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가 들을 비창 교향곡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과 더불어 세계 3대 교향곡의 하나로 꼽히는 교향곡입니다. 이 곡을 작곡하면서 차이콥스키는 주변 사람에게 ‘나의 일생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갖고 작곡한 이 곡은 결국 그의 최대의 걸작이 되었고 이 곡을 듣는 이는 누구나 고금의 교향곡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니 세계 3대 교향곡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 결코 이상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가 들었던 그의 4번 교향곡(1877년)과 5번 교향곡(1888년)으로 차이콥스키의 이름은 유럽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작곡에 정진하였습니다. ‘나는 내 창작의 최후를 장식할 웅대한 교향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고 쓴 1889년 10월의 그의 편지에서 이 6번 교향곡을 향한 그의 결심과 포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1890년에 차이콥스키에게 커다란 타격이 되는 사건이 생깁니다. 15년 동안이나 그에게 후원금을 주며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원을 해주던 폰 메크 부인으로부터 더 이상 후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편지를 받은 것입니다.
부인에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차이콥스키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후원금도 문제였지만 더 큰 것은 그때까지 부인에게 의지해왔던 정신적 지지를 잃은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큰 절망에 빠졌던 차이콥스키가 다시 절망을 떨치고 작곡에 매진하여 써낸 작품이 교향곡 6번입니다.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라는 자신을 가지고 작곡했기에 곡은 어렵지 않게 완성되었고 초연은 1893년 10월 28일 페트르부르크에서 차이콥스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졌는데 기대와는 달리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이에 차이콥스키는 작품이 청중들에게 보다 잘 전달되게 하기 위하여 작품에 표제를 넣을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때 동생 모데스트가 비창(Pathéthique)이라는 이름을 권했고 차이콥스키가 이를 받아들여 그때부터 이 교향곡의 이름이 비창이 된 것입니다. 프랑스 어인 Pathéthique는 슬픔이란 뜻인데 공교롭게도 이 교향곡 Pathéthique의 초연 후 차이콥스키가 9일 후에 갑작스레 죽었으니 너무도 슬픈 일입니다.
초연 9일 후의 차이콥스키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가 죽은 원인은 콜레라라고 그의 전기에 쓰여 있습니다. 당시에 러시아는 콜레라가 만연되어 있었고 그가 끓이지 않은 물을 잘못 마셔 콜레라에 걸린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급작스러운 죽음이었기에 자살설이 파다하였고 후대의 연구가들도 그가 자살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는 그렇게 비극적으로 떠났고 그렇게 차이콥스키가 죽고 나서 <비창>이 다시 연주되었을 때엔 그의 죽음 때문인지 연주회장이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뒤로 연주가 거듭될수록 이 곡의 가치는 더욱 드러났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작곡한 것 같은 이 곡에는 차이콥스키 특유의 우울과 고독 그리고 희열과 절망이 교차하는 그의 삶이 들어있습니다.
러시아적인 아름다운 선율, 서유럽 정통 기법에 의한 균형 잡힌 형식, 그리고 웅장한 관현악 연주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립니다. 때로는 절망적인 신음 같은 소리로 삶의 고뇌를 노래하는 것을 듣다 보면 우리의 마음은 어느덧 슬픔을 넘어 안정을 되찾습니다.
곡의 구성
모두 4악장으로 되어있지만 이 곡은 보통의 교향곡과 다른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보통 교향곡은 2악장이 조용하고 느리고 마지막 4악장이 웅장하며 빠릅니다. 그러나 이 곡은 오히려 2악장이 빠르고 4악장이 조용하고 음울하며 3악장은 끝부분이 마치 곡이 끝나는 느낌을 줍니다.
1악장 아다지오 – 알레그로 논 트로포
콘트라베이스의 저음으로 시작되는 침울한 멜로디에 이어서 파곳의 탄식하는 듯한 선율이 이어집니다. 전반적으로 어둡고 슬프며 쓸쓸한 느낌의 악장입니다
2악장 알레그로 콘 그라치아
빠르고 경쾌하지만 숨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선율이 어딘가 불안한 느낌을 줍니다.
3악장 알레그로 몰토 비바체 ‘타란텔라 주제(이탈리아 남부지방의 민속 무도)’라고 불리는 3악장의 주제는 활발하고 장난스럽지만 어딘가 비통한 느낌이 있습니다.
4악장 피날레: 아다지오 라멘토소-안단테
차이콥스키 스스로가 새로운 시도라고 했듯 보통의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달리 가장 느리고 어둡고 무거운 악장으로 비통하고 애절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로운 독백과 같은 이 악장은 비장한 여운을 남기며 서서히 끝이 납니다.
명곡인 만큼 좋은 연주가 많습니다. 카라얀이 지휘한 베를린 관현악단의 연주도 압권이고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를린 관현악단의 연주도 좋지만 비록 낡았어도 므라빈스키가 지휘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호방하면서도 섬세한 오케스트라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가 탄생시킨 명연주입니다.
예브게니 므라빈스키(Jewgenij Mrawinskij 1903-1988)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을 들으면서 우리는 므라빈스키와 친숙해졌습니다. 오늘은 곡을 듣기 전에 잠깐 지휘자 므라빈스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는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그곳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가 된 뒤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고 50년의 세월을 함께 한 전대미문의 아름다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취임 당시 미미하였던 악단을 갈고 닦아 세계 정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음악적으로나 인격적으로 늘 단원들의 한결같은 존경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소비에트 체제 속에서 살면서도 공산당에 입당하지 않고 50년 동안 한 오케스트라에 그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늘 시골의 오두막에 머무르며 밤이면 책을 읽고 낮이면 자연을 거닐며 명상에 잠겼습니다. 말을 아끼는 대신 음악으로 생각과 뜻을 절실하게 쏟아냈습니다.
음악이 있었기에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그의 신념은 음악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는 특히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연주에 집중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여 연주한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가 그렇게 뛰어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3-4절입니다(2 Corinthians 1: 3-4)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살아가면서 지난날의 아름다운 추억에 잠겨도 시간을 돌이킬 수도 없고 영원히 그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도 없습니다. 또 우리의 삶의 곳곳에서 튀어나와 우리를 슬프게 만드는 것들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도 또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위로로도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가 되고 또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고 또한 그분이 주시는 위로뿐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손을 내밀어 하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