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발자취, 비아 돌로로사


비아 돌로로사 안내 표시

“요셉, 우리 아기 한 발 떼었어요!”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첫발을 내딛는 아들 모습을 바라보며 너무나 신기하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아들의 미래를 미리 내다볼 수는 없다.

비아 돌로로사! The Via Dolorosa!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발자취! 라틴어로 ‘고난의 길’(Way of Suffering, Way of Pain), ‘고뇌의 길’(Path of Grief) 혹은 ‘슬픔의 길’(Way of Sorrows) 등으로 부르는 그리스도의 인류 구속사 마지막 여정이다.

2천 년이 지난 사건을 두고 매주 금요일이면 세계 각처에서 몰려 온 순례객들에다 상인들 및 거주민들 인파로 비좁은 베들레헴 골목길은 메어 터진다. 세상에서 가장 강렬하고 위대한 구속의 능력을 남긴 발자취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 신앙 클라이맥스 대장정! 인류 구속사 위대한 대서사시적 여정! 까마득한 세월에 떠밀려 예수님의 정확한 마지막 발자취를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신앙과 전통에 따라 그 해묵은 순례길은 여전히 오늘도 진행형이다.

예수께서 기독교 문을 여신 후 그 선교를 위해 고속도로를 닦아 준 장본인은 아이러니칼하게도 핍박의 대부 로마 제국이다. 더 아이러니칼한 일은 하드리아누스(Hadrian) 로마 황제가 로마식 도시건설로 닦아놓은 예루살렘 돌 포장길이 예수님의 마지막 비아 돌로로사 여정이 된다.

복음서 기록 사건에 근거한 비아 돌로로사 순례가 최초로 시작된 시기는 비잔틴 시대다. 14세기경 프란시스파 천주교회가 예수님의 무덤 기념교회인 ‘성 분묘 기념교회’(The Church of the Holy Sepulchre)에서 시작하여 겟세마네 동산과 시온 산을 거쳐 다시 같은 자리로 돌아오는 코스를 지정한다.


기드론 골짜기로 향하시는 예수님과 제자들

1540년경 프란시스파 수도사들에 의해 오늘날의 코스가 결정되자 성지를 방문한 유럽 기독교인들이 14곳 특정 처소를 발전시킨다.

그 중 9곳은 복음서 기록 사건이요, 세 번에 걸쳐 쓰러지신 장소와 어머니 마리아와 베로니카를 만나신 곳은 전통에 근거한다.

십자가형 선고를 받으신 본디오 빌라도 총독 법정 장소를 확실히 알 수 없어 헤롯 대왕에 의해 건축된 안토니아 요새(Antonia Fortress)를 기점으로 하여 비아 돌로로사 여정 지도가 그려진다.

이슬람 구역의 사자문(Lions’Gate) 혹은 순교자 스데반의 문(St. Stephen’s Gate)이라 불리는 곳에서 출발하여 예루살렘 동서 루트를 따라 예루살렘 고도시 기독교 구역을 지나 성 분묘교회에 이르는 600여 미터에 이르는 비아 돌로로사는 인류 구원의 대장정이다.

이 순례길은 실제적인 예수님의 십자가 행로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뛰는 가슴 부여잡은 채 때로는 슬픔에 잠기고, 때로는 무한한 겸비함마져 느낄 수 있으니 이 어찌 신비하지 아니한가!

몸과 가슴 영혼을 찢으신 예수님의 고난 여정이 오늘 우리에게 생명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구원이 꽃처럼 피어나니 이 어찌 신비한 은혜가 아닌가! 이제 비아 돌로로사 그 길을 떠나자.

예수님, 첫 번째 처소인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선고 받으신다
이곳은 로마군병 숙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안토니아 요새 자리다. 예루살렘 동편 사자문(스데반문)을 지나 약 250 미터 거리 언덕에 재판 받은 장소로 추정되는 총독 관저에 도달한다.

이른 아침부터 이 광경을 보려고 엄청난 인파가 몰려온다. 예수님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조롱과 사형선고를 받으신다. 로마군인들과 군중들에 둘러싸인 채 어제 밤에 끌려왔던 그 기드론 골짜기를 다시 내려가며 인류를 위한 구속의 대장정은 시작된다(마태복음 27:11-14).

