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째 주 찬송/170장(통일16장) 내 주님은 살아 계셔
역경 가운데 살아계신 주님 위로를 바라는 신앙고백
헨델(George Friderich Handel, 1685-1759)이 작곡한 오라토리오 ‘메시아’엔 부활장면이 심심합니다. 극적(劇的)인 다른 오라토리오들과는 달리 ‘메시아’는 전혀 극적이지 않은 오라토리오(non-dramatic oratorio)이지요.
초연(初演) 때에는 ‘성(聖)오라토리오’(A Sacred Oratorio)란 이름으로 발표하였는데 특이한 것은 신구약 성경말씀이 두루 텍스트로 사용되면서도 주인공인 예수님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말씀마저도 “나에게 오라”(Come unto me)는 “그에게 오라”(Come unto him)로, “내 멍에”(my yoke)는 “그의 멍에”(his yoke)라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대본을 쓴 제넨스(Charles Jennens, 1700-1773)가 예수님의 스토리를 일일이 펼쳐 보이기보다는 성경을 꿰뚫고 있는 진정한 메시아사상을 설교하고자 한 것은 아닐지요.
그래서인지 메시아에서 예수님의 부활장면은 요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활사건이 없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부활장면을 다룰만한데도… 단지 굳건한 부활신앙만이 있을 뿐입니다.
제3부 첫 곡, 소프라노 아리아에선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위에 서실 것이라.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기 19;25-26)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는 욥과 바울의 고백을 노래하고 있을 뿐입니다.
헨델은 제넨스 목사 대본에 의해 ‘메시아’를 1741년 9월에 작곡하여 이듬해인 1742년 4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초연을 했는데, 이 찬송의 곡명 BRADFORD는 소프라노 아리아인 ‘내 주는 살아계시고’(I know that my redeemer liveth)를 누군가가 편곡하여 1892년에 출간된 미국장로교찬송가(New Laudes Domini)에 처음 실은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메시아 중 소프라노 아리아 가사와 같은 말씀을 소재로 지은 찰스 웨슬리(Chales Wesley, 1707-1788)의 찬송 시가 오라토리오를 지은 1742년 같은 해에 지었다는 것인데 우연일까요?
이 찬송은 가사로나 멜로디로나 너무나 편안합니다. 그러나 이 시는 그렇게 한가한 고백이 아니지 않습니까. 육신이 만신창이 된 욥이 그래도 그를 위로해 줄줄 알았던 가족과 친척들은 다 떠나고 친구들마저 악의에 차 힐책과 비난을 쏟아 부을 때, 이 세상에 홀로 남아 고립된 몸으로 비정한 친구들을 향해 던진 말인 것입니다.
이젠 자신의 무죄가 입증되기를 아주 체념한 가운데 억울한 자신의 처지가 책에 기록되든지, 철필과 납으로 영영히 돌에 새겨졌으면 좋겠다며 죽은 후에라도 그를 변호해 주실 살아계신 하나님만은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욥기 19;13-24).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당, 악보를 들고 있는 헨델의 조각엔 그가 유언한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신다.”란 말씀이 새겨져 있습니다.
4월 둘째 주 찬송/213장(통일348장) 나의 생명 드리니
나의 생명 드리니 ’작곡가 W.A.Mozart는 W.Muller로 바꿔야
모차르트의 “만유 주님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영화롭도다’라는 합창곡이 있습니다. 고교 합창대회를 비롯해 너무나 잘 알려진 곡이죠.
1819년에 노벨로(Novello) 판으로 출판된 이래, 거의 백 년 동안 교회음악작품 가운데 베스트셀러였던 이 곡은 모차르트의 미사 12번, G장조, K.V.232 중 ‘대영광송’(Gloria)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출판물에는 모차르트 작품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모차르트 전 작품을 연대순으로 목록을 만든 케헬(Ludwig von Köchel, 1800 – 1877)은 모차르트 작품 카탈로그 초판에 이 작품을 K.Anh. 232로 분류하였고, 개정판에서는 K.Anh. C1.04.로 수정하였습니다. Anh는 부록(Anhang)이란 말로 부록 C는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닌 분류번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롭도다’는 누구의 작품일까요? 출판 후 얼마 되지 않아 작품 성향으로 보아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의문이 독일 학자들에 의해 꾸준히 제기되다가 드디어 벤첼 뮐러(Wenzel Müller, 1767–1835)의 작품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012년, 옥스퍼드 대 도서관에서 벤첼 뮐러(Wenzel Müller, 1767–1835)가 1791년에서 1803년 사이에 작곡한 것으로 여겨지는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뮐러는 오스트리아 튀르나우(Markt Türnau) 태생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입니다. 젊은 시절, 극장 뮤지션으로 활동했고, 비엔나 레오폴트슈타트 (Leopoldstadt) 극장에서 카펠마이스터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당시 인기 있는 작곡가로 무대작품을 비롯한 250편 이상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뮐러의 G장조 미사곡의 첫째 곡 ‘자비를 구하는 기도’(Kyrie)의 멜로디가 우리가 애창하는 찬송가 ‘나의 생명 드리니’(213장)입니다. 3/4박자 곡을 2/2박자로 편곡한 메인(Hubert P. Main, 1839-1925) 역시 작곡자가 모차르트인 것으로 믿었던 것이죠. 어째든 ‘나의 생명 드리니’는 뮐러의 곡입니다.
곡명 MAIN은 미국의 교회음악 출판사(Biglow & Main Co) 사장인 메인(Hubert P.Main, 1839-1925)의 이름입니다. 그는 1894년 모차르트의 곡으로 알려진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찬송가로 편곡하여 복음성가집(Gospel Hymns Nos.1-6)에 발표하였습니다.
이 찬송은 한동안 ‘구주 탄생하심을’의 곡조인 YARBROUGH(통108장)에 붙여 불렸고, ‘주여 우리 무리를’(75장)의 곡조 HENDON에도 붙여 불렸습니다. 뮐러 작품으로 밝혀지기 전에 출판된 ‘김명엽의 찬송교실 3권’(146p) 중 “신동(神童)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곡을”도 “벤첼 뮐러(Wenzel Müller, 1767–1835)의 G장조 미사 중 ‘키리에’ 멜로디를”로 수정하며, 아울러 우리나라와 세계 모든 나라의 찬송가와 찬송가해설집 역시 수정할 것을 제의합니다.
찬송 시 ‘나의 생명 드리니’는 ‘내 너를 위하여’(311장)를 지은 여류시인 하버갈(Francis Ridley Harvergal, 1836-1879)이 1874년 2월 4일에 지었습니다. 하버갈이 친지와 함께 한 주말여행에서 이들을 위해 드린 기도의 응답으로 모두 뜨거운 영적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의 머릿속에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드리리라”는 시구가 떠나지 않고 맴돌다 드디어 이 시를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시는 그 해 ‘은혜와 영광의 노래집’(Songs of Grace and Glory)에 실렸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로마서 6;13하)고 당부하였습니다. 지체(肢體)를 불의(不義)의 무기(武器)로 죄에 내주지 말라면서. 불의의 무기라니까 금방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얼마나 우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사용하였었나요.
“땅에 있는 지체”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골로새서 3;5) 같은 불의의 무기들이 의의 무기들로 거듭나 주님께 드리게 된 것을 생각하니 큰 감동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