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평화를!

아이유브 왕조(1193~1250년)
프랑크인들이 중심이 된 십자군은 1099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 십자군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차지한 사람이 살라딘(본명은 살라흐 앗 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이다. 쿠르드족 출신인 살라딘은 삼촌인 시르쿠 휘하에서 자라서 이집트의 파티마왕조를 누르고 술탄(왕)이 되었다.

그리스도교 예루살렘 왕국은 이슬람 한가운데에서 거의 100년 동안 예루살렘 성지를 지켰으나 1187년 살라딘에 의해 치명적인 패전을 당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었다. 해변지역으로 물러난 예루살렘 왕국을 돕고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영국의 사자 왕 리처드와 프랑스의 필립2세가 중심이 된 제3차 십자군이 결성되어 출동했다.

용맹한 리처드도 예루살렘을 수복하지는 못하였고 살라딘과의 휴전 조건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예루살렘 순례 시 안전을 보장받았다.

살라딘이 죽은(1193년) 후 삼촌인 사파딘이 술탄이 되었고 1250년 맘루크 왕조에 의해 권력을 빼앗길 때까지 아이유브 왕조를 이었다.

맘루크 왕조(1250~1516)
아이유브 가문의 노예였던 중앙아시아 투르크인 바이바르는 주인의 신뢰를 얻어 노예에서 해방되었고 신분이 상승하여 군대의 지휘관이 되었다. 몽골군이 시리아를 공격했을 때 바이바르는 수비대를 이끌고 나가 나사렛 근처에서 몽골군을 격파하였다. 몽골군이 정복하지 못한 유이한 나라가 바로 일본과 맘루크 왕조의 시리아이다.

바이바르는 자신이 세운 공로를 보상하지 않는 술탄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했다. 그리고 바이바르는 살라딘에 의해서 해변 아크레에 밀려난 채 거의 100년이나 유지하고 있는 예루살렘 왕국을 1291년 완전히 정복하였다.

십자군에 의해 건립되었던 그리스도교 예루살렘왕국이 멸망한 후 그 땅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 이슬람의 땅이었다. 아랍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636년에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도교 세력을 몰아낸 오마르와 1291년 예루살렘 왕국을 완전히 몰아낸 바이바르를 영웅으로 떠받들었다.

그러나 근대로 들어오면서 바이바르 대신 예루살렘을 되찾은 살라딘을 더욱 영웅시 한다. PLO의 대표였던 야세르 아라파트는 생전에 자신을 오마르와 살라딘에 동일시하기를 좋아했다.

오스만 제국(1516~1919)
1516년 오스만(영어로는 오토만)제국 황제 셀림 1세가 예루살렘을 접수한 이래 400년을 통치하였다.

영국 위임통치(1920~1947)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중동지역의 오스만제국의 통제권은 거의 상실되었다. 세계전쟁에서 독일 등 추축국의 편을 든 오스만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영국은 아랍민족들에게는 맥마흔 서신을 통해 반란을 부추켰고, 유대인들에게는 벨푸어 선언으로 독립을 약속하여, 같은 지역에 두 나라의 독립이라는 불가능한 약속을 하였다.

19세기 말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시오니즘은 영국의 위임통치 시절에 유대인들의 본격적인 이민을 대세로 만들었고, 그 이후의 과정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둘러싼 중동전쟁까지 앞에서 살펴본 바이다.

예루살렘에 평화가 올 수 있을까?
예루살렘은 1,000년동안 배타적인 유대교 지역이었고, 400년간은 그리스도교 지역이었으며, 1,300년간은 이슬람 지역이었다. 그 세 종교들 중 어느 것도 칼, 투석기, 기타 공성 장비 없이는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하였다.

그곳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민족주의적인 이야기들은 영웅적인 승리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거기에는 기존의 다른 종교 주민들에 의한 처절한 저항과 그들에 대한 잔혹한 살해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이교도인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킬 때 죽임을 당하고 추방되었던 유대인들은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되찾았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 사람들과 유대인들이 무참한 죽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살라딘의 관대함에 몸값을 지불하고 살아날 수 있었으나 바이바르가 왕국의 나머지를 정복할 때 거의 잔혹하게 죽임을 당하였고 남은 사람들은 노예로 팔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현재 여전히 세 종교의 성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성전 산에는 이슬람의 성전인 알 아크라가 있다. 또한 그 땅 아래 유대인의 성전 터가 있고 서쪽 벽이 남아있다. 예수님이 수난을 당하신 비아돌로로사를 비롯하여 성묘교회가 이슬람 시대에도 그리스도인들의 예배의 장소로 남아있었으며, 지금도 그렇다.

