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2월 크라이스트처치는 지진이라는 큰 재해를 만났습니다. 많은 이들이 다쳤고 목숨을 잃었으며 삶의 터전 또한 많이 잃었습니다. 추억이 담긴 집이나 건물들을 잃었고 많은 이들이 크게 놀랐으며 또 어떤 이들은 상심했었습니다.
하지만 얻은 것도 있었습니다. 지진 이전의 크라이스트처치는 겉으로는 매우 평화로웠지만 그 이면에 은근히 이민자에 대한 반감이 일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은 물가가 서서히 오르며 생활이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밀려오는 이민자들 때문이 아니겠냐는 억지 주장들로 이어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평화로우며 풍요로운 이 나라는 자신들 조상의 희생으로 어렵게 세워진 것인데 이민자들이 무임승차하여 많은 혜택들을 거저 누린다는 불만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런데 덜컥 지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리셋 되어버린 크라이스트처치는 이전의 잡다한 생각들을 모두 접고 모든 것을 영점에서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인종, 나이, 성별, 출신을 초월해 하나가 되어 도시재건에 힘을 쏟았습니다.
한해 한해 거듭되며 도시재건에 기꺼이 열심과 희생을 다 하는 이민자들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이로 인해 모두가 하나가 되어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이후로도 폭설, 폭우, 강풍, 산불 같은 재해들이 잇따랐지만 크라이스트처치 시민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 되어 이 도시의 재건과 발전을 위해 애쓰다 보니 사실 인종차별이니 빈부격차니 따질만한 여유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없을 정도였죠.
어찌 보면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매우 이상적이고 평화로운 공존이 있는 도시로 성장해 가고 있었다고 봅니다. 그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다양성을 핑계 대며 해코지를 벌이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쯤, 지난 3월의 테러가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은 그날 이후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습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지진 이후 크라이스트처치는 다양한 이민자들이 섞여 있으면서도 큰 충돌 없이 평화로운 도시로 나날이 새로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 출신은 아니어도 지금 이곳에 살고 있으니 이곳의 시민이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터전을 이루고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곳 출신도 아니요, 이곳에 사는 사람도 아니요, 이곳의 발전을 위해 그 어떠한 힘도 보태준 적 없는 미치광이 한 사람이 무모한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이 도시를 비롯하여 전 세계가 자신의 행동에 주목하고 혼란 속에 빠져들기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테러당일, 그리고 며칠간은 온 크라이스트처치가 혼란 속에 있었습니다. 테러가 일어났던 사건 현장은 경찰에 의해 봉쇄되었고 그 인근 주민들은 자기 집에 들어가는데 수일이 걸렸습니다. 뉴질랜드는 테러 위험수위를 최고 수준으로 발표하고 긴급하게 움직였지요. 사건 현장은 참혹하여 수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모스크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지금까지도 무장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저는 다시 한번 크라이스트처치의 시민들의 의지에 놀랐습니다. 그렇게 큰일을 겪고도 사람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사건 현장을 제외한 지역들은 수 시간 내에 일상으로 돌아왔으며 사람들은 정말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심지어 다음 날 아침 출근부터는 다소 차량정체가 심해진 것 외에는 이렇다 할 만큼 달라진 것이 없었을 정도였습니다. 테러라는 큰일을 겪었음에도 나 자신보다 더 아파할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돕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실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행위로 인해 모든 것이 혼란에 빠져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이에 대한 완벽한 대처는 혼란에 개의치 않고 속히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크라이스트처치는 이것을 해낸 것 같습니다.
또한 정부의 발 빠르고 공정한 대처는 뒤이어 나올 수도 있었던 또 다른 피해를 줄였다고 봅니다. 어쩌면 기독교인들에 의한 테러로 오해 받을 수 있는 이번 테러가 한 미치광이의 우매한 행동으로 바르게 이해될 수 있도록 하고, 이런 아픔이 있어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 됨을 위해 노력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발 빠르고 냉철한 이성적 판단과 적극적인 실행에 있었다고 봅니다.
인류애를 발휘한 일련의 행보들은 다른 이슬람 국가들을 비롯해 무슬림 난민들을 수용하며 혼란에 빠진 유럽국가들에게 감동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신다 아던 총리의 리더십이 재평가를 받게 되었고 그녀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상대적으로 무슬림의 비율이 높지 않던 뉴질랜드는 이번 테러를 계기로 이슬람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테러 이후 몇 주간은 이슬람의 금요기도 시간에 맞춰 합동 기도회가 열렸고 많은 이들이 참여했습니다. 물론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집회였지만 극소수였던 무슬림들에게는 ‘기적’이었을 테니까요.
무슬림 국가 한복판에서 기독교인들의 집회가 열린다면 우리가 얼마나 감격하겠습니까? 아마 그들에게는 그 정도의 감격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무슬림들에게 주목 받지 못하던 뉴질랜드가 새로운 이민대상지로 주목 받게 된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슬림을 배척하자는 무식한 말이 아닙니다. 소심하고 걱정 많은 제 생각에는 믿음의 뿌리가 튼튼하지 않은 채 평화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맹목적인 추종이 조금 염려스럽다는 뜻입니다. 인류애와 종교의식은 동의어가 아니니까요.
또 하나 이번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폭력에 대한 인식입니다. 사실 이번 테러를 일으킨 이는 혼란을 주기 위해, 다양성을 지양하기 위해, 늘어나는 무슬림 이민자를 배척하기 위해, 백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이 일을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모한 행동의 결과를 보십시오. 모든 것이 그의 생각과 반대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폭력은 이렇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폭력은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폭력이 일시적으로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해 줄지는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게 해 주지 못하며 오히려 더 위험한 반발을 품게 만들어 결국 더 큰 충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 이번 일을 통해 더욱 선명히 드러났습니다.
누구나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주장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 생각하고 저지르는 폭력은 이기심의 정점으로 올라서는 일이며 마귀의 도구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그가 만약 테러 대신 곳곳을 돌며 토론을 벌이고 생각을 나눴다면 그의 주장은 테러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재해, 재난이라는 것은 이 지구 어느 곳이든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크라이스트처치가 도시의 크기치고는 제법 굵직한 사건, 사고, 재해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성숙한 모습으로 이겨내고 지난 일에 집착하기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며 다 함께 한 단계씩 성숙해져 가는 모습들을 보여 왔습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더 이상 지난 아픔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일들로 희생된 이들은 기억하되 미래를 위해 과감한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으로 더욱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에 긍정의 에너지를 얻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서 더 이상 이런 어리석은 일로 사람들이 고통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며 또 동시에 노력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이 도시가 건강하게 성장하여 지구상의 모든 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도시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