예수님, 두 번째 처소에서 십자가를 지신다
빌라도에게 사형선고 받으신 후 실제로 십자가 등에 진 여정이 시작된다. 가시관을 쓰시고 로마군인들에 의해 옷은 찢긴다. 채찍질 당하며 홍포를 입으신 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온갖 조롱을 당하신다(마태복음 27:27-31).


체포되신 후 가야바의 뜰로 끌려가신 예수님

이곳에 십자가 선고 및 시행령 교회(Church of the Condemnation and Imposition of the Cross)와 채찍질 교회(Church of the Flagellation)가 있다. 길을 나서자 로마 행정관이 조롱하며 라틴 말로 외친다.

“에케 호모!”(Ecce Homo).“이 사람을 보라!”(Behold the man).

이 자리에 시온 자매들 수녀원(Zion Sisters’Covent)이 있다. 특이한 것은, 이 수녀원 바닥에 요한복음 19:13에 근거한 빌라도의 재판석으로 추정되는 아람어의 ‘가바다’ 돌 포장 유적이 있다.
또한 누가 예수님의 옷을 가질 지 주사위를 던지며 제비를 뽑던 돌판에 새겨진 로마군병들의‘왕의 게임판’(The King’s Game)도 남아있다(요한복음 19:2-3).

예수님, 세 번째 처소에서 처음으로 넘어지신다
70킬로그램에 이르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신 주님, 극도로 피곤하시어 쓰러지신다. 이곳에 두 곳의 아르메니아 교회가 있다.

예수님, 네 번째 처소에서 어머니를 만나신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처참한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 마리아는 강물처럼 흐르는 슬픈 눈물과 안타까움으로 온몸을 떨고 있다.

한 순간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아들과 어머니의 눈이 마주친다. 그 눈길 가운데 인간의 가장 슬픈 모든 감정이 다 담겨 있다.

1881년 이 곳 비잔틴 빌딩 폐허 위에 아르메니아 스파슴 레이디(Lady of the Spasm) 천주교회 채플을 건축하던 중 5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샌들 한 켤레를 묘사한 모자이크를 발굴한다. 누구의 샌들인가? 바로 처절한 아들의 운명을 바라보며 떨고 서 있던 마리아를 오래 전부터 기념해왔다는 것이다.

이곳에 세워진 기념교회 역시 경련을 일으킬 정도 가슴 먹먹한 마리아의 슬픔을 짐작하게 하는 이름 그대로‘경련하는 레이디 교회’(Church of Lady of the Spasm) 이름이 붙여진다. 하지만 성경은 이 서글픈 장면에 대해 침묵한다.

예수님, 다섯 번째 처소에서 구레네 시몬을 만나 십자가 짐을 나누신다
여기서부터 골고다로 향하는 길은 가파르다. 험난한 십자가 여정 고통은 이제 배 이상 더해진다. 예수님, 더 이상 앞으로 나갈 걸음을 못 떼신다.

군중 가운데 건장한 체격을 가진 한 남자를 로마군인이 끌고 온다. 이 사람 어쩌다 재수없게 걸렸다. 오늘의 북아프리카 리비아 출신 시몬이다(Simon of Cyrene). 당시 10만여 명 유대인들이 북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다.

한편 예루살렘에는 리비아계 유대교 회당도 있었다. 왜 하필 시몬이 걸렸나? 이런 일로 로마인이나 유대인을 강제로 등을 떠미는 것은 예민한 사안이라 큰 덩치에 피부색으로 보아 로마군사는 시몬을 찍었다(마태복음 27:32, 누가복음 23:26). 소위 인종차별이다.

시몬은 힘을 다해 지친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여정 그 마지막 길을 돕는다. 하지만 십자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쓰러지면서 예수님은 벽에 손을 기대신다.

신기한 일이다. 그 후 예수님의 그 손 자국이 벽에 남아 전해진다. 이곳에 시몬의 헌신을 기념하는 프란시스파 천주교 채플(Chapel of Simon of Cyrene)이1895년에 건축된다.


쓰러지시면서 벽에 손 기댄 곳에 예수님의 손 흔적이

순례객이 이곳에 도착하면 가던 길을 잠시 멈추어 이 채플 앞 벽에 약간 패인 채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는 돌을 어루만진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 돌을 만지다 보니 이제 그 돌은 더욱 깊게 패인 채 매끈하게 다듬어져 반들거린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의 마지막 목회 동반자는 이방인이다. 아프리카인이다.

