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블레셋(Palestine)군과 이스라엘(Israel)군이 서로 대치했다. 두 진영 사이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를 무렵 적진에서 한 거인이 앞으로 나온다. 블레셋 연합 진영의(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 대표 골리앗. 이후로도 영원히 거인을 상징하는 그 이름. 그런 그가 전장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체격이다.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사무엘상 17:4)
거인 파이터 최홍만의 키는 2m 18cm, NBA 최장신 센터 야오밍의 키는 2m 30cm. 하지만 골리앗의 키는 이보다 7,80cm 더 큰, 3m에 육박했다.
그가 입고 있던 갑옷은 또 어땠을까? 그의 갑옷은 무게만 60kg, 창은 그 날만 7kg. 방패는 따로 들고나오는 시종이 하나 더 있을 정도. 그런 갑옷에 그 무기를 들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은 골리앗이 그저 싱거운 키다리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거인임과 동시에 어마무시한 괴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전장은 상대를 죽일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자가 최고의 능력자로 인정받는 곳. 그런 곳에서 우월한 피지컬(Physical)을 타고났으니, 그야말로 전투에서만큼은 일종의 ‘금수저’로 태어난 셈이었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사무엘상17:11)
고대 전쟁에서는 전투에 들어가기 전, 적의 심리를 도발하여 상대의 기세를 누르는 것이 당시 관례였다. 그런데 이런 우월한 체격의 금수저가 이스라엘 진영을 도발했으니, 그 기세에 눌린 이스라엘 군인들은 크게 놀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패색이 짙게 내린 순간 사울의 진영에서 한 줄기 빛처럼 누군가 나선다. 역사의 무대에 오른 다윗. 다윗은 자신이 골리앗과 직접 싸우겠다며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골리앗과 비교했을 때 우월한 피지컬을 지닌 것도, 화려한 무기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전장에선 어울리지 않을 법한, 평범하고 앳된 미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울은 이 순진무구한 청년을 걱정하며 조언했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라”(사무엘상 17:33)
사울이 정의하는 ‘어린 소년’이란 무슨 의미일까? ‘초보자’ 혹은 ‘무명인’이란 의미가 아닐까? 그렇다면 골리앗을 표현하는 ‘어려서부터 용사’란 또 무슨 의미일까? 조기 엘리트 교육을 받은 ‘경력자’라는 의미가 아닐까?
믿음 외에는 지닌 것이 없는 전장의 ‘초보자’와 우월한 유전자를 지니고 엘리트 교육까지 더해진 ‘경력자’가 서로 대치한다면 과연 누구에게 승산이 있을까? 현실적으로 답은 뻔한 게 아닌가?
혹 이 상황이 무슨 ‘판타지(fantasy)소설’ 처럼 느껴지는가? 그렇지 않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에도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다. 우리 주위에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좋은 가정환경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화려한 스펙을 쌓은 골리앗 같은 사람들.
이 상황은 수 천년 전 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당신이 마주 했을 현실의 한 장면이다.
내 현실도 같다. 어쩌면 독자 중 내 그림을 보며 감탄하고 계실 분이 간혹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분들보다는 대체적으로 그림을 잘 그릴 것이다. 그간 연습한 시간이 있으니.
하지만 선수들의 세계로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수 중의 선수는 따로 있다. 세상에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얼마 전 다녀온 한 작가의 개인전에서 나는 다시 한번 더 절망해야 했다. 뛰어난 작품 앞에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고? 서점에 깔린 수천 권의 도서와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 앞에서 나는 또 다짐한다.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노라고.
동종업계 종사자에서 느끼는 ‘탁월함’은 나를 좌절시킨다. 관련이 없는 분야라면 ‘영감’ 혹은 ‘도전’과 같은 긍정적 자극을 받을 수 있을 텐데 잘 아는 분야이기에 더 절망한다. 두려움에 떠는 이스라엘 군인 같다. 어쩌면 그리 작아지는지…
다윗을 향한 사울의 조언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
나이가 들고 세상을 알아 갈수록 사울에 더 감정 이입이 잘된다. 그의 반응에 이해가 간다. 내가 너무 닳고 닳은 것일까? 그간의 경력들은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되어 버린 것일까? 디딤돌이 되어있는 것일까?
지금 내게 더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세상 물정 밝은 사울의 현실감일까? 아니면 그와 반대인 다윗의 순수함일까? 물론 둘 다 있다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못해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무엇을 택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