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로 진혼곡(鎭魂曲)이라고 번역하는 레퀴엠(Requiem)은 사자(死者)를 위한 미사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최후의 심판 날에 예수가 재림하시면 산 사람은 물론이지만 죽은 사람도 무덤에서 일어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최후의 심판 날까지 죽은 사람은 스스로를 위해 기도를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천주교 교회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서 미사를 올릴 때 사용되는 곡이 진혼곡<레퀴엠>입니다. 이 미사의 첫 구절이 Requiem aeternam dona els(그들에게 영원의 안식을 주소서)라는 입제송(入祭頌)으로 시작하기에 레퀴엠(Requiem)이란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예배 의식에서 음악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서양음악에서 종교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높고 많은 음악가가 여러 종류의 교회를 위한 곡을 작곡했습니다. 진혼곡도 그 중의 하나며 모차르트, 베를리오즈, 베르디, 포레의 진혼곡이 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람스의 진혼곡도 물론 걸작이지만 이들의 진혼곡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들의 진혼곡은 모두 라틴어 가사로 작곡되었지만 브람스의 진혼곡은 독일어 가사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진혼곡은 교회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작곡되었지만 브람스의 진혼곡은 음악회에서 사람들이 감상할 곡으로 작곡되었습니다.
독일 진혼곡
브람스는 곡의 가사만 독일어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진혼곡은 모두 교황 비오 5세가 1570년경 제정해 놓았던 라틴어로 된 카톨릭 고유의 전례문(典禮文)을 가사로 사용했지만 브람스는 1537년에 마르틴 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해 놓은 성경 구절을 직접 선택하여 가사로 사용했습니다.
브람스가 가사로 선택한 성경 구절을 자세히 보면 규례와 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죽음을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음악으로 조명한 브람스의 죽음 관(觀)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브람스의 진혼곡은 죽은 자를 위로하는 미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곡을 들으며 천국을 향한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산 자를 위한 진혼곡입니다.
작곡의 과정
무명(無名)의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음악계에 알리고 후원했던 고마운 스승 슈만의 비극적인 죽음을 겪고 충격을 받은 브람스는 레퀴엠을 작곡할 결심을 합니다. 마치 레퀴엠의 작곡이 스승의 유언인 것처럼 생각하고 작곡을 계획하고 1859년에 구상을 마쳤지만 워낙 신중한 브람스라 진행은 느렸습니다.
그러다가 1865년에 어머니의 죽음으로 자극을 받아 본격적으로 다시 달려들어 완성했습니다. 결국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려 태어났습니다. 1869년 2월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초연은 아주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뒤 10년간 독일어 권에서 100회가 넘게 연주되었습니다.
당대의 명 평론가 한스릭은 이 곡을 가리켜 ‘가장 순수한 예술적 수단, 즉 영혼의 따스함과 깊이, 새롭고 위대한 관념, 그리고 가장 고귀한 본성과 순결로 일궈낸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이 곡은 브람스 음악의 깊은 내면을 보여줍니다. 그는 결코 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브람스를 존경했던 안토닌 드보르작이 “그처럼 위대한 영혼을 가진 작곡가에게 신앙이 없다니!”라고 아쉬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독일 레퀴엠을 들으면 브람스의 깊은 영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도화된 종교를 따르는 신앙인은 아니었지만 평소에 성경을 가까이하며 묵상하고 연구를 많이 했기에 그가 쓴 독일 레퀴엠은 듣는 사람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대작이 된 것입니다.
브람스에게 죽음이란 결코 종말이나 심판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랑이 완성되는 안식의 세계였습니다. 훗날 친구 헤르만 게츠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작곡한 2개의 모테트(Motet) 작품 74중 1곡 ‘왜 고민하는 자에게 빛을 주셨는가’에서 그가 인용한 마르틴 루터의 텍스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평화와 기쁨으로 나는 가려네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내 마음과 영혼은 평안하네 고요하고 잔잔하네
하나님께서 내게 약속하셨으니 내게 죽음이란 잠에 불과하네
이 노래에서 브람스의 죽음 관(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은 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잠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한 진혼곡을 썼던 것입니다.
곡의 구성과 내용
다른 레퀴엠과 마찬가지로 브람스의 독일 진혼곡도 모두 7곡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레퀴엠이 강조하는 진노와 심판보다는 위로와 희망, 그리고 안식을 노래합니다.
제1곡 합창 이 합창곡은 슬프도록 조용히 시작되지만 뒤에서는 희망과 위로를 전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태복음 5:4)
제2곡 합창 장송 행진곡풍의 전주로 시작되지만 후반 야고보서와 이사야서의 인용은 희망과 결실을 전해주며 마무리된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니‘(야고보서 5: 7)
‘속량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기쁨과 즐거움을—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이사야 35: 10)
제3곡 바리톤과 합창 슬픔에 젖은 바리톤이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하면 합창이 이를 모방하며 뒤따라 강조한다. 그러나 뒤에서는 우리의 소망과 영혼이 주님 손에 있다고 위로한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주여–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편 39 : 4-7)
제4곡 합창 천국의 평화와 기쁨이 넘치는 찬양을 통해 사랑을 느끼게 하는 곡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집에 기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주를 찬송하리이다’(시편 84 : 1-2,4)
제5곡 소프라노와 합창 소프라노가 밝게 위로하며 시작하고 합창이 조용히 응답하며 마무리한다.
‘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이사야 66 :13)
제6곡 바리톤과 합창 비통하고 장엄하게 최후의 심판을 노래하지만 절망과 두려움만이 아니라 희망과 변화, 그리고 죽음이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노래한다.
‘이 땅에 영원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우리가 찾나니’ (히브리서 13:14)
제7곡 합창 첼로의 엄숙한 가락으로 시작되는 이 마지막 곡은 죽음의 극복과 죽은 뒤의 안식을 노래하며 마지막은 하프의 아르페지오로 온화하고 평안하게 마무리된다.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가 행한 일이 따름이라’(요한계시록 14: 13)
좋은 연주가 많습니다마는 화요음악회에서는 Otto Klemperer가 지휘하는 Philharmonia Orchestra & Chorus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관현악과 합창도 좋고 소프라노 Elisabeth Schwarzkopf와 바리톤 Fischer Dieskau의 열창도 빛나는 뛰어난 연주입니다.
오늘을 끝으로 브람스를 마치고 다음 회부터는 슈베르트를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