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다가 어느 순간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니 어렸을 때의 순수함과 간절한 마음들이 점점 사라지는 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경쟁이 덜하고 편안한 뉴질랜드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그 삶에 안주하며 그저 편안한 삶을 추구하려고 하는 마음들.
어렸을 때와 달리 무엇에 간절하지도 않고 도전 의식도 사라지고 사명에 대한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들.
저는 아마 두리하나에 있던 북향민 어머니를 두었던 이 친구 덕분에 “사명과 간절함”이 무엇일까 다시 고민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무엇에 간절해야 하나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가 두리하나에서 만난 한 어린 친구를 보며 만들었던 노래와 마음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이 친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 친구 말에서는 욕이 멈추지 않고, 가시 같은 말로 주변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끊임없이 아프게 하고, 불같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거짓말과 이간질로 많은 사람의 신뢰를 잃기도 했지요.
늘 예민하고 강한 모습을 보여서 쉽게 다가가는 것조차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이 친구의 기도하는 모습을 CCTV로 본 적이 있습니다. 새벽기도에 모든 학생이 나간 후에, 땅에 무릎을 꿇으며 손을 높이 들며 핏줄을 보이기까지 울부짖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친구의 행동과 너무나 연결이 되지 않았던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친구가 나갔을 때 앞에 나아와 기도하는 그 모습이 영상에 담겨있었습니다.
순간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늘 예민하고 강한 모습들. 거짓말과 이간질한 일들. 만약 이런 것들이 자신이 관심을 받기 위해서, 사랑에 메말라 있어서 그랬던 거라면, 자신이 더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보호차원에서 그런 것이라면, 그저 표현이 거칠었을 뿐 자신을 이해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 CCTV에 담긴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 아이는 어떤 아픔이 있었을까? 어떤 힘든 마음 때문에 그렇게 간절하게,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걸까? 물론, 새벽이 지나 아침이 되고 학교 안에서의 행동은 바뀐 것 하나 없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에, 눈치 보며 거짓말하는 것들. 어떤 것이 그 친구의 진짜 모습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그저 성장하는 중이지 않을까? 인간 모두가 그렇듯 완벽하지는 않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따르려고 애쓰는 그런 상황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친구가 무엇에 간절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어떤 것에 저렇게 무릎을 꿇으며 나를 내려놓고 간절해야 하나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카메라에 담긴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다가 그 친구의 마음을 담아 노래를 만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기도하는 이’입니다.
“기도하는 이가 있어/ 모두가 나간 이 자리에/ 기도하는 이가 있어/ 혼자 상한 마음으로/ 아버지 듣고 계시죠/ 눈물 흘리는 이 간절함을/ 기도하는 이의 손을 움켜쥔 이 간절함을/
안정감을 주고, 평안함을 줄 수 있는 가정을 북향민 부모를 가진 학생들로부터 찾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북한에서 가정이 다 못 나온 경우가 있고, 엄마가 인신매매로 중국에서 원하지 않게 태어난 아이들도 있고, 한국에서의 삶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태어나기가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말씀을 배우고, 기도를 하게 되고, 예배를 드리는 훈련을 하다 보면 정말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소개한 북향민 어머니를 두었던 친구. 비록 삶의 모습은 아직 미숙할지 몰라도, 그 마음에서는 아픔을 예수님께 고백하고 자신의 혼란스러움을 솔직하게 기도하는 모습들을 보면 어쩌면 우리도 그런 모습은 본받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Youtube : https://youtu.be/sW2h4QONbu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