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10

2018년 8월 18일(토) 20일 차:라바날 ~ 폰페라다 38km (누적 587km)
오늘 목적지는 폰페라다이다. 38K를 걸어야 하고, 해발 1,500m의 산을 하나 넘어야 하고, 산 정상 바로 밑에 까미노에서 유명한 높이 세워진 철의 십자가를 보는 것이다. 다들 그 십자가에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묻는다고 한다.

새벽 5시에 출발하면 깜깜한 새벽에 그 십자가를 봐야 하므로 오늘은 5시 30분에 출발한다. 1시간 30분을 올라가면 정상 마을인 폰세바돈이 나온다. 그 정상 마을에서 보는 일출이 그동안 보았던 일출과는 비교가 안 되게 너무 아름답다. 산 정상에서의 동트는 장면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다.

철의 십자가

30분을 더 가니까 철의 십자가가 높이 세워져 있다. 그 밑에는 순례자들의 바램과 놓고 간 짐들이 좀 있다. 그곳이 얼마 전만 해도 쓰레기장처럼 많은 짐들을 놓고 가서 치웠다고 하나 아직도 좀 있다. 잠시 그곳에서 기도한다.

갈라디아서 2:20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 십자가 앞에서 다시 한번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며 기도한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고도 1,500m에서 500m의 마을까지 고도 1,000m를 내려가야 한다. 그것도 그냥 길이 아니라 돌짝밭이다. 정말 누가 그 많은 돌들을 가져다 놓았을까? 30분 정도 내려가니 카페 하나가 나오는데 겉에 많은 국기들이 있다. 태극기도 있다. 얼마나 반갑던지 접혀져 있는 태극기를 스틱으로 활짝 펴서 사진을 찍는다. 이곳에서 태극기를 보니 감격스럽다. 갑자기 애국자가 된 듯하다.

내려오면서 보는 산새는 한국과도 비슷하다. 사진만 보면 강원도라 해도 믿겠다. 저 아래에 오늘의 목적지인 폰페라다가 보인다. 그런데 정말 한참을 내려가야 한다. 2시간 정도를 돌들과 씨름하며 조심히 내려가다 만난 엘아세보 마을. 너무나 예쁜 마을이다. 그곳에서 잠깐 쉬며 커피 한 잔을 한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한국인들을 몇몇 보면서 인사하고 같이 걷기 시작한다. 그중에 한 달 전에 전역한 여장교 대위가 있다. 나와 같은 날 출발했는데 오랜만에 만났다. 군인이라 그런지 정말 잘 걷는다. 쫓아가느라 엄청 힘들다. 남자 체면에 천천히 가지도 못하고 안간힘을 다해 걷는다.

2시간을 내려오니 정말 예쁜 마을인 몰리나세카가 나온다. 다리도 이쁘고 강이 넘 아름답다. 카페에서 토스트와 주스로 허기를 달래고, 이제 1시간 30분만 가면 된다. 열심히 걷는다. 이 시간부터는 힘이 든다. 차도를 끼고 걷는데 모두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한다. 드디어 9시간 만에 도착했다. 오늘의 숙소는 현대식 건물의 호스텔이다. 신식 건물로 깨끗하고 깔끔하다.

폼페라다 템플기사단 성

폰페라다는 템플기사단 성이 유명하다. 중세 때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템플 기사들이 세운 성이다. 엄청 웅장하고 멋지다. 입장료가 비싸서 사진만 찍는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데 다른 마을보다는 더 북적거린다. 성당도 템플기사단 마크가 있다. 이 도시의 트레이드마크인 듯해 보인다.

저녁은 매일 사 먹는 것도 질리고, 저녁 시간이 보통 8시이기에 오늘은 그냥 간단히 인스턴트로 해물파에야와 스파게티를 먹는다. 오늘도 부엔 까미노~~~

2018년 8월 19일(주일) 21일 차:폰페라다 ~ 트라바델로 34km (누적 621km)
오늘은 주일이다. 길 위에서 예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출발한다. 오늘 목적지는 트라바델로이다. 거기까지 가는 이유는 좋은 숙소가 있고 무엇보다 라면정식을 먹기 위해서다. 아직 라면정식을 먹지 못하고 있다. 계속 구매하는 곳을 지나쳐버린다.

숙소가 호스텔이라 6시 이전에는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6시에 출발한다. 폼페라다도 넓은 도시라 나오는 데도 한참 걸린다. 도시는 길 위에 화살표가 많지 않아 헤맬 때가 많다. 여기서는 지도를 보며 잘 찾아 나왔다.

