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아이를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키우면 아이도 엄마도 행복할 수 있어

안녕하세요 강혜진 작가입니다. 젊다고도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딱 좋은 나이, 사십 대 초반입니다. 6개월간 머물렀던 뉴질랜드에서의 기억이 강렬해 한국에 살면서도 늘 뉴질랜드를 떠올립니다.

비가 올 때면 뉴질랜드의 공기 냄새가 느껴지고, 마트에서 아보카도를 볼 때면 뒤뜰에서 아보카도가 툭 떨어지던 소리, 수국이 피는 계절이면 수국으로 장식한 뉴질랜드 홈메이드 케이크가 떠오릅니다. 나는 서울 강서구에서 6살 딸과 남편과 함께 살고 있어요.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유학을 와 대학을 졸업하고 광화문의 외국계 회사에 근무했습니다. 그 후 대학생 때부터 몸담았던 국제 선교단체인 미국 YWAM(Youth With a Mission 예수전도단)에서 귀납적 성경 공부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YWAM에서 대학사역 간사로 섬겼습니다.

예수전도단은 각 대학교 안에 동아리 형태로 자리 잡고 있는데 간사들이 그 동아리의 학생들을 돌봅니다. 겨울이면 학생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아웃리치를 갑니다. 나는 대학생들과 함께 브라질로 가서 1.5세와 2세 교포 청년들을 만나고 상담하는 아웃리치를 다녀왔습니다.

내가 뉴질랜드 땅을 처음 밟은 것은 2013년 1월이었습니다.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서 마타마타로 가던 길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십 대 시절부터 영어를 무척 좋아해서 외국에 대한 동경이 컸기에 아름다운 뉴질랜드의 풍경에 매료되어 가는 곳마다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지요. 당시 저는 35살로 한창 진로를 고민하던 중 기도 끝에 뉴질랜드에 가게 되었습니다.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아 누굴 만나든지 그 사람의 유년 시절과 살아온 삶의 어떤 경험이 저 사람의 성격과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을까 하는 것에 늘 관심의 촉이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언젠가는 상담학을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유학을 가자고 다짐하며 어릴 때부터 꿈이던 미국 유학을 위해 입시 과외로 생활비를 벌며 토플 공부를 했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보낼 에세이를 쓰려고 컴퓨터를 켜기만 하면, 깜빡이는 화면 앞에서 한 줄도 쓰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작정 기도를 하던 중 ‘학위를 통해서만 사람을 살리는 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의 꿈을 접고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가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뉴질랜드 YWAM의 Family Ministries School 가족상담학교(이하 FMS)로 가게 되었습니다.

FMS에는 총 8쌍의 부부가 있었고 나만 싱글이었습니다. 독일, 러시아, 호주, 미국교포, 싱가포르, 스위스, 미국, 스웨덴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부부와 그의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녀들은 갓난아이부터 청소년까지 그 연령도 그 국적만큼이나 다양했고 부부 역시 신혼여행을 그곳으로 온 부부터 쉰이 넘은 부부까지 다양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신분으로 FMS를 밟은 것은 나에게 크나큰 축복의 기회였습니다.

그곳에서 내 유년에 대해, 친정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치유 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대구 출신으로 남존여비가 강한 곳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자수성가형의 한국 아버지였지요. 가족을 위해 주말도 없이 새벽 일찍부터 일했습니다.

이십 대부터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 취직해서 일을 배우고 알뜰히 모은 돈으로 작은 한옥집, 당신만의 작은 공장을 마련했습니다. 그 열심만큼 다혈질이며 아들 우상이 있어서 나는 늘 피해의식과 상처를 안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FMS 렉쳐 기간 중 아주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되어 하나님(성령님)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힐링해주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강사가 개인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상담해주며 기도해줬는데 상담을 마치고 나의 숙소로 돌아온 나는 책상 위에 놓인 가족사진 속 아버지를 보며 오열하듯 울고 말았습니다.

