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이루어 가실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었다.
나는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고, 잘 할 수 있는 것도 그다지 없는 지극히 평범한 한 사역자이었기에 더 그러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저 묵묵히 나에게 맡겨주시는 일을 하나씩 감당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가능한 말씀을 많이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모든 것이 어려웠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차가 없는 경우 반드시 픽업이 필요한 불편한 교통 상황과 경제적인 어려움, 그리고 바쁘지 않은 듯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들, 핑계를 찾고 나열 하다 보면 끝이 없을 만큼 많은 이유들이 말씀을 양육하거나 배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마음은 적잖은 실망감으로 지쳐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청소년부를 함께 섬기고 있던 T청년교사가 찾아와서는 놀라운 말을 꺼냈다.
“말씀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은데 말씀을 가르쳐 줄 수 있나요?”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와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작은 호기심인가 싶어 의아하기도 했다. 모두가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말씀을 배우는 것에 관심도 보이지 않던 때에 나를 찾아와 말씀을 가르쳐 달라는 말을 꺼내는 이 청년은 누구인가 싶었다.
T교사와 나는 말씀을 좀 더 가까이 해보기로 결정을 하고 일주일에 한번 시간을 내어 양육을 시작했다.
당시 T교사는 청소년부 찬양팀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처음 성경 공부는 단순하게 청소년부 찬양팀에서 사용되는 공과 교재를 미리 예습하고 어떤 것을 중심으로 나눌 지를 준비하는 간단한 시간으로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T교사는 말씀에 대한 많은 궁금증들을 물어왔고 공과교재로는 충분히 말씀을 섭취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체계적인 양육을 위해 내가 제자훈련 받을 때 배웠던 교재를 한국에서 공수하게 되었으며, 1권부터 차근히 말씀을 다져가는 양육을 하기 시작했다.
말씀을 나누면서 나는 20대에 말씀으로 나를 깊이 만나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회복하는 은혜를 덩달아 누리며 말씀에 다가가는 삶이 주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T교사와 공부하면서 말씀에 대한 궁금증과 의문들이 생길 때마다 성경을 찾고 성경이 제시해주는 답을 찾기 위해 말씀 안에서 정말 신나는 여행을 했다. 너무도 꿈 같은 시간들이었고,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T교사는 말씀에 더 깊이 다가섰고 조금씩 더욱 견고하게 말씀 위에 세워져 가는 은혜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말씀이 가진 능력이며 기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일취월장’이라는 사자성어처럼 나보다 더 말씀을 사모하게 되고 이제는 스스로 말씀을 찾아서 공부하며 더욱 말씀대로 살기를 애쓰는 청년의 모습을 지금도 보고 있다.
물론 말씀을 조금 공부하였다 하여 한 사람의 삶이 요동치지 않고 늘 동일한 모습으로 살아 지지 않는다. 때문에 말씀을 사모하고 찾고 가까이 하는 일이 멈추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T청년은 말씀 양육을 마친 그 이후 지금 까지도 여전히 교회 안에서, 또 학교에서, 친구 관계에서도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며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멈추지 않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예전에 한 조사에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말씀을 배우지 못해서다.’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교제하고 즐겁게 노는 법은 굳이 교회 안에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세상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는데 왜 교회까지 가서 노는 법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가장 많았다는 내용이다.
이는 교회를 찾는 수많은 청년들과 청소년들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말씀에 더 목말라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난 이 귀한 청년은 아마도 그 조사의 한 예가 되는 듯 말씀으로 채워지려고, 말씀을 더 사모하려고, 말씀으로 세상과 구별되려고 몸부림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청년의 삶을 돌이키면서 나 또한 다시 다짐해본다. 내게 맡겨주신 한 영혼이라도 더 말씀 위에 서도록 돕는 사역을 해야겠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것은 멈출 수 없는 나의 사명이며 나의 길이다.
교회들은 청년들이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사라져간다고 걱정한다. 그렇지만 말씀도 제대로 양육하지 않는다. 아마도 말씀이 그들을 만지실 수 있도록 그 자리를 내어드리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건 아닐까?
나부터 다시 말씀께 귀한 영혼들을 부탁 드리는 일을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