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은 괜찮아질 거라고 우기는 것이 아니라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주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위로해준다며 “힘내, 괜찮아.”라는 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그런 말이 잠깐의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끝에는 공허함으로 남겨질 때가 많습니다.
두리하나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사랑이라는 힘이 필요했고 상처로 가득한 탈북 청소년들의 마음에 진심이라는 것을 전달해 줬어야 했습니다.
함께 나눈 말과 지나가는 말로 했던 사소한 약속들까지도 다 지키려는 마음이 필요했고, 행동으로써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사랑하기 위해 저 나름의 노력해본 것이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발버둥이었습니다.
두리하나에 있는 탈북 청소년들이 제게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쌤들은 다시 온다고 하면서 다시 안 와요.”
처음에 관심 있어 온 사람들, 자원봉사자들이 남기고 간 말인 듯합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무조건 다시 와서 사랑한다는 진심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여러 번 두리하나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한번 뉴질랜드에 같이 가보자”라는 말로 뉴질랜드에 같이 방문하게 되었고, 이번에 또 연말에 4명의 탈북 청소년들과 뉴질랜드에 방문하려는 계획 중에 있습니다.
뉴질랜드 가서 큰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저 내뱉은 말을 지켜보려는 마음에서 아이들을 초청하게 됐습니다.
나의 내뱉은 말에 진정성이 얼마만큼 있는가. 나는 그들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싶은가. 사람을 위해 나를 던져볼 수 있는가.
두리하나에 처음 방문해보고 탈북 청소년들과 이야기해 보면서 분명 그들의 말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 경험을 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때론 아픔이 그들 이야기 가운데서 느껴지고, 답답함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친구들에게 마음이 갔고, 큰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해봤습니다.
마치 그 고민을 하는 시간은 나의 내뱉은 말에 진정성과 비례하는 것 같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사랑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금씩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그들의 감정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고, 텅 빈 위로보다는 함께 있어 주고 함께 살아가려고 하다 보니 친구 같은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었습니다.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지내면서 나는 나의 사랑하는 것의 진정성이 얼만큼 인지 되돌아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내린 마지막 생각은 그들을 위해 얼마나 생각하는지가 그 진정성의 크기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탈북 학생들은 상처와 슬픔이 많아서 진정성 없는 겉에만 보이는 사랑을 잘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많이 속아도 봤고, 약속되지 않은 헤어짐을 많이 겪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진심 어린 사랑은 통하고, 그것이 또 진짜이기에 서로 공감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아닐까.
나는 단지 사랑하는 것의 진정성을 탈북 학생들과 지내면서 느낀 것뿐이지, 이 진심 어린 사랑은 모두에게 필요하고, 모두에게 나눠야 할 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심지어 이런 사랑이 나에게도 필요합니다. 그저 잠깐의 보여지는 사랑이 아닌 진정성이 있는 깊은 사랑이 있을 때 닫힌 마음도 열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나누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