훗날 시몬의 아들 루퍼스가 로마기독교 일군이 된다(마가복음 15:21, 사도행전 11:20, 로마서 16:13). 전통에 의하면, 그들 가족 모두 선교사가 된다. 나는 아프리카 방문 중 이 설교를 한 적이 있다. 아마 지구촌 미래의 선교 마지막 주자는 아프리카 믿음의 사람들이 될지 모르는 일이라고 설교했다. 아주 좋아하는 반응이었다.

예수님, 여섯 번째 처소에서 베로니카를 만나신다
이제 비아 돌로로사 길은 더욱 좁아지면서 언덕을 만난다. 베로니카는 그녀의 집 앞을 지나시는 피로 얼룩진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는다. 로마군인의 채찍에 맞을지도 모르는 대담한 일을 한다. 그 자상한 손길 덕분에 극도로 지친 예수님의 얼굴에 잠시 고통이 사라진다.

베로니카는 누구인가?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이 주님의 옷깃을 만져 낫게 된 여인이라는 주장이 있다(마가복음 5:25-34). 피로 뒤엉킨 예수님의 얼굴을 닦은 베로니카의 베일에 마치 인쇄된 것처럼 예수님의 얼굴 자국이 남는다.

전설적인 이야기 ‘베로니카의 베일’(The Veil of Veronica)은 이렇게 시작된다. 티베리아스 황제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로 이 베일은 8세기 이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 보존되다가 교황 요한 5세 때 그림으로 남긴 채 실종된다.

바로 이 언덕바지에 성자 베로니카(Veronica)의 집이 있다. 여기에 ‘예수의 작은 자매들’(The Little Sisters of Jesus)이1883 년에 세운 베로니카의 희랍 천주교 채플을 관리한다.

예수님, 일곱 번째 처소에서 두 번째 쓰러지신다
이제 예루살렘 성 밖으로 나가는 관문에 도착하신다. 여기서부터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더욱 좁아지고 경사는 더욱 험해진다.

이 무렵 로마군인들의 채찍질과 십자가 고통에 인간 예수님의 힘은 세상에 다 쏟아 바친 후 기진맥진 상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 하여 예수님, 다시 쓰러지신다. 이곳 길가에 세워진 오래된 로마 돌기둥이 예수께 묻는다.

“로마제국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유대인의 왕’ 그 죗값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나 하는가?” 1875년 이곳에 두 곳의 프란시스파 채플이 세워진다.

예수님, 여덟 번째 처소에서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위로하신다
성문을 떠나 몇 걸음 더 가면 갈보리 죽음이 더 가까이 눈앞에 다가온다. 이곳에서 고통스러운 십자가 여정을 바라보고 울면서 따르는 예루살렘의 경건한 여인들을 만난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울어라(누가복음 23:28).” 천근만근 무거운 발길 잠시 멈추신 주님, 짧고 애절한 설교를 하신다. 이곳에 희랍 정교회 수도원이 세워진다.

예수님, 아홉 번째 처소에서 세 번째 쓰러지신다
이제 굽어지고 경사진 골목길이 나온다. 갈수록 더해가는 십자가 무게, 더 이상 견딜 힘이 없으시다. 하여 다시 쓰러지신다. 이곳은 비아 돌로로사 클라이맥스 지점이요 마지막 처소이기도 하다.

경사진 길 꼭대기 위로 콥트 정교회가 보인다. 왜 이곳에 에티오피아 정교회 승려들이 거주하는가? 전통에 근거, 시바 여왕의 예루살렘 방문 때 태어난 솔로몬의 아들과 시바 여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면서 에티오피아의 아스곤(Aksum, Ethiopia)으로 언약궤를 옮긴 후 지금도 보관 중이라 주장한다.

예수님, 열 번째 처소에서 옷 벗김을 당하신다
이제 밖에서의 비아 돌로로사 여정은 끝났다. 열 번째부터 열 네 번째 남은 다섯 처소는 비아 돌로로사 마지막 종착지 성 분묘교회당(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안에서 만난다.

교회 시설은 희랍 정교회, 천주교회, 아르메니아 교회, 콥트 교회, 그리고 시리아 정교회가 나누어 관리한다. 돔 천정 창문으로부터 칼날처럼 쏟아지는 빛살은 어둡고 커다란 돔 지붕 아래 마지막 가슴 아픈 이벤트를 뿜어댄다.

