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고백

이번 시끄러운 묵상 또한 가사와 노래가 같이 있는 노래이다. 내가 여태 나의 고백으로 하나님께 드렸던 찬양들은 가사 없는 노래로만 드렸는데, 요즘에는 하나님께 하고픈 고백들을 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따라 부를 수 있는 쉬운 노래로 만들고픈 마음이 많이 든다.

성경 구절이나 말로 하나님께 진심으로 고백하고픈 내용을 노래로 부르고 싶었는데 그 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했을 때 나의 노래가 그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사는 이러하다.

나의 평생에 크신 하나님의 선함과 인자함이 따르리니
여호와의 집에 거해 내가 영원히 그 분을 즐거워하는것 (시23:6)
나의 눈을 바라보시며 사랑 고백을 하는
그 분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나의 손을 잡고 걸어가며 따뜻한 품에 안아주는
그 분을 나 사랑합니다
무궁한 사랑과 영원한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게 다가오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랑할 수 있어 기쁘도다 (애3:22-23)
아름다운 세상보다 무한히 아름다운 주님의 얼굴을 나 사모합니다
저기 구름과 별들과 산과 시내의 경이로움 보다
주님을 나 바라봅니다
주님을 나 사랑합니다

어느 날 내가 속해 있는 Plugging 찬양집회 전에 기도하면서 선함과 인자하심을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였는데 그 선함과 인자하심이 ‘세상에 하나님 없이 존재할수가 없다’라는 마음을 주셨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이 계신 곳에, 하나님의 임재함이 있는 곳에는 선함과 인자하심이 넘쳐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도가 바뀌는 인도하심을 느꼈다. 선함과 인자하심을 구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임재를 더욱 구하는 기도가 되었다. 하나님이 안 계실때에 그 선함의 부재, 인자함의 부재가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고, 하나님이 얼마나 나의 삶에 중요하고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인지 다시 느껴지는 기도였다.

그런데 얼마나 감사한가? 나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아는 다윗의 고백은 그 선함과 인자함이 항상 자신을 따라온다고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집에 거하고 영원히 그 분을 즐거워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큰 기쁨일 수 밖에 없다. 아무리 내가 나를 잘 안다 생각해도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계획하셨다. 그것이 어떠한 세상적인 돈이나 명예나 편안함이 아니라, 바로 선하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이다.

개역개정 번역으로는 ‘인자와 긍휼’로 나오지만, 다른 성경에서 ‘사랑과 자비’로 쓰여있어서 그걸로 사용했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가 넘친다는 사실은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도 들어봤을텐데 무궁한 사랑과 영원한 자비는 어떻게 바라보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이 분노하여 이스라엘을 버리고 다시 시작하려는 마음이 보이는 말씀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고 은혜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쉽게 우리를 버리실수도 있고 우리를 진멸 하실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먼저 사랑하시고, 창세 전부터 계획 하셔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사는 짝사랑의 흔한 상상을 하며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매일매일 만날 때에 여전히 새롭게 느껴지면서 하나님의 무한한 놀라우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을 다 안다 할지라도, 성경의 모든 말을 믿는다 할지라도 글로 표현이 안되는 하나님의 놀라우심에 또 한번 놀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꾸준하게 우리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신다.

후렴 가사는 성경 구절에서 나오지 않고, 나의 인간적이고 제한된 표현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가사이다. 부끄럽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내가 애인이나 아내가 생겼으면 나에게 행복한 데이트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았다.

눈을 바라보며 사랑을 말하고, 손 잡고 걷고 안아주는 것. ‘하나님도 나와 이렇게 데이트를 하고 싶어하지 않으실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손을 잡고, 영원토록 걸어가고 싶고, 영원토록 안아주고 싶어하실 것 같다. 이 사랑꾼 하나님을 어찌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이 노래의 제목은 ‘사랑 고백’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 고백의 의미가 가장 크긴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사랑의 고백이 어떠한가를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어떻게 우리에게 고백하고 계신가, 누구를 통해, 어떤 모습으로 사랑이 다가오고 있는가?’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감사하세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고백하고 계시는 사랑꾼이시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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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서
오클랜드 은총교회를 다니며 오클랜드 대학교에서 재즈 실용음악과를 졸업했다. 가사 없는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전하려는 마음이 가장 큰 청년이다. 이 시끄러운 묵상 연재는 그의 음악세계와 신앙생활을 함께하는 시간으로 세상의 음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