주일이라 그런지 차도 없고 사람도 없다. 2시간을 걸어서 작은 마을에 도착해 어제 준비한 카스텔라와 커피 한잔을 마신다. 이제 빵과 커피는 거의 주식이 되어버렸다. 1시간 늦게 출발해 더워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서두른다. 잠깐 쉬고 또 걷는다. 까까벨로스에 도착했는데도 사람이 없다.

주일이니까 성당이라도 들어가서 잠깐 기도한다. 잠깐이지만 까미노를 위해, 가족과 교회를 위해, 그리고 오늘 하루의 일정을 위해 기도하고 나온다. 카페도 열지 않아 벤치에 앉아 잠깐 쉰다. 이제 4시간을 가야한다.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걷는다. 주일이니까 찬양을 하자며 귀에 들리는 찬양을 크게 따라 부른다. “하나님, 받으소서~”

비야프랑까 델 비에르소에 도착한다. 이곳이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이 나온 예능프로 스페인하숙의 무대 마을이다. 여기에도 성이 크게 있다. 마을이 강을 끼고 있어서 예쁘다. 벤치에 배낭을 베고 누우니 정말 편하다. 양말도 벗고, 누워 있는데 잠이 오려고 한다. 갑자기 걷는 것이 귀찮고 누워있고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일어나 다시 걷는다. 이제 2시간만 가면 된다. 그리고 점심은 라면과 공기밥이다. 2시간을 쉬지 않고 계속 걷는다. 라면의 힘으로..

이제부터 차도를 따라 걷는데 계속 올라가는 길이다. 내일은 산티아고 가는 길의 마지막 산을 넘어야 한다. 이전 산보다 경사가 심해서 힘들다고 하는데 내일은 배낭 서비스를 받아야겠다.

걷는 길이 힘든 것은 날파리들 때문에 정말 힘들다. 아예 스틱을 들고 한 손으로 계속 얼굴 앞에서 스윙을 하며 날파리를 쫓아야 걸을 수 있다. 그냥 걸으면 코로, 입으로 날파리들이 다 들어온다.

드디어 트라바델로에 도착한다. 라면 식당 앞에 “이 집 라면 진짜 맛있어요”라고 한국어로 적혀 있다. 오후 2시에 문을 연다는 인터넷 정보로 숙소에 가서 샤워하고 오면 딱이다. 숙소는 라면 식당 옆이다. 5유로인데 싱글침대이고 정말 좋다. 주인도 너무 친절한 부부이다. 1시 30분에 도착해서 2시에 여는 식당에 가기 전에 샤워를 하고 2시 약간 넘어서 식당에 간다.

그런데 식당 문이 닫혀 있다. 주일이라 닫는 듯하다. 식당 앞에서 가만히 한참을 서 있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옆의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대신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도시에서 라면을 살 걸 땅을 치며 후회한다.

사람이 참으로 단순하다. 평소에 라면을 이렇게 절실히 생각했던 적이 있었나? 그냥 삶이었던 작은 것들이 까미노 위에서는 다 소중한 듯하다. 아침에 출발할 때 가족들과 통화할 때 예배 후에 자장면을 먹었다는 말에 난 라면을 먹을 거니까 괜찮다고 했는데 라면 하나로 이렇게 속상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숙소에 와서 그동안의 일정을 생각하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일정을 계획하며 쉰다. 앞으로 7일 정도면 마칠 수 있을 듯하다. 그 이후에 시간이 되면 땅 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까지도 걷고 싶은데 어떨지 모르겠다. 숙소 뒤에 바로 작은 강으로 연결된다. 가서 발을 담그고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수고한 발을 마사지해 주며 쉰다.

오늘 저녁은 숙소 주인이 기르는 텃밭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같이 먹는다. 전체 인원이 12명이기에 식사를 준비하여 함께 식탁에 앉아 자기소개를 한다.

교사, 탐험가, 비즈니스맨, 대학생 등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내가 목사라고 소개하자 갑자기 나에게 모두를 위해 축복기도를 해달라고해서 당황하며 아주 짧게 기도하고 식사한다.

주인 부부가 호주 출신으로 까미노를 하고 나서 4년 전에 아주 이사를 와서 숙소를 운영한다고 한다. 정말 까미노는 대단한 영향력이 있는 듯하다. 유기농으로 된 스프, 파스타, 샐러드를 너무 맛있게 먹고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도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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