잠깐으로 끝나지 않고 오늘까지 거의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입니다.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그들을 통칭하는 ‘말러리안(Mahlerian)’이라는 단어까지 생겼을 정도입니다.

쉽지 않은 말러의 음악
말러의 음악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좌절하고, 분노하고, 불안에 사로잡혀 살았던 그의 삶처럼 그의 음악은 어렵고, 불안정하고, 시끄럽고, 외롭다가 가끔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아픔의 리듬 속에 갇힌 날, 그런 날엔 피난처라고 생각하고 말러의 음악에 도전해 보자. 무언가가 들릴지도 모른다.’라고 한 롤랑 바르트의 말을 수긍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그의 삶이 오롯이 담긴 말러의 교향곡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러는 음악과 삶을 분리하지 않았던 작곡가였고 전 생애를 통해 삶과 죽음의 문제에 집착했습니다. 그에게 교향곡이란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자 대답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교향곡 2번은 사후세계와 부활에 대한 말러의 생각을 담은 곡입니다. 베토벤을 숭배할 정도로 존경했던 말러는 이 곡에 성악을 주입했습니다. 베토벤은 합창교향곡에서 환희와 평화를 노래했지만 말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곡에서 부활의 합창을 부르며 일어서라고 외쳤습니다.

말러(Gustav Mahler) 교향곡 2번 부활
그의 첫 번째 교향곡 1번은 ‘거인(Titan)’이라 불립니다. 젊은 청년이 삶 속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그렸기에 ‘거인’이란 이름으로 불렸는데 이 1번 교향곡에서 영웅의 모습으로 묘사된 ‘거인’은 아마도 말러 자신일 것입니다. 이 거인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2번 교향곡은 시작됩니다.

작곡자 말러는 이렇게 이 곡을 설명합니다. “나는 1악장을 ‘장례식’이라 칭한다. 교향곡 1번 영웅의 장례식이다. 이제 나는 그를 땅에 묻고 그의 일생을 추적한다. 이와 더불어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있다.

<당신은 왜 사는가? 어찌하여 당신은 고통받는가? 인생은 단지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농담에 불과한 것인가>.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질문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답은 마지막 악장에 나타난다.”

이 곡은 모두 5악장으로 되어있습니다. 연주 시간이 약 80분이나 되는 길고 거창한 곡이지만 말러가 제시한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서는 우리는 마지막 5악장까지 들어야만 합니다.

곡의 구성
1악장 말러 자신이 장례식이라고 부른 이 악장에서 말러는 ‘죽음 이후에 삶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트레몰로 주법의 도입부부터 강렬한 이 악장은 ‘빠르고 장엄하게’ 연주되는 장송행진곡입니다.

장중하기보다는 오히려 격렬한 현악기들의 움직임은 죽음에 저항하는 반면에 목관 악기들은 밝고 희망적인 소리를 냅니다. 그러다가 별안간 모든 음이 한꺼번에 무너져내려 음악이 전쟁터를 방불하게 되며 마무리됩니다.

2악장 음울하고 비극적인 1악장과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이 악장은 말러의 표현대로 ‘영웅의 일생을 한순간 비추었던 햇빛’과도 같이 찬란하고 아름답습니다. 두 악장의 성격이 너무나 대조적이기에 말러는 악보에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적어도 5분 이상 쉬어야 한다는 주의사항까지 넣었을 것입니다.

3악장 ‘온화하게 흘러가는 움직임으로’라는 지시어가 적혀 있는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팀파니의 타격으로 시작한 뒤 수선스럽게 반복되는 현의 움직임, 허풍스러운 클라리넷, 그리고 갑자기 터져 나오는 불협화음이 뒤섞인 어릿광대 풍의 연주가 펼쳐집니다. 비틀어지고 덧없는 우리 삶의 여정 속에서 말러는 한 줄기 빛, ‘근원의 빛’(Urlicht)을 찾아내려 합니다.

4악장 ‘극히 장엄하게 그러나 간결하게’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는 이 악장은 3악장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등장하는 알토 독창으로 시작합니다. 노래의 제목은 ‘근원의 빛(Urlicht)’입니다. ‘오 붉은 장미여’로 시작하여 ‘사랑하는 신은 나에게 빛을 주실 것이다. 영원한 행복과 생명을 얻기까지 비춰줄 것이다.’라고 신음하듯 끝나는 아름다운 선율의 이 노래는 방황에서 구원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5악장 이 교향곡 ‘부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악장입니다. ‘절망의 울부짖음’이라 표현되는 충격적인 불협화음으로 시작된 뒤 심판 날의 무시무시한 광경이 펼쳐집니다. ‘죽음 뒤에 삶이 있는가?’라는 1악장의 질문과 ‘삶 이란 결국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는 3악장의 냉소에 대한 해답이 담겨 있는 악장입니다.

곡이 끝나기 전 마지막에 정적이 깔리고 엄숙하고 장중한 합창이 시작됩니다. ‘부활하리라, 짧은 안식 후에 나의 죽은 육신은 부활하리라!’로 시작하여 이윽고 ‘나는 살기 위해 죽으리라! 부활하리라, 내 영혼이여. 너는 일순간 부활하리라! 그대가 받은 고통 그것이 그대를 신에게 인도하리라!’’고 힘차고 경건하게 곡이 끝납니다.

곡은 끝났지만
곡은 끝났지만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부활하리라’고 절규하며 끝난 마지막 합창 소리의 여운이 계속 머릿속을 울리는 가운데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한 11:25~26)’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명(耳鳴)처럼 귓속에서 울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우리가 들은 음반은 Mahler를 망각 속에서 꺼내 빛을 보게 한 Bernstein이 지휘한 London Symphony Orchestra의 연주였습니다. Soloists는 Janet Baker와 Sheila Armstrong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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