1948년 유대인의 독립은 아랍인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전쟁은 전쟁을 낳고 폭력은 폭력을 낳으며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 땅 팔레스타인에 평화가 올 수 있을까? 평화의 마을 이라는 이름을 가진 예루살렘이 과연 중동의 화약고가 아니라 이름 그대로 평화의 마을이 될 수 있을까? 세 종교가 똑같이 유일한 신으로 모시는 하나님은 이 땅이 어떤 모습이기를 원하실까?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래 수천 년간 이스라엘 땅의 회복을 꿈 꾸며 기도했다. 유다 마카베오의 혁명으로 잠시 왕국을 되찾았으나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은 또 하나의 지배자에 불과했고, 온전한 이스라엘 회복을 위하여 바리새파를 비롯한 유대교 분파가 생겨났다.

로마의 지배와 예루살렘의 멸망은 유대인들에게 더욱 간절한 열망으로 다윗왕 시대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였다. 로마가 추방령을 내려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죽인 자들로 유대인들에게 잔혹하게 대하여도, 이슬람 사람이 핍박하여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성전산에 와서 예배하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돌아왔다.

예루살렘에 대한 꿈은 유대인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훨씬 더 많고 강력한 힘을 가진 그리스도인들도 예루살렘을 순례하였고,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하여 십자군을 보내었다.

중동전쟁에서 끝내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이유가 그렇듯이 지금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후원자가 미국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다. 복음주의자들은 마지막 종말을 위하여 두 가지 선결조건을 기다린다.

이스라엘은 수복되고 예루살렘은 이제 유대인의 것이 되었다. 남아있는 것은 제3성전의 건축과 아마겟돈 전쟁이다. 그러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고 예수의 천년왕국이 실현된다고 한다.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예루살렘은 이제 유대인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현재 예루살렘 시민 26만 7,800명 가운데 19만 6,700명이 유대인이고 7만 1,000명이 아랍인이다. 살라딘의 아들 아프달이 건설한 마그레비 구역의 거주지를 철거하고

좁은 골목만 남아있던 그곳을 광장으로 만들었으니 지금 통곡의 벽이라 불리는 옛 성전의 서쪽 벽이다. 예루살렘 교외와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옛 주거지에 많은 정착촌이 만들었다.

야세르 아라파트와 파타는 1969년 팔레스타인 해방전선(PLO)를 접수하였다. 아라파트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하여 민간인 살해와 비행기 납치 같은 투쟁에 열을 올렸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은 11명의 이스라엘 운동선수를 살해했다. 그러던 야세르 아라파트와 인디파타는 1988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2국가 해법을 수용하였다. 서안과 가자 지구를 영토로 하고 알 쿠드스(예루살렘의 아랍어)를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설립하기로 하였고, 현재 유엔에 비회원 업저버 국가로 가입되어 있다.

그러나 1987년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창설한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가자 지구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다. 그들은 유대인의 국가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시로 자살폭탄으로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이스라엘 지역으로 미사일을 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은 가자 지역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이다.

예루살렘의 평화 그림은 갈등이 없을 때 유대인, 무슬림,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지내는 방식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유대인 국경일과 라마단이 겹쳤을 때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성소와 서쪽 벽으로 기도하러 가면서 골목마다 교통체증이 일어났지만 근본적으로 충돌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회피하였다. 말을 나누지 않고 서로를 보며 지나쳤다. 양측 모두 자기 식으로 그 장소나 행동의 이름을 부르고 양측 모두 그것이 자기의 것이라 주장하며 무리를 지어 지나갔다. 어쩌면 이것이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 아닐까? 서로 회피하며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적어도 유엔총회결의 제181호 내용대로 그 후 전쟁으로 얻은 점령지를 내어주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생존권과 자존심을 위협하는 정착촌의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에 대한 유대인의 역사적 연고를 인정해야 한다. 야세르 아라파트는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유대교의 성전이 존재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였다. 유대인은 수많은 억압과 불리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그 땅에 돌아와 합법적으로 거주하였다.

이스라엘은 현재 예루살렘을 실질적으로 점령하여 통치하면서도 성전산의 알 아크라를 무슬림에게 전유하게 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제3성전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있지만 이슬람 성전을 철거하고 유대교 성전을 짓는 식으로 어떤 인위적인 행위를 하지 않고 하나님이 하시도록 맡기겠다는 태도가 하나의 희망의 씨앗이 아닌가 한다. 주여! 예루살렘에 평화를 주소서!

이전 기사뉴질랜드 밀알선교단, 2018 밀알1일 카페
다음 기사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
송명헌
서울대 및 감신대 목회신학대학원 졸업. 소명교회 담임목사. 오는 5월 14일은 이스라엘 독립과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70주년이 된다. 이를 통해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예루살렘의 과거와 현재의 사건과 의미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정을 기독인의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