잠시 눈을 감고 2천 년 전으로 돌아간다. 지금 나는 갈보리 돌산 언덕 정상에 서 있다. 로마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는 모습을 본다. 마리아는 여기까지 따라와 채찍질에 찢긴 아들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

예수님, 열 한번 째 처소에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다
결국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마리아와 군중들 눈앞에서 벌어진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참하게도 못 박는다. 세상에서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난다. 인간 예수님의 그 신음과 고통 소리 그리고 사람의 몸을 나무에 못 박는 망치 쇳소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처소는 남아 있지만 무덤은 로마가 파손하였다고 한다.

여기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묶는 그림도 벽에 묘사되어 있다. 전통에 근거, 이 사건 역시 이곳 갈보리에서 이루어졌다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예수님, 열 두 번째 처소에서 운명하신다
못 박힌 예수님의 십자가, 하늘 아래 버림 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자신의 몸무게가 스스로 자신을 고문한다. 고통의 소리 들린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곳을 아람어로 ‘해골’(Skull)이라 부른다. 십자가가 서 있었다고 추정되는 이 곳은 늘 항상 순례객들로 붐빈다. 제단 바로 아래 예수님의 초상화와 은으로 장식한 둥그런 모양의 돌 판을 보려는 사람들 행렬이 끝없이 이어진다.

순례객들은 성스러운 가슴을 부여잡은 채 엎드려 절하는 자세로 둥근 판 한 가운데 갈라진 석회암 바위 구멍을 어루만진다. 십자가의 뿌리가 박힌 곳이요, 구세주의 피가 흐른 바위 틈이다. 아담 역시 이곳 골고다 반석 아래 묻혔다고 믿는다. 예수님의 피가 아담의 해골이 있는 곳으로 흘러 에덴에서 시작된 아담의 원죄가 사죄함을 받는 상징적 장소로 믿는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담의 채플 반석 한 부분 아래 특이하게 붉은 핏줄 같은 무늬가 있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가 흘러간 것이라 주장한다.

예수님, 열 세 번째 처소에서 시신으로 옮겨진다
운명하신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린다. 이제 모든 게 끝장난 상태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주검을 만진다. 어머니 마리아는 마지막으로 아들의 죽음을 확인한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몸을 ‘도유의 반석’(The Stone of Unction)에 누이고 기름과 향유를 바른다. 그 역시 경건한 사람으로 예수님의 마지막 길을 위해 섬긴다.

순례객들은 이 반석을 만지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한다. 오랫동안 그 도유의 터치를 보관한다는 의도에서 기름을 묻힌 천을 문질러 가지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과 죽은 아들 예수를 끌어안고 비통해하는 성모상 피에타(Pieta)도 여기서 만난다.

예수님, 열 네 번째 처소에서 무덤에 눕히신 후 부활하신다
이제 비아 돌로로사 그 여정 마지막 처소에 도달한다. 안식일이 다가오자 예수님의 시신은 십자가에서 내린다. 하지만 시신을 묻을 무덤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때 경건한 사람 아리마대 요셉이 등장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그의 가족 매장지 동굴을 아낌없이 바친다.

바로 그곳이 지구촌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가 된다. 그의 이런 엄청나고 값진 희생과 사랑이 수천 년 동안 사람들 가슴을 감동시킨다.

예수님의 무덤 자리로 추정되는 장소는 성 분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센터에 위치하였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센터요(Christ the centre of the world) 지구의 배꼽(Omphalos)이라는 의미다.

예수님은 사흘 후 이 곳 무덤에서 부활하신다. 여기에 십자군 패망 전 헬레나가 발견하였다는 예수님의 실제 십자가(The True Cross of Jesus)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십자군이 패망하면서 그 십자가는 파편이 되어 여러 나라로 유출되어 현재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비아 돌로로사 그 순례 길 막을 내린다. 짧고도 먼 길을 따라왔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오는 동안 믿음과 사랑을 준비한 경건한 사람들을 만났다. 이 시대 우리 역시 어쩌면 또 다른 비아 돌로로사 길을 여전히 걸어가고 있다.

출처 https://tourstotheholyland.com; https://www.itraveljerusalem.com; https://www.google.co.uk; http://www.seetheholyland.net; https://www.verywellfi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