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심고 기다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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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월 22일은 크라이스트처치가 지진으로 인해 큰 아픔을 겪은 지 만 5년이 되는 날이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2011년 2월 지진으로 목숨을 잃은 185명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작은 행사를 갖고 있다. 추도식은 정오에 시작하여 오후 12시 51분에 1분간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묵념과 희생한 이들의 이름을 한 명씩 낭독하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우리는 왜 이곳에 있는가?
5주기를 며칠 앞둔 지난 2월 14일 오후 1시 13분경에 크라이스트처치 동쪽 15km 지점에서 5.7 규모의 지진이 다시 발생하였다. 이날 지진으로 이곳 바닷가‘섬너’지역 암벽 일부가 무너지고 가게 선반의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지는 등 크고 작은 재산 피해가 발생했지만 심각한 부상자는 아직까지 보고되고 있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가슴을 쓸어 내리는 시간들이었다. 크라이스트처치 주민들은 이제는 지진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고 있으며, 몸으로 느끼는 감을 따라 지진의 규모도 가늠할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그 동안 애쓰고 수고한 노력으로 세워진 많은 건물들과 일궈 온 사업들이 어찌할 수 없는 재난으로 한 순간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착잡하다. 그리고 애써 복구하여 이제는 한숨을 돌리려는 순간 다시 덮쳐오는 재해는 많은 이들의 넋을 놓게 만든다.

하여 ‘이 도시에 머물 이유가 무엇인가?’‘우리는 왜 이곳에 있는가?’하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금 해보게 된다.

지진 이후 어떤 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이 도시를 떠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중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나고 최근에는 인도와 필리핀 건축 노동자들이 도시의 재건축을 위한 일자리를 채워가고 있다. 상주인구도 급격히 늘고 있는 상황이다.

근자에 크라이스트처치 시내를 관통하여 운전하다 보면 지진으로 무너진 자리에는 현대적으로 디자인된 많은 고층 빌딩들이 속속들이 그곳을 채워가고 있는 것을 본다. 지진 이전에 크라이스트처치를 다녀갔던 분이라면 지금 변한 이 모습들이 많이 낯설 것이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전혀 새로운 도시로 주님의 도시인 이곳 크라이스트처치는 탈바꿈해 갈 것이다.

목회를 하다 보면 빈번한 만남과 작별을 종종 경험한다. 그리고 떠날 때마다 가슴앓이를 하곤 한다.

제일 힘든 이별의 아픔
첫 담임 목회를 시작한 곳이 한국의 서해안 고군산 군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말도’라는 곳으로 가구수 12가정의 조그만 섬이었다. 그곳에서 사역하는 동안 가끔 외로이 떨어져 있는 선교지 같은 외딴 섬을 방문한 지인들과 만남을 갖고 그들이 돌아갈 때면 홀로 남겨지는 외로움 때문에 부둣가에서 손을 흔들어 주지 못하고 뒤돌아서 집으로 오곤 하였다. 그 일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때는 이별하는 아픔이 홀로 견디기에는 힘들었기 때문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여전히 나 중심의 철없고 미성숙한 목회자의 모습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민 목회를 하다 보니 여기서도 종종 이별을 경험한다. 다른 도시와 국가로, 혹은 한국으로 역 이민하는 성도들, 하지만 제일 힘든 이별은 역시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 타 교회로 가게 되었다고 인사할 때가 여전히 가장 견디기가 힘이 든다.

아마 다른 분들도 함께 섬기던 교회를 떠나가며 안녕을 고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가슴을 쓸어 내리는 경험을 한두 번은 해 보았을 것이다. 어차피 떠나갈 사람들에게 정을 쏟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목양은 당장에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심고 기다리면 수고했던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아니하였음을 확인하곤 하였다.

청소년들이 자라 늠름한 청년, 장년 사역자로 성장한 것 보면 감동
크라이스트처치에 20여년 전 정착할 당시는 지역 교민 사회의 태동 초창기여서 교회마다 교육을 담당할 젊은 사역자가 귀한 때였다. 당시는 매주마다 새로운 이민 가정이 쏟아져(?) 들어오던 시절이었는데 특히 40대 중반의 부모들과 중, 고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이민자 가정이 많아서 교육부서가 부흥기였다.

틈나는 대로 현지 중,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아직 언어와 환경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 자녀들이 교실 한 켠에서 힘들어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곤 하였다. 그리고 점심 시간을 이용하여 청소년들에게 복음과 함께 간식을 전하였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때 청소년들이 이제는 늠름한 청년, 장년 사역자로 성장하여 그 때 모습을 기억하고 안부를 전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뭉클하다.

한 달 전에는 한국으로부터 낯선 번호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조심스레 본인의 이름을 밝히면서 대화를 나누니 거의 20년 만의 재회 통화였다. 부산에서 부목사로 목회하던 시절 섬기던 교회 대학부 학생이 이제는 중년이 되어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그때가 20대 중반의 대학생이었으니 아마 40대 중반이 되지 않았을까 이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사이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그 때의 나를 기억하고 복음으로 열정을 불태웠던 당시를 회상 하면서 반갑게 안부인사를 나누었다.

부산에 있는 동의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으로 일하는 그는 성실히 의료인으로 섬기면서 교회에서는 안수집사로 그리고 여러 기독교 치유 세미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복음적 치유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하니 감사할 뿐이다.

“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
지난 2월 초, 이곳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뉴질랜드, 호주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2박3일 가졌었다. 남,북섬 60여명의 목회자와 가족들이 참석하여 디아스포라 이민목회의 본질을 질문하고 답하며 강사와 참석자간에 서로 멘토링하는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번 목회자 세미나 강사 중에 미국 LA에서 목회하고 있는 ‘뿌리깊은 영성’의 저자 강준민목사에게 멘토링 시간에 이런 질문을 했다. “이민자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이민 목회를 하는 동안 많은 풍파를 경험한 강준민목사는 잠시 곰곰이 생각 하더니 이렇게 답을 주었다.

“인간 본래의 필요는 한국에 있는 분이나 이민자나 모두 똑 같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민자의 특성을 이야기하자면‘항상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하나님을 신뢰하였기에 가능한 발걸음이었다.

이민자들은 이미 정들고 익숙한 곳을 뒤로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온 사람들이다. 하지만 디아스포라 신앙인들은 단순히 세상의 풍요만을 쫓아 떠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에게 하나님이 주신 믿음의 도전을 따라 이 땅에 온 사람들이기에 환경을 따라 움직이지 않고 오늘도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