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나 다움에 대하여

아닌 것

당신의 나이는 당신이 아니다.
당신이 입는 옷의 크기도
몸무게와 머리 색깔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이름도 두 뺨의 보조개도 당신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이 읽은 모든 책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말이다.

당신은 아침에 잠긴 목소리이고
당신이 미처 감추지 못한 미소이다.

당신은 당신 웃음 속 사랑스러움이고
당신이 흘린 모든 눈물이다.

당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걸 알 때
당신이 목청껏 부르는 노래
당신이 여행한 장소들
당신이 안식처라고 부르는 곳이 당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것 들이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당신 방에 걸린 사진들이고
당신이 꿈꾸는 미래이다.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당신 아닌 그 모든 것들로
자신을 정의하기로 결정한 순간에는.
– 에린 핸슨 –

이 시를 읽고 들으면서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생각합니다. 내 마음의 한 귀퉁이에 걸린 사진은 무엇인가, 나는 무슨 책을 읽었고 무엇을 사랑하며, 무엇 때문에 눈물을 흘렸는지를요.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생각합니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잊어버리고, 나 아니지만 나인 것처럼 여겨지는 어떤 것에 목매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누가 등 떠밀어 그러는 게 아니고 내가 그렇게 정의하기로 결정한 순간이라는 말은 그래서 더 쓰라립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매우 좋아합니다. 새로 생긴 친구의 이야기를 할 때도 어른은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목소리를 가졌지?’라든가 “그 사람은 어떤 놀이를 좋아하지?’, ‘나비를 채집하니?’ 하는 질문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몇 살인가?’라든가, ‘형제는 몇 명인가?’, ‘몸무게는 얼마쯤 되지?’, ‘그의 아버지는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니?’ 하는 따위의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나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어쩌면 본질은 찾아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숫자로 전환되어 수치로 가늠하게 되는 어떤 것들로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요.

문득 떠오른 옛날 기억이 있습니다. 나이 들어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 선이란 걸 본 적 있습니다. 어느 호텔 커피숍(그땐 그랬어요)에서 마주 앉은 그 남자는 ‘저에 대해 무슨 얘기 들으셨습니까?’ 해서 소개해준 사람한테 들은 대로 ‘군법무관이시란 얘기만 들었어요.’ 했더니 그 남자가 ‘그럼 다 들으셨네요.’ 하더라구요.

‘그게 다에요?’ 물으니 그렇다는 그 남자하고는 할 얘기가 별로 없어서 커피만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자신을 그렇게 정의한 그 사람은 그저 그만큼만 보여지는 거니까요.

무엇이 나를 나답게 하는지 이제는 좀 알 것 같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수없이 맞고 서 있던 바람과 어린 왕자나 싯다르타, 칼의 노래, 살아남은 자의 슬픔 같은 소설도 저 밑에 있어 그 위로 켜켜이 쌓여진 노래와 배우들의 대사 어느 호수 어느 산자락 어느 바다. 그리고 어여쁜 사람들, 슬퍼서 아름다워서 흘린 눈물이 나를 세워 줍니다.
당신도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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