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엔젤, 당신을 사랑하기 시작했기에 전 영원히 당신을 사랑해요. 어떤 변화가 있든, 어떤 굴욕스러운 일이 있든 당신은 당신 자체이기에 더 이상 바라지 않아요. 그런데 어떻게 당신, 아, 바로 제 남편인 당신이 절 사랑하지 않게 될 수 있단 말인가요?”
(엔젤) 되풀이하는데, 내가 사랑했던 여자는 당신이 아니오.
(테스) 그럼 누구인가요?
(엔젤) 당신 모습을 한 다른 여자요.
결혼 첫날 밤 남편 엔젤(Angel)은 지나간 과실을 털어놓았다. 방황하던 시절 런던에서 낯 모르는 여자와 방탕한 시간을 보냈던 사실을 고백하자, 테스(Tess)도 용기를 내어 알렉(Alec)과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엔젤은 테스가 순결한 처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심한 배신감을 느끼며 그녀를 떠나버린다.
‘테스(Tess of the d’ Urbervilles)’는 영국 작가 토머스 하디(Thomas Hardy)가 1891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테스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다.
가난에 시달리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고 말았지만 오히려 그 사실이 평생의 족쇄가 되었다. 불우한 삶의 덫에서 끝끝내 헤어나지 못한 채 결국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테스를 비극의 수렁에 빠트린 건 바람둥이 알렉이었다. 테스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더버빌 농장에 가서 양계 일을 돌보게 되는데, 거기서 그 집 아들인 알렉과 마주친 것이다.
알렉은 미모의 테스를 처음 본 순간부터 줄곧 유혹하다 마침내 어느 날 밤 숲속으로 테스를 데려가선 순결을 빼앗았다.
테스는 그의 아이를 임신한 채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이를 낳았다.
당시 가톨릭 교회에선 사생아로 태어난 아기에게는 유아세례를 주지 않았다. 이 아이는 얼마 못 가 죽었는데, 엄마 테스는 아이가 죽기 전 직접 세례를 베푸는 결기를 보였다. 그 직후 테스의 모습을 소설은 이렇게 표현한다.
“세례식을 치른 후 침착함을 유지했던 테스의 태도는 아기를 잃었을 때도 바뀌지 않았다. 원칙을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런 천국은 자신을 위해서나 또는 자신의 아기를 위해서나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알렉으로부터 비롯된 테스의 불행은 엔젤을 만나면서 회복되는 듯했다. 고향을 떠나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먼 곳의 어느 목장에서 일하던 테스가 그곳에서 엔젤을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엔젤은 목사 아들로서 농부가 되기 위해 낙농장 일을 배우고 있었으며, 진보적 사상가이기도 했다. 그는 테스를 열렬히 사랑했고 어둠 속에 갇혀있던 테스의 영혼에 사랑의 빛을 던짐으로써 테스가 결혼의 새 출발을 결심할 수 있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엔젤의 사랑은 너무도 무능력했다. 테스가 순결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엔젤은 그 자신의 사랑을 지켜낼 힘조차 없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엔젤은 브라질로 떠나고 만다. 그가 편지할 때까지는 먼저 연락하지 말라는 부탁까지 남기고. 테스는 농장에서 막일하면서 엔젤을 기다렸다.
이때 테스의 마음은 과연 얼마나 참담했을까. 그 모진 속앓이를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읽으며 느껴보자.
나 보기가 역겨워 / 가실 때에는 /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이 시는 겉으론 님과의 이별을 초연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인즉 되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담고있다. 소월의 다른 시 ‘못 잊어’가 그런 속내를 풀이한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 그러나 또 한긋 이렇지요 / 그리워 살뜰히 못 잊는데 / 어쩌면 생각이 떠지나요?
테스 역시 그랬다. 엔젤을 못 잊어 머릿속에서 그의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던 그녀 앞에 놀랍게도 목사로 변신한 알렉이 다시 등장했다. 알렉은 종교인의 탈을 쓰고 있었지만, 테스를 보는 순간 감춰진 욕정이 되살아났다.
목사의 신분을 내팽개치고 다시 테스에게 추근거렸다. 테스의 가족은 아버지가 죽으면서 경제적으로 더욱 어려워진 상태였다.
결국 테스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토록 혐오하는 알렉과 결혼하고 만다. 그런데, 어느 날 테스 앞에 브라질에서 열병을 앓아 일자리도 잃고 수척해진 모습으로 엔젤이 나타난 것이었다.
(엔젤) 용서해줘요. 내가 잘못했어요.
(테스) 이젠 늦었어요. 당신의 편지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미 알렉의 여인이 된 테스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런 모습을 보며 알렉이 빈정거리자 테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살해하고 만다.
엔젤과 테스는 도망을 친다. 테스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그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마지막 5일을 보낸다. 그리고 테스는 잠든 사이에 들이닥친 경찰에게 잡혀간다. 얼마 후 그녀의 사형을 알리는 검은 깃발이 바람 속에 펄럭이며 올라간다.
‘테스’는 이렇게 끝난다. 독자의 마음을 아리게 하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책을 덮는 여운 속에 테스의 연인이면서 남편이었던 엔젤의 캐릭터를 곰곰이 돌이켜 본다. 엔젤은 테스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그저 사랑할 뿐이었다.
여성 정조란 인습을 넘어서지도 못했고, 살인죄로 도망친 테스를 위해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단지 5일간의 애정 도피행각뿐이었다.
우린 여기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랑이란 이런 것인가? 그저 사랑한다고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한가?
이 여인을 보면서 우린 구원이란 인생 주제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테스의 인생은 이 소설의 결말처럼 이렇게 허무한 비극으로밖에 끝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우린 사랑을 구하되, 사랑하는 자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랑을 소망한다. 그때 소설예배자는 우리 인생이 만날 수 있는 한 가지 큰 위로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엔젤은 우리에게 복음에 대한 반면교사의 역할을 한다.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연인을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낼 수 있어야 한다.
로마서 1:16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한다. 우린 믿는다. 예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해낼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랑이다.
이 작품에서 엔젤은 테스를 위해 희생한 적이 없다. 예수님은 그 테스를 위해서도 대신 십자가를 지셨다. 만약 테스가 가난, 성폭행, 이별, 절망의 순간에 그 십자가를 붙들 수만 있었더라면…
예수님은 교회에 사랑의 계명을 부여하셨다. 요한복음 13:34 이 그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그렇다면 테스를 읽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에게 던지게 될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내 사랑은 나의 테스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