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세계관과 문화에 대하여

뉴질랜드 마오리 원주민들을 사역하면서 내가 섬기는 교회의 교인이 세상을 떠나 장례예배를 치른 일이 있다.

고인의 장지는 교회와 매우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 북부 끝에 위치한 테하푸하(Tehapuha) 해안가 고인의 고향이었는데 그곳은 일반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였고 이백여 명의 마오리 원주민들만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곳이었다.

그곳 장지에 도착해보니 그곳에는 이미 현지의 마오리 지도자들과 많은 어린이들과 청장년들이 마오리 공동체 집회 장소인 ‘마래(Marae)’에 모여 있었고, 마오리 민족종교인 ‘라타나(Ratana)’종교의 지도자(목사와 같은 지위) 두 명이 장례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다행히 나는 먼저 라타나 종교의 지도자와 상의 후 장례예배를 순서대로 인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조상 때부터 보존하고 있는 공동묘지에서 모든 행사를 은혜롭게 마쳤다.

만일 내가 장지에 도착해서 마오리 원주민 장례예배 형식을 무시하고 우리의 문화대로 행하기 위하여 마오리 민족종교의 지도자와 불협화음이 있었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까?

그곳 폐쇄된 부락에서 그들의 종교대로 살고 있는 마오리 원주민들에게 장례예배 도중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전하면서 고인의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애쓰는 기독교 선교사의 모습을 진정으로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마음속에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끼쳤을 것이다.

마오리 원주민들의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해와 달과 바다와 나무 등 자연에 대한 정령숭배(Animism of the Maori people)의 세계관을 복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현지 선교사의 사명일 것이다.

사도행전 14장 8~18절에는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발생했던 사건을 볼 수 있다. 바울(Paul)과 바나바(Barnabas)는 루스드라(Lystra)에서 나면서부터 걸어보지 못했던 사람을 복음과 주의 능력으로 치유하였다.

이로 인해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그들이 섬기는 신으로 숭배하려 하자 두 사도는 그들에게 천지를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전파함으로써 루스드라 인들이 두 사도에게 제사를 하지 않게 하였다.

이 내용에 대해 찰스 크래프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의사전달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기본적인 가정들, 즉 세계관의 차이에서 연유된다. 사도들의 경우, 기적이란 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루스드라 사람들은 이러한 기적은 인간의 형상을 입고 그들에게 내려오기로 한 그들이 믿고 있는 쓰스와 허매가 행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세계관의 차이점은 다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전한 메시지를 오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세계관 정의
한 문화가 그 문화권 사람들을 위해 창조한 세상은 독특한 세계이며, 다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는 세계와는 다르다. 각 개인의 머릿속에 주입된 세계가 그가 아는 유일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실제 세상이 아니고 그 세상에 대한 그가 인식한 것이며, 자기 경험의 상징적 해석이다. 하지만 그에겐 그것이 유일한 세상이다.

그레이스 신학교의 탐 스톨터는 세계관을 이렇게 정의한다. “세계관은 실제의 본질에 관한 우리의 기초적 신념들과 전제들로 구성되어있으며, 세계관은 실제와 상호 작용하는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공식화한 암시적 규범들이다. 또한 세계관은 한 문화권의 일상적 가치와 신념과 행위를 지탱한다.”

그는 계속하여 세계관의 본질에 관하여 “세계관은 문화의 가장 깊은 수준이며, 암시적이고 의심받지 않고 검토되지도 않아서 말로 표현하기가 아주 힘들다. 또한 세계관은 인식과 일치할 때까지 인식과 사고를 결정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마틴 마티는 “세계관이란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가구를 갖춘 ‘정신의 방’이다” 라고 말했다.

세계관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보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세상을 보는 것이다. 즉 우리는 안경을 착용했을 때와 같이 세계관은 우리가 보고 있는 주변 세상을 규정한다.

또한 다른 문화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실체를 비라보는 가장 기초적인 차원에서조차도 그 보는 관점이 다르다. 우리가 안경을 착용하는 것처럼 우리가 자신의 세계관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세계관을 더 잘 파악한다.

세계관은 사물을 보는 방식을 확신시켜 주며, 또한 가치의 차원에서 소유한 문화적 규범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함으로 인해 다른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우리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정신 이상자들이고 사물의 실상을 모르는 자들이다. 만일 세계관이 흔들린다면 심각하게 동요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세계관이 흔들리게 되면, 그것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세상이 더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무의미하다고 느끼는 것보다 비참한 것은 없다. 의미가 없다면 죽음조차 감내할 수 있다” 라고 클리포드 기어츠는 지적하고 있다.

세계관과 문화
문화에 대해 다룰 때 개인의 세계관, 가족의 세계관, 공동체의 세계관, 하부 문화의 세계관, 민족의 세계관, 다국가적 세계관 등에 대해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성을 고려할 때. 빈민들, 공장 노동자들, 농민들, 여성들, 젊은이들, 농아들 등과 같이 모든 그룹들이 문화적 범주를 초월하여 공통적으로 소유하는 세계관적 가정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가능하다.

세계관은 문화를 이해할 때 필요로 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초자연적 문화 사회에서는 종교적 하부 체계들이 경제적인 것이나, 가시적인 물질계, 또는 전체 문화의 다른 어떤 측면들보다 해당 문화의 세계관에 더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는 경제와 관련한 하부 체계들과 가시적인 물질계에 대한 통제가 종교적 하부 체계보다 세계관에 더 영향을 끼친다.

그래서 초점에 대한 이러한 차이로 인해 각 사회들을 초자연 지향적 세계관, 물질 지향적 세계관, 사회관계 지향적 세계관, 또는 그 외 다른 것들을 강조하는 세계관 등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

종교와 유사한 다른 것을 강조하는 세계관의 예
몇 년 전에 북한에서 홍수가 발생하여 많은 피해가 있었다. 이 당시에 각 가정에 걸려있던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홍수에 떠내려 가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본 북한 주민들이 그 사진을 건지려고 급한 격류 물에 뛰어드는 일이 발생하여 심지어는 죽는 사람이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소년 시절부터 주체사상에 대한 철저한 김일성 우상숭배 교육으로 각인 되어진 북한 주민의 김일성 종교식의 세계관적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선교적인 전략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북한 주민의 세계관적 가정들이 장점이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유는, 상호간의 관계가 더 밀접한 사회에 속한 하부 그룹 사이 일수록 세계관적 가정들, 가치들, 그리고 충성심의 정도 면에서, 규모가 크고 외부로부터 영향을 강하게 받는 다원적 사회의 구성원들보다 변화가 작기 때문에 집중적인 선교전략(Intensive Mission Strategy)을 사용한다면 시간과 자원에 있어서 다원적 사회보다 용이하게 복음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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