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라이프

아빠가 낳은 아이

필자의 임신 기간은 정말 감사하게도 특별히 크게 힘든 일이 없었다. 밥 냄새를 무척이나 싫어했으며 음식 냄새에 조금 민감했을 뿐 임신 초기에 한 달 정도의 해외여행을 순조로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잘 보냈었다.

예정일 두 달 전까지도 풀 타임 일도 어려움 없이 해냈으며 두 달 전에 출산휴가를 신청한 이유도 힘들어서가 아닌 첫 아이 임신이라 준비할 시간이 뭔가 많을 것 같고 나름 스스로가 좀 여유로웠으면 하는 바램으로 두 달 정도의 시간을 잡고 출산을 준비했다.

친정이 한국에 있는 터라 남편이 기억하는 아내의 임신 기간은 필자가 엄마를 꽤나 그리워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임신 중이어서가 아니라 떨어져 있기에 그냥 늘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닌가 싶지만 머리 큰 자식은 엄마와 둘이 일주일 넘게 붙어 지내면 다시 서로 그리워할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고 만다.

출산휴가가 시작하고 한 달간은 아침잠도 실컷 자고 아이 방도 꾸미고 임산부 요가 교실도 다녔다. 특히 요가 수업 시간에 천장에 매달린 줄을 타고 거꾸로 매달리는 자세는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재미있었다.

저녁 식사 후 남편과 함께하는 산책도 나의 하루 중 참 좋았던 일과였는데 깜깜해진 길가가 아닌 환히 불이 켜진 텅 빈 Pak’n Save 주차장을 걷는 일이 꽤나 특별했다.

아이를 만나기 한 달 전은 드디어! 한국에서 친정엄마가 오셔서 엄마가 해주신 엄마 밥도 많이 먹고 좋은 시간을 가졌다. 엄마가 있는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엄마가 되는 일은 더욱더 멋진 일이 아닌가?

시그
필자는 이슬이 비친 그날 아침, 집에서 30분가량 떨어진 바닷가로 남편 지인들과 함께 예정되어 있었던 바비큐 파티를 떠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여유로웠다. 초산을 앞둔 산모치곤…

토요일이 이슬이 비쳤던 날 그 다음 날에 가진통이 시작됐다 아주 먼 간격으로 배가 아파왔지만 계속 걸었다. 교회 가서도 앉지 않고 쉬지 않고 뱅글뱅글 주변을 돌며 걸었고 진통이 심해지는 다음 날에도 최대한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하는 남편을 잡았다.
“오늘 아기가 나올 것 같은데… 내가 전화하면 바로 와야 해! 알겠지?”

진통은 점점 심해졌고 10시쯤 미드 와이프를 불렀다. 내진하더니“아직 멀었어요”하곤 가버렸다. 두 시간 뒤에는 진통이 정말 심해져서 남편에게도 집으로 오라고 불렀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의 손을 잡고 짐볼 위에 올라가 계속 몸을 움직이며 짧아진 진통 간격과 통증을 참아야 했다.

그 당시 아직까지 기억에 남았던 장면은 나는 아파죽겠는데 친정엄마와 남편은 내가 우스운 소리를 낸다고 입을 틀어막고 참으며 웃었다.

정말 그 순간 그 둘 참 원망스러웠는데 아직까지 생각하면 서운하다. 난 진짜 너무 아팠었다. 그리고 낮 2시 정도에 미드 와이프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남편과 함께했던 출산
병원에 도착했을 때도 남편은 계속 나를 걷게 하였다. 진짜 한 발자국도 더 이상은 못 걷겠는데 나를 일으켜 가며 손을 잡고 계속 병원을 걸으며 돌게 했다.

양수가 터지지 않아 병원에서 터트렸고 양수가 나오자 진통이 정말 극에 다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팠다. 소가 송아지를 낳는 것처럼 날뛰고 울부짖은 것 같다.

그렇게 병원 도착 후 6-7시간의 진통을 겪는 도중 갑자기 아이가 나왔다. 미드 와이프가 깜짝 놀라 아이의 머리가 보인다고 하자 남편은 내 머리 바로 옆 침대 옆쪽에 붙어 서서 라마즈 호흡을 소리소리 지르며 함께 했다.

필자는 그때 제정신이 아니어서 기억이 안 나지만 문밖에서 기다렸던 친정엄마는 둘이 애를 쓰는 소리가 여간 우스울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보통 친정엄마들은 밖에서 딸이 힘들어하는 소리에 눈물 난다고 하나 필자의 어머닌 웃느라 혼났다고 하셨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ing
아빠가 들려준 태교 동화를 듣고 자란 아기는 아빠의 응원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나 4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도 사랑이는 아빠의 좋은 친구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매 순간을 함께 해준 7년 차 남편이자 5년 차 사랑이 아빠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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