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에 대한 구원 사역의 필요성

“그러면 당신의 말을 이런 식으로 정리해도 되는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죄 사함이 있기 전에 하나님을 믿고 메시아 즉 당신을 기다리며 죽어간 사람들은 육신은 썩어 없어졌어도 그 영혼이 음부에 있다가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있은 후 부활하여 천국으로 건져지고 당신의 십자가 죽음 이후에 당신을 믿는 자들은 죽으면 마찬가지로 육신은 이 땅에서 썩어 사라지나 그 영혼은 음부에 가지 않고 곧바로 천국으로 건져진다. 그리고 이 모든 구원 받은 영혼들은 천국에서 당신과 함께 있다가 당신이 최후의 심판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재림할 때 같이 와서 새로운 육신을 받게 된다. 그때 이 땅은 새롭고 완전하게 재창조되고 오직 새로운 육신을 부여 받은 구원받은 자들이 당신과 함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살아갈 것이다. 맞는가?”

“그래. 잘 정리하였다.”

“그런데 당신이 재림할 때 아직 이 땅에서 살아서 당신을 믿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채 그들의 육신이 곧바로 새로운 육신으로 변화할 것이다. 마치 내가 지금 보여준 것 같이 말이다.”

이때 나는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시대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지 2천 년이 지나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마라나타를 외치며 예수의 재림을 학수고대하며 죽어간 사람들이 갑자기 안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의 재림 시에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영생을 살게 되니 무척 행운이겠군. 그런데 그 이전에 죽어 천국에 간 자들은 당신의 재림 때까지 수백 년이든 수천 년이든 기다려야겠네? 더욱이 당신이 이 땅에 오기 전에 죽은 자들은 육신의 부활을 더욱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구 말이지.”

“흐음. 그것은 매우 인간적 생각이구나. 너희가 말하는 시간이나 세월이라는 것은 이 물질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너희가 죽어 일단 육신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면 그 영혼은 더 이상 이 물질 세계의 법칙에 적용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혼의 세계는 이 물리적 세계의 시간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굳이 있다면 좋은 상태와 나쁜 상태가 있다고 할까. 천국에 있는 영혼들은 이 세상에서 결코 경험하지 못한 평안하며 좋은 상태를 경험할 것이다. 그것이 이 땅의 시간으로 백 년이든 천 년이든 동일한 느낌이 될 것이다.

물론 음부에 내려간 영혼은 어느 정도 괴로운 나쁜 상태를 경험하겠지만. 따라서 너희가 언제 죽든 상관없이 천국을 경험하고 새로운 육신으로 이 땅에 다시 부활할 때까지 너희는 잠시 잠깐이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재림은 각 개인들에게는 속히 이루어지는 일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내가 속히 다시 오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활에 관해서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인간과 관련된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십자가 죽음을 통한 죄 사함이나 부활과 같은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다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을 믿는 것이 전부인데 도대체 그 믿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졌다.

“당신이 십자가 죽음의 고통을 당하면서 죄를 사하게 하고 영원히 사는 영생을 선물로 주고자 하는데 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는 유대인들이 당신을 믿지 않고 오히려 죽였는가?”

“성경에‘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이 마음이 완악하여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이사야 6:9-10)’ 고 하였다.
이들은 목이 곧고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의 율법보다 자신들이 만든 전통에 더 억매여 있고 나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표적만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생각과 이익만을 쫓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내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나를 믿지도 아니한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밝혔을 때 나를 죽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뜻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된 것이며 내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속죄의 길이 열렸으니 세상 모든 이에게는 은혜의 길을 열어준 셈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이 당신을 믿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말인가?

“계획이라기 보다는 구원의 사역을 위해 예정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하신 것은 이들을 믿지 않게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의 완악한 마음을 알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이들이 요구하는 표적을 보이며 내가 나를 나타내게 되면 그것은 구원자가 아니라 심판자가 되어야 한다.

구원 받을 자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이들이 생각하는 권능의 심판자가 등장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모든 인간이 불못에 던져지는 멸망의 길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그것은 사탄이 원하는 일이니라. 그리고 이들 백성 모두를 그들의 완악한 마음 가운데 내버려둔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 내가 선택한 나의 제자들에게는 깨달음의 은혜를 베풀었고 이렇게 부활의 확신도 주지 않는가? 물론 그것은 이들을 통해 세계 만방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지만 이 또한 예정된 구원의 과정인 것이다.”

“유대인은 그런 예정 가운데 당신을 거부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다른 민족이나 이방인들은 모두 복음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하는가?

“물론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대 백성만이 아니라 다른 열방 민족들 가운데도 마음이 완악하고 자기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복음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나를 죽였듯이 복음을 전하는 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 들 것이다.

그리고 내가 이미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태복음 13:18-23)에서 말했듯이 복음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고 곧 빼앗기는 자도 있고 복음을 듣고 즉시 기뻐하다가 환난이나 핍박이 오면 곧 넘어지는 자도 있을 것이며 세상의 염려와 유혹에 의해 복음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도 복음을 듣고 깨달아서 수십 수백 배의 결실을 맺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이들은 성령 하나님의 도움으로 복음을 깨닫고 그로 인한 결실을 맺어갈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나니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하면 그들 마음에 인을 치듯이 성령의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실 것이다. 이들이 바로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니라.”

“마음이 완악한 자들은 유대인들에게 그랬듯이 의도적으로 내버려두고 포기할 건가?”

“아니, 그렇지 않다. 유대인을 그리 내버려둔 것은 구원 사역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도 영원히 그러한 것이 아니라 때가 이르면 그들에게도 마음을 돌이키는 성령의 은혜가 주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마음이 완악한 자라고 하여도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위해 필요한 종으로 쓰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는 성령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앞으로 나를 핍박하던 자 가운데 나의 복음을 누구보다 잘 전하는 제자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포악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자들이 복음을 깨닫고 온순한 양처럼 바뀌는 숱한 사례를 보게 될 것이다.

마음이 완악했던 자든 온화했던 자든 복음을 듣고 성령이 임하면 그들 마음 속에 스스로 죄인임을 깊이 깨닫게 되면서 십자가 죄 사함의 은혜를 그만큼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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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웅
연세대 졸업. 한국 워킹우먼 전 편집장. 해밀턴 지구촌교회에서 집사로 섬기고 있는데, 201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2년 여의 항암 투병기간을 보내던 중 자신이 만난 예수를 인터뷰 형식으로 쉽게 풀어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복음의 핵심을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썼다. 2018년 1월 2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의 유고를 분재한다.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른 시각의 기사가 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