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두 번의 전화 벨

시간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9월 어느 때였을 게다. 아내는 처음에 머리가 아프다 했다가, 치통이 있다고 했다가, 또 이따금 구토 증상도 있음을 느꼈는데 그럴 때마다 이곳 뉴질랜드식으로 애꿎은 파나돌만 계속 먹었던 기억이 난다.

치과를 가서 확인해 봐도 치아엔 별 이상이 없었고, 그 외에 겉으로 보이는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비용종(nasal polyps)이라는 것이었다. 내시경으로 살펴보니 콧 속 깊숙한 곳에 주머니 모양처럼 물혹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는데 생각보다 크게 자란 모습이었다.

학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호주로 떠나기 전, 우리 부부는 부모님을 뵈러 정말 오랜만에 한국 방문을 하였고, 그때 병원에 검사 차 갔다가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 의사가 하는 말이,“아니, 어떻게 물혹을 이 지경까지 자라게 놔뒀습니까? 당장 수술해야 합니다.”

하지만 3주도 채 안 되는 체류 일정으론 수술할 엄두를 못 냈고, 거의 5백만 원에 가까운 수술비를 내야 하는 부담도 컸던지라 우린 아쉬움을 뒤로 하고, 호주 퍼스로 발 길을 돌렸다.

퍼스에 도착하여 정착지를 정한 후, 아내와 나는 Medicare card도 만들고, 드디어 GP를 만나 진료도 하고, CT 촬영과 스페셜리스트도 만났는데 Private 병원 수술비는 한국보다 더 비싼지라 포기할 수밖에 없어 Public 병원에 수술 일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빨리 기도할 때라 했던가? 아니 내 것을 포기하는 순간, 하나님의 응답은 의외로 더 빨리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년 전, 낯선 땅 퍼스에서 학업을 끝내고 바누아투 선교 준비를 하던 12월 초 어느 날, 아내와 나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그때 아내가 뜬금없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이제 얼마 있으면 비용종 수술도 받게 될 터이지만, 제가 요즘 계속 기도해 봤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혹 새로운 사역지를 허락하시면 난, 그 수술 포기하려고 해요.”

나는 “아니, 당신이나 나나 1년 이상을 기다려 온 수술인데 그걸 어떻게 포기해요?” 되물었다. 아내는“나도 지금 무지 힘들지만, 그리고 수술 일정이 잡힌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역지로 다시 한번 불러 주셔서 당신을 쓰신다면 난 다 포기하고 갈 수 있어요.”

내겐 아내의 말이 “하나님, 제가 지금 병이 낫기를 간구하고 있지만 혹 그것이 당장 당신의 뜻이 아니라면, 그것도 기꺼이 내려놓겠습니다.”라는 기도 소리로 들렸다.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누가복음 22:42). 정녕 이 뜻이란 말인가?

한 30분 정도의 산책을 마쳤을까? 집으로 오는 길에 전화벨이 울렸다. 뉴질랜드로부터 온 전화였다. 파머스톤 노스의 한마음 교회로부터 목회자로 청빙하겠다는 제의를 받은 거다.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나님 어디 계세요? 저희 부부의 얘기를 다 듣고 계셨나요? 이렇게나 빨리 응답을 주시다니요?”

그럼에도 이미 1월 한 달 동안 선교 일정이 계획되어 있었고, 퍼스로 돌아와 살던 집과 생활용품을 수일 안에 정리해야 했기에 파머스톤 노스까지 아무리 빨리 가도 2월 중순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우리 일정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아내와 함께 1년 이상 사역지를 놓고 기도했던 그 응답을 받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우린 이구동성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조금만 기다리면 아내가 수술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 일정이 다가오는데, 이를 어쩐다지?

순간, 난 아내의 표정을 살폈다. 평소에도 어떤 일에든 나보다 담담했던 아내, 아내 얼굴이 의외로 기쁨에 차 있는 게 아닌가? 괜찮단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수술을 받고 안 받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오히려 애써 나를 위로해 주고 토닥이는 손길이 꼭 천사의 손길 같았다.

우린 거의 쉴 틈 없이 퍼스에서의 생활을 부지런히 정리하고 바누아투 선교 일정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2월 11일에서야 파머스톤 노스로 내려왔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편 126:1)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게 되지만, 지금 기도하면 꿈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10개월 전 파머스톤 노스로 내려와 한마음 교회를 섬기면서 이제껏 난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부지런히 달려왔다.

비록 호주에서의 아내의 수술 일정은 일찌감치 자동으로 취소되었지만 우린 퍼스에서 했던 그 절차 그대로 GP도 다시 만나고, 여러 가지 검사도 하고, 스페셜리스트도 만나 수술 일정이 잡히기를 교우들과 함께 기도해 왔다.

지난해와 똑같이 내년 1월 바누아투 선교 일정도 계획되어 있다. 수술하고 나면 3주 정도는 쉬어야 하고, 비행기 또한 못 탄다는 의사의 말에 이제나저제나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렀고 지난 10월의 마지막 날, 권사님들의 중보기도 모임이 있던 그 날, 2번째 전화벨이 울렸다. 파머스톤 노스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그렇게나 기다리던 아내의 수술 일정이 11월 5일로 잡혔다는 거다.

“오, 하나님! 2년이 넘도록 오랜 시간 고통 속에서, 잠잘 때마다 제대로 숨쉬기 조차 어려워했던 아내에게 이렇게나 큰 선물을 주시다니요? 하나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첫 번째 수술까지 포기하며, 무엇보다 사역을 최우선으로 했던 나와 아내는 서로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주의 여종의 고통의 신음소리를 들으시고, 오랜 기도에 응답해 주시고, 큰 기쁨을 주신 하나님, 성공적인 수술을 허락하신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 드린다. 함께 중보해 주신 교회 권사님들과 교우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아내는 지금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 가운데 회복 중이다. 아내의 침상에서 들려 오는 찬송 소리가 내 귓가에서 맴돈다.“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시편 107:6-8)

Exit mobile ver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