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정(淨耳亭)이 어딘가요?

때로는 카톡이나 전화나 이메일로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화요음악회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 처음으로 찾아오려고 하다가 내게 주시는 질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이정은 그냥 저희 집입니다. 음악실에 이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붙인 이름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그 쓰임 받음에 따라 격이 달라지고 운명이 달라집니다.

저희 집 1층은 한가운데가 주차장이었고 양쪽에는 창고가 있었는데 직사각형의 양쪽 창고는 꽤나 넓습니다. 그 중의 왼쪽 창고를 조금 손봐서 음악실을 만들었습니다. 천정이 조금 낮은 것이 흠이지만 그런대로 열 댓 명이 음악을 듣기에는 손색이 없습니다.

오른 쪽의 창고는 음악실보다 훨씬 큽니다. 이곳도 조금 손보아서 도서실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8천 권 이상의 책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훌륭한 도서관입니다.

손보기 전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잡동사니로 꽉 차있던 창고들이 지금은 변신하여 하나는 음악실이 되어 음향(音香)을 뿜어내고 하나는 도서실이 되어 문향(文香)을 풍기고 있습니다.

화요음악회가 시작된 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인데 그럴듯한 이름하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음악평론가 박용구(朴容九) 선생께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은 때가 2016년 6월이었습니다.

내가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하며 구입했던 선생님의 5권짜리 클래식 입문도서 교양의 음악을 통해서였습니다.

내 평생 처음으로 샀던 음악관련 서적이기도 했지만 음악에 눈뜨기 시작하던 그때 그 책들은 불모의 땅에 흘러 든 샘물만큼이나 제게 귀한 책들이었습니다. 산지 5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 책들이 항시 내 서재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102세까지 장수하신 선생께서는 노년에도 항상 건강하셨고 또 만년에 여유가 생기자 댁에 음악실을 마련하고 여러 분들에게 음악을 들려 주면서 그 음악실 이름을 세이정(洗耳亭)이라 이름 지으셨다 했습니다.

그 해 6월말 159회 화요음악회에서 나는 회원 분들에게 박용구선생과 세이정(洗耳亭)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우리 음악실에도 이름을 지어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정이정(淨耳亭)입니다.

화요음악회에 와서 음악을 들으며 마음과 귀를 깨끗게 하면 우리 모두도 박용구선생처럼 102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덕담과 더불어 생겨난 이름입니다.

교향시 죽음과 변용(Tod und Verklarung, op. 24)
이날 들은 음악 중에 하나가 리하르트 스트라우스(Strauss, Richard Georg), 1864~1949)의 교향시 죽음과 변용(Tod und Verklarung, op. 24)였습니다.

명 호른주자이자 뮌헨음악원의 교수였던 프란츠. J. 스트라우스의 아들인 리하르트 스트라우스는 철학도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지휘도 잘했지만 특히 뛰어난 관현악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교향시 죽음과 변용입니다.

오늘 해설은 박용구 선생의 저서 ‘교양의 음악 2권 관현악 편(232-233쪽)’에 소개된 내용에서 발췌합니다.

25세의 스트라우스는 실감에서 우러난 교향시를 발표해서 그의 명성을 한층 더 높였다. 그는 20세를 전후해서 죽음에 직면할만한 큰 병을 앓고 죽음이라는 인간 영원의 운명과 대결했던 것이다.

그의 교향시‘죽음과 정화’를 듣고 시인 알렉산더 리터(Alexander Ritter, 1833-1896)는 한 편의 시로 이 작품의 내용을 노래했다.

<무덥고 좁은 방에 타다 남은 촛불이 희미한 빛을 던지고 병자는 자리에 누워있다. 그는 절망적으로 죽음과 싸우고 있다. 피로해서 그는 잠이 든다. ……그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떠오른다. 단말마의 순간에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꿈에 보는 것일까? 그러나 죽음은 이미 병자에게 수면과 꿈을 허락지 않는다. ……삶의 의지와 죽음의 폭력! 얼마나 처절한 싸움인고! ……열병에 들뜬 병자는 지나간 생애를 주마등처럼 본다. ……그는 신성한 목표를 향해서 전진한다. 그때 죽음의 철추가 최후의 일격을 가해서 지상의 육체를 둘로 갈라 놓고…… 그러나 천상에서 그가 동경하고 바라던 것을 여기서 맞으라고 힘찬 소리가 울려온다. 지상에서의 해방, 시장의 정화. >

<뮤트(弱音器)를 낀 현악기 족의 싱코페이션(切分音) 리듬으로 조용한 죽음의 모티브가 스며 들어오는 서주부의 라르고로 시작되는 이 곡은 경련과도 같은 짧은 모티브에 이어서 과거의 달콤한 추억에 잠기는 듯한 몽상적인 플루트의 테마가 아름다운 하프의 반주와 함께 발전한다. 그러나 임종이 가까운 병자의 발작 같은 알레그로로 변하면서 죽음과 싸우는 병자의 반항적인 몸부림이 음악을 클라이맥스로 몰아간다. 이 때 병자에게 광명을 주려는 듯 정화(淨化)의 모티브가 트롬본 등의 포르테로 솟구친다. 그러나 그 세력은 사라지고 최초의 죽음의 모티브가 투티(總奏)의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다. …… 마지막 부분은 영혼의 정화, 정화의 모티브는 호른으로 불어진다. 그것은 천상의 음악을 연상시킬 만큼 장엄하고 황홀한 피날레다. >

이날 들은 연주는 Herbert Von Karajan이 지휘하는 Berliner Philharmonike의 1974년 녹음이었습니다.

이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 그리고 육신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서는 결코 극복할 수도 없고 피해갈 수도 없는 죽음이기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료하게 선언해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 11: 25-26)”

아름다운 음악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는 해주지만 삶과 죽음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붙잡을 것은 부활이요 생명이라 선언하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붙잡고 승리하시는 매일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화요음악회는 교민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며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에 Devonport의 가정집 정이정(淨耳亭)에서 열립니다. 관심 있는 분께서는 전화 445 8797 휴대전화 021 717028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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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찬
서울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 사업을 하다가 1985년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났다. 20년간 키위교회 오클랜드 크리스천 어셈블리 장로로 섬기며 교민과 키위의 교량 역할을 했다. 2012년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클래식음악 감상회를 열어 교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만남의 장을 열어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