그전까지는 돈만 열심히 벌었지 딸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말을 해주지 못한 아버지, 포옹도 해줄 줄 모르는 아버지, 다혈질로 화를 불쑥불쑥 내서 나의 마음에 상처를 준 아버지로만 생각했는데 그날 본 사진 속 아버지는 한없이 약하고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배움도, 부모님이 도와준 밑천도 없이 세상과 싸우며 삼 남매를 키워온, 무서운 세상 속에서 하나님도 모른 채 스스로 두려움을 극복해야 했던 애처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응어리가 풀어지며 먼 타국 땅에서 아버지와 카톡을 주고받고, 아버지는 어린 시절 가장 아닌 가장처럼 세상과 맞섰던 이야기를 길게 보내왔습니다.

아버지와의 응어리가 풀어지자 나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고 하나님 아버지가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FMS의 렉쳐기간이 끝나고 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로 1인 아웃리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부부들은 모두 어린 아이가 있거나 직장 문제가 있어 고국으로 돌아갔기에 나 혼자만 아웃리치를 한 것이지요. 아웃리치를 하며 나는 유학생, 1.5세 청소년,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역기능과 순기능 가정에 대한 강의, 개인의 퍼스낼러티에 관련한 강의, 결혼과 이성 교제 강의 등을 주로 했습니다. 개인적인 상담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만났고 가정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러기 엄마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했는데요. 그분들을 통해 남편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당시는 떨어져 있으면 부부가 서로 싸울 일도 없어 편하고, 아이와 남편이 가끔 보니까 더 애틋해서 차라리 편하다는 말을 들으며 ‘그래도 부부는 같이 있어야 하는데’라는 정답이 내 속에 자리 잡았지만, 결혼을 한 후 지경이 넓어지며 기러기 엄마들이 그때 웃으며 한 말들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한인 청년들을 만나며 나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청소년과 청년들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순수한 1.5세, 또는 2세 아이들은 속이 깊고 생각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에서의 청년들보다 더 부모의 삶이나 갈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삶에 관심이 많고 그만큼 걱정도 많아 보였습니다. 그중 한 남자 청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엄마아빠는 늘 나를 통해 대화하세요. 두 분이 직접 대화하지 않고 ‘태헌(가명)아, 아빠 식사 하시라고 해’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시죠.” 한국에서 포지션이 확실했던 아빠가 이민을 와서 사회적 위치가 애매해져서 갈등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브라질에서도 뉴질랜드에서도 청년들은 할 이야기가 참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 뉴질랜드에 젊은 사역자가 없기에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아웃리치를 마치고 나는 한국의 교회에서도 부부관계 강의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고 또 이듬해 딸을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로스쿨을 다니고 있었는데, FMS와 뉴질랜드의 청년과 부부들을 만나며 나눈 이야기들을 생각하며 기도 끝에 변호사의 꿈을 미루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영유아 시기, 안정적인 가정환경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5월 아이를 낳고 올해 3월까지 기관조차 보내지 않고 아이를 키우며 셀 수 없이 많은 묵상을 했습니다.

엄마가 되어 둘러보니 많은 엄마들이 인생의 골든 타임인 육아의 때를 슬픔과 관계의 아픔, 경력 단절의 아쉬움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키우면 아이도 엄마도 행복할 수 있는데 ‘내 뜻’대로 키우며 힘겨루기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는 모든 엄마들의 공통된 고민입니다.

그래서 엄마들의 마음을 따뜻이 데워주기 위해, 육아의 이야기들을 기록한 것을 지난 12월 책으로 엮게 되었습니다. 자발적 경력 단절 여성(경단녀) 로스쿨생 엄마의 육아법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나의 책은 세대를 넘나들며 60대, 70대 어머니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하고, 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싱글 시절 뉴질랜드에서의 배움 때문입니다. FMS뿐 아니라 초등학생 아이, 십 대 아이, 청년들, 엄마들과 만났던 경험 덕분이지요.

뉴질랜드에 머물 때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한 선교사님께 책을 보내드리자 본지의 발행인을 적극 추천해주시어 이렇게 책을 연재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회에 다시 한번 하나님이 주신 마음을 나누고, 그 다음 회부터는 저의 책을 만나보시게 될 것입니다.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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