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거듭난 자의 삶

“좀 헷갈리는데… 복음을 전해 듣고 당신을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 즉 성령에 의한 것이란 말인가 아니면 인간의 마음에 의한 것이란 말인가?”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마음 상태와 상관 없이 전해질 것이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것은 성령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성령의 도움은 복음을 듣는 순간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성령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사람의 마음을 본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보고 복음이 전해지는 그 순간에 역사하실 수도 있고 때로는 그 인생의 훗날 다른 시점에 역사하실 수도 있으며 아예 역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인간의 마음 상태와 상관 없이 기적과 같은 강력한 사건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돌이킬 수도 있다. 반면 아무리 성령이 도와주려고 해도 끝까지 그것을 거부하는 지극히 완악한 자들도 있을 것이다.”

“흐음, 그렇다면 사람이 복음을 듣고 믿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인간은 그 은혜를 끝까지 거부할 수도 있다는 말이군. 그것은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타락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으로 들리는군.”

“하하, 네가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구나.”

“그런데 당신을 믿는데 왜 꼭 성령이 도와야만 가능한가? 인간이 갖고 있는 이성이나 의지로는 왜 당신을 믿을 수 없는가?”

“너희가 갖고 있는 이성이나 의지 또는 지식은 모두 하나님이 부여한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갖고 있는 속성의 일부이기에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하다. 그런 교제가 가능하기에 성령이 너희 마음 속에서 일하실 때 너희가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렇게 너희 마음 가운데 작용하지 않고 내버려두게 되면 너희의 이성이나 지식, 의지로는 아무리 해도 하나님을 만나거나 느낄 수 없다. 너희에게 주어진 이성이나 지식, 의지는 너희 존재의 본질처럼 매우 제한적이다.

너희가 가진 이런 능력으로는 생명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너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조차 알지 못하는데 어찌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그의 구원의 계획을 알며 나를 알 수 있겠는가?

너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가장 최선의 수준은 너희가 이런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정말 너희가 이성적으로 나의 십자가 죽음이나 부활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나를 믿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리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희 스스로 기만하거나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이 당신을 믿는다고 할 때 그것이 성령의 도움을 통해 믿어지게 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생각으로 믿게 된 것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고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실제 성령이 너희 마음 속에 일하시게 될 때 사람마다 그 반응이나 느낌이 다 다르다. 어떤 경우는 불타듯 뜨겁게 느낄 수도 있고 어떤 경우는 아무런 느낌조차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너희 마음에 너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회개하게 만드는 것이다.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는 자만이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니고데모와의 대화(요한복음 3:3-8)에서 나는 성령으로 거듭남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의 자리에 있다가 나의 십자가 죽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이것이 너희에게는 부활이기도 한 것이다. 후에 있을 육신의 부활과 구별하여 이를 첫째 부활 (요한계시록 20:5-6)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거듭남 혹은 부활이 어찌 성령의 도움 없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대적하는 영혼을 하나님은 이미 죽은 영으로 간주하신다. 그러므로 그 죽은 영을 성령을 통해 다시 새로운 영으로 살려내시는 것이 바로 복음을 들은 이로 하여금 나를 믿게 만드는 것이다.”

“당신을 믿는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인가? 당신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내포하는가?”

“나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그 사실을 믿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너희가 성령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죄 사함을 받아 죄인의 길에서 마음을 돌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거룩하듯 너희도 그런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 2:4)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로마서3:28)는 말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너희가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그것을 믿을 때 하나님이 너희를 더 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고 의인으로 본다 함은 이제부터 너희 삶은 죄인의 삶이 아니라 의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삶은 바로 내가 너희에게 보여준 삶이다.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자신의 목숨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내려놓아야 하는 삶 말이다.

그래서 내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아야 한다(마태복음 16:24)고 말한 것이다. 나를 믿는 것은 내가 너희를 위해 대신 죽음으로 너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음을 믿고 너희의 모든 삶을 나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런 거룩한 삶, 의인의 삶, 예수 당신을 닮아가는 삶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저절로 살아지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생명을 갖는다고 곧바로 완전하게 거룩한 삶, 의인의 삶을 살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의 믿음이 아직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기가 성장하듯 너희의 믿음도 자라날 것이다. 물론 그런 과정조차 너희의 힘과 의지로 되는 것은 아니고 그것 또한 성령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해야 한다고 말했듯(요한복음 15:4) 성령께서 항상 너희를 나에 속한 자로 묶어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마음 가운데 나의 말을 항상 생각나게 하여 진리의 빛으로 인도하실 것이며 때로는 고난을 통해 너희를 단련시킬 것이다.

너희는 거듭난 후에도 계속해서 쓰러지고 넘어질 것이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럴수록 더욱 죄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죄는 너희가 거룩한 삶, 의인의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며 싸우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너희가 그 과정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는 것은 너희 안에 새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아무리 성령의 도움을 받아 때로는 놀랍게 죄와의 싸움에서 이긴다고 해도 매 순간 완전히 죄 없는 삶을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새로 태어났다고 해도 너희는 여전히 너희의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너희 뜻대로 하고자 하는 그 죄성은 바로 그 자유 의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완전히 없앨 수가 없다. 다만 거듭나기 이전에 너희는 그 죄성을 죄인지도 모르고 그 가운데 살아서 죄의 노예였다면 이제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 그 죄성을 억제하고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너희는 가시밭길 같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고난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그것을 참아내고 승리하는 순간들을 맛보게 될 때 너희는 천국의 평안함을 느낄 것이다. 너희가 승리하는 순간은 너희 뜻대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너희에게 더욱 복이 된다는 것을 체험할 때 그러할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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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연세대 졸업. 한국 워킹우먼 전 편집장. 해밀턴 지구촌교회에서 집사로 섬기고 있는데, 201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2년 여의 항암 투병기간을 보내던 중 자신이 만난 예수를 인터뷰 형식으로 쉽게 풀어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복음의 핵심을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썼다. 2018년 1월 2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유고를 분재한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른 시각의 기사가 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