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교단 중에 대표하는 큰 교단으로 장로교에는 합동과 통합이라는 교단이 있다.
통합의 8,383개 교회에 물었다.“우리 교회에 주일학교가 있습니까?”“있다”고 대답한 교회는 48%였다. 이 말은 나머지 52% 교회, 즉 100개 교회 중에 52개 교회는 주일학교 교역자가 없고, 아이들이 좀 적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주일학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52개 교회는 30년 지나면 교회가 텅 비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합동은 151개 노회, 11,770개 교회가 있다(2017년 2월 기준). 그 중에 주일학교가 있는 교회는 35%였다. 100개 교회 중 무려 65개 교회는 아예 주일학교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교인 수 최대 교단인 통합이 48%, 교회 수 최대 교단인 합동이 3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부모여, 가정에서 자녀들을 제자 삼으라
선교신학자들은 말한다. “수평적 선교”를 하던 시대가 지나고(10/40 창), 이제는 “수직적 선교”(다음 세대)의 시대가 열렸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 세대 사역과 컨퍼런스에서 빠지지 않는 말씀인 “신명기 6장”소위, 쉐마 본문을 잠시 보고자 한다.
신명기 6장 2절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위 말씀에 보면 4대가 등장한다. 먼저 화자인 모세(1세대), 청자인 “너”여호수아(2세대), “네 아들과 네 손자들”(3세대, 4세대)이다. 모두 4대가 모여 이 말씀을 듣고 있다.
신명기 말씀은 모세의 유언이자,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될 출애굽 2세대들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이다.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사랑하라”는 것이다. 집집마다 가훈이란 게 있듯이 모세는 “이스라엘의 집” 가훈으로 이 말씀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신앙의 정수인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사랑”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떻게 해야 “세대 간 신앙 전수”가 일어날 수 있는가? 모세는 이 일들이 부모의 책임이며 부모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단언한다.
신명기 6장 7절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이 부분에서 듣는 이는 분명히 “부모”이다. 왜냐하면 모세가 “자녀에게” 가르치라고 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는 이는 분명히 “부모”이다.
유대인들에게는 랍비라는 율법 교사가 있다. 아이들을 율법 교사를 통하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아이들을 랍비에게 맡기라고 하지 않는다. 신앙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다. 신앙은 가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부모의 등을 보며, 부모의 언행심사를 듣고 보며 신앙은 부모로부터 자녀에게 흐르고 전수되는 것이다.
영어, 과학, 수학, 역사 같은 일반 과목은 얼마든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다.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배워도 상관없다. 그러나 신앙은 부모에게서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앙 전수를 부모에게 맡기셨고, 부모 책임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의미에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은 먼저 가정에서부터 일어나야 한다. 내 피붙이, 내 아이들과 수년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살면서 그들을 제자 삼지 못하면서, 다른 이들을 제자 삼으려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행동일 것이다.
부모만큼 자녀를 잘 아는 존재가 없다. 자녀가 아무리 사춘기라도 그 아이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그 부모이다. 정말 이 아이가 하나님을 신앙하는지 그렇지 않은 지는 가정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고, 부모는 시시로 체크하며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치고 보여줄 수 있으며, 그러해야 한다. 종종 신앙이 있다는 부모들이 이런 착각을 한다.
“우리 아이는 어릴 적부터 주일학교를 다녔어요. 성경학교도 빠지지 않았구요. 그런데 왜 갑자기 교회를 안 가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부모님은 중요한 것을 놓쳤고, 착각하고 있었다. 마치 수학을 잘하기 위해 부모 입장에서는 그 아이를 수학 학원에 보내는 것으로, 부모로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 신앙이 좋아지게 하려고 “주일학교”를 종교 학원처럼 보낸 것으로 자기 할 일을 다 했다고 착각한 것이다. 신앙은 가정에서 배우며 자라는 것이다.
성경은 부모에게 가르치라고 했건만, 교회를 학원으로 여겨서 종교 과목 점수를 올리기 위해‘주일 학교’라는 학원에 1주일마다 보낸 것이다. 그래서 일어난 현상이 무엇인가? 아이들이 잘 다니던 종교 학원(?)을 이제는 재미없다고 끊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음 세대를 잃어버렸다.
주일학교는 신앙 교육의 ‘대안’일 뿐, ‘원안’이 아니다. 신앙 전수의 원안은 ‘가정’이고, ‘부모’이다. 부모가 신앙 교육의 제1책임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학교 예산을 올리고, 좋은 교역자를 모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시나 그것은 대안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부모’를 잡지 못하면, 저절로‘다음 세대’도 잡지 못하고 놓쳐 버릴 것이다.
세대 간 신앙 전수 미션을 완료하라
그러면 어떻게 가르치라고 하는가? 모든 환경과 상황을 교육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한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장소가 집이든, 길이든, 누워 있든, 일어나든지 관계없이 모든 상황 속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 심방을 가보면 집집마다 아이들 방이나 거실에 말씀 액자 혹은 성구를 적어 놓은 스티커나 종이를 보게 된다. 이런 집은 보나마나 가정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집이다. 아이들은 일어나면서부터 말씀을 접하게 된다. 집에 나갈 때도 출입문에 붙어 있는 말씀 구절을 보게 된다.
어떤 집은 거실 중앙에 ‘주님’이 모셔져 있곤 한다. 우리 ‘주님’이 아니라, ‘술 주님’이다. 혹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가져온 기념품이 거실 중앙에 있곤 한다. 이런 집들은 아이들에게 은연중에, 혹은 부지 중에 엄마 아빠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여행이고 여가와 취미야”라며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말없는 교육이 계속해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성경은 가정의 교육 환경을 완전히 신앙 교육 환경으로 부모가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사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라고 말하기 전에 신명기 6장 6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무슨 말인가? 부모가 먼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이란 다시 앞 절인 5절에서 말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부모가 먼저 “여호와 사랑”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길 때, 그 다음인 자녀 신앙 교육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부모가 부지런히 말씀을 배워야 한다.
건강한 교회는 이러한 영적 순환구조를 갖는다. 교회는 부모를 제자 삼고, 부모는 가정에서 자녀들을 제자 삼는 것이다. 이 구조가 어긋나서 교회는 다음 세대를 잃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들을 교회에 맡기고, 교회도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맡겨만 주십시오. 우리가 이번 성경학교 때 제대로 하나님 만나게 해드리겠습니다. 학원비, 아니 등록비는 얼마입니다.” 바로 이런 양태로 인하여 교회와 가정이 ‘다음 세대’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뉴질랜드는 한국보다 상황이 좋다. 고등학생만 되어도 교회를 나오지 않고, 주일 아침 9시 예배 드린 후, 곧바로 학원과 학교로 달려가지는 않으니 말이다.(고3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여기는 고3(Year13)이 토요일에 교회를 온다. 주일에도 거의 하루 종일 교회에서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는 불가능하기만 해 보이는데, 여기는 아직도 가능하다.
교회와 가정이 깨어서 ‘다음 세대’ 사역의 본질에 눈을 돌린다면, 뉴질랜드 한인교회는 여전히 소망이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