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강물처럼이라던 옛 표현에서는 그래도 따뜻하고 아련한 정감과 여유를 맛볼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들의 세월에는 어떤 비유가 적절할지 궁금합니다.
더욱이 인생의 겨울에 들어선 사람들에게 세월은 어떤 것일까요?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마다 옷깃을 여미며 새로운 각오를 다짐하지만 늘 지난 세월의 무상함과 공허한 마음에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평생을 고향 땅에 갇힌 듯 살아도, 혹은 고국을 떠나 세상은 넓다며 훨훨 날아다니듯 살아도, 세월은 누구에게나 함께 가야 할 운명입니다.
낭만 논객 김동길 교수의 글에 ‘그래도 젊어서는 세월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고 자부했건만 이제는 그 소리조차 들리지도 않는다.’ 고백하면서 고려조의 문인 우탁의 시 한 수를 소개하는 글이 있습니다(김동길 대표 에세이 ’그대와 내가 하나 될 때’ p147).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 손에 가시를 쥐어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저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어쩐지 오늘 저는 이 시 한 수가 이렇게도 실감되는지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누구에게나 세월은 무정뿐일까? 그렇다면 세월 유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국의 60-70대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수 서유석이 부른 노래 중,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라는 노래가 한국에서 유행인가 봅니다. 참 재미있고 음미해 볼 말한 노랫말입니다. 나이 들어 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지난 세월이 누구에게나 허무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남은 세월을 위해 오늘 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너무나 소중한 질문임에 틀림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은 시간이요 우리는 모두 세월 속에 살아가는 인생이기에 시간은 바로 생명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멈춘다면 내 생명은 죽음일 뿐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생명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시간을 죽이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명은 나에게 시간이 주어져 있기에 가치가 있고 유효하며 죽은 자에게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이 소중한 시간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과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는 의구심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때가 언제일지 미리 알고 싶어 하며 세상 종말의 때가 언제일지에 유별난 관심을 가집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때와 내가 생각하는 때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나의 때보다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요 이것이 ‘세월을 아끼라’는 말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황혼의 반란’이라는 소설입니다.
프랑스 정부는 경제활동 없이 늘어만 가는 노인 인구로 인해 재정이 악화되자 노령인구 수를 줄이기로 결정하고 묘안을 냅니다. 먼저 노인들의 외출을 금지하고 자녀들과의 연락을 차단합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젊은 안내원들이 찾아와서 편하고 좋은 곳으로 안내한다며 그들을 어디론가 데려가고 그 후 소식은 아무도 모릅니다.
한 할아버지가 집으로 찾아와 노크하는 사람들을 따돌리고 집을 탈출하여 노인들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이던 버스를 자신이 몰고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동굴에 숨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합니다.
소문이 퍼져 많은 노인들이 찾아오고 큰 공동체를 이루어 자생의 길을 찾고 정부에 대항할 준비를 하지만, 정부는 동굴을 급습하여 가스를 동굴 속으로 투여합니다. 이 일을 주도했던 그 노인은 앞에 선 젊은이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 게다’
1991년에 쓴 소설 이야기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추석 명절에도 가족 상봉을 자제하고 집에 머물라는 보도가 묘하게 오버랩 되면서 이 소설을 떠 올리며 미소를 머금습니다.
어릴 적 들은 어른들의 말 중에, ‘사람은 한평생 세 번의 기회를 만나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기회일까요? 성공의 기회를 말할 것입니다. 부자 되거나 권세를 잡거나, 명성을 얻거나 이런 기회를 붙잡은 사람만이 진정 세월 유정일까요?
그럼 당신의 기회는 어떤 것이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직 기회를 만나지 못했나요, 아니면 그 몇 번의 기회를 놓치고 아직도 기회를 기다리고 계신가요? 누구나 청년의 때가 있고 그에게도 노인의 때가 찾아옵니다.
세월 유정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의 약속을 지킬 때 얻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의 세월은 결국 헛된 시간을 산 사람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약속은 나 자신과의 약속과 타인을 향한 약속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과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렇게도 다짐했던 자신과의 약속이 작심삼일로 끝난다면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사람일 것이고, 타인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며, 하나님과의 약속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는 궁극적 문제이니 이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은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세월 유정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신의 세월은 무정인가요, 유정인가요? 나는 지혜자인지 어리석은 자인지 스스로 자문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이 약이다’라는 말은 시간이 가면 문제는 절로 해결된다는 뜻일진대, 이는 진정 세월 유정의 지혜는 아닌 듯합니다. 세월 유정에는 후회보다는 감사가, 슬픔보다는 기쁨이, 아픔보다는 치유가, 절망보다는 희망이 있는 시간입니다.
그럼 무엇으로 이 소중함을 얻을 수 있을까를 깨닫고 오늘도 세월을 생각하면서, 누구나 세월유정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노인이 되어 간다는 것이 꼭 서러운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크리스천라이프의 독자들은 모두 성공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세월 동안 부와 명성을 얻은 자랑스러운 성공이 아닐지라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말씀하시는 세월의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원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이 기회는 나를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로, 죽은 자 같으나 살아있는 자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만드셨기에(고린도후서 6:9-10) 우리의 시간은 세월 유정임에 틀림없다고 확신합니다. 이 기회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의 선물일 뿐입니다.
미국 시인, May Swenson(1913-1989)의 ‘How to Be Old’라는 시 중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It is easy to be young. Everybody is, at first.
It is not easy to be old. It takes time.
Youth is given, age is achieved.
One must work a magic to mix with time in
order to become 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