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만큼 보이는 책, 성경

김혜원 목사

옛날에는 성경 속의 이야기들이 그렇게 크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부모가 되어보니 성경 속의 인물들의 심정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부싸움을 직접해보니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얼마나 서로의 탓을 하며 부부싸움을 했을까?

이들은 싸우면 누구에게도 하소연도 못하고 뉴질랜드처럼 어디 갈곳도 없어서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었을까? 상상하며 혼자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리곤 합니다.

자녀를 두고 보니 미드와이프도 없이 임신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하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친정엄마도 없이 어떻게 아기를 낳았을까? 그래도 고부간의 갈등은 없어서 좋았겠지만, 남편 아담이 산후조리는 잘해줬을까? 등등의 상상을 하면서 아내와 함께 웃기도 합니다.

특별히 이민이라는 삶의 큰 경험을 통해 아브라함이 영주권과 비자도 없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자기의 고향 하란을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5년전 아무런 대책도 없이 뉴질랜드로 온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물론 나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은 아닙니다만, 아무튼 나의 짧은 이민의 경험을 통해 예전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창세기 12장을 읽어나갈 수 있었지요.

그러고 보니 이스라엘 백성은 이민으로 시작해서 이민으로 끝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네요. 형들에게 의도치 않게 팔려간 요셉은 이집트에서 지금으로 따지면 노예비자를 받아서 그 성품과 정직함 그리고 실력을 인정받아 보디발의 집의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안주인의 모함으로 졸지에 강간범이 되고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의 꿈을 해석함으로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고, 온 세계의 경제가 안좋은 흉년에도 가족초청비자로 자기 아버지 야곱과 자기 형제들, 가족 칠십명을 초대합니다. 가족들에게 영주권뿐만 아니라 거주할 집과 직업도 얻게 해주고 이들을 이집트에서 살게 해주지요.

그렇게 세월이 지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핍박하게 되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시민권도 박탈당하고 힘든 노동으로 피곤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방문비자, 학생비자, 1년 워크비자를 가진 사람들은 자녀출산에 대한 의료혜택이 없어서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아기를 낳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 괴로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기에,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죽이라는 구절에 모세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상상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합니다.

경험하기 전에는 그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이제 내 이야기가 되어 나를 위로해줍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누군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삼고 같이 아파하기 위해서는 몸소 그 아픔을 한번 경험해봐야지만 아픈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도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또한 사람이 썼고 하늘에서 쓰여진 책이 아닌 이 세상에서 쓰여졌기에 아픈 만큼 보이는 책이 또한 성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아시기 위해 몸소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우리의 아픔과 고난과 시련을 잘 이해하십니다. 따라서 자신의 아픔과 고난과 갈등과 상처가 성경의 인물들의 심정을, 그리고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하는데 큰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그 노력이 다른 선배목사님들이 노력했던 것에 비하면 그에 미치지 못하지만 어여튼 목사되려는 사람이 일독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며 신학교 때 열심히 형광펜으로 성경을 칠하며 읽기도 하고, 성경의 맥을 뚫어주는 강사가 저술한 책도 사서 읽기도 하며, 큰 교회 목사님들을 찾아가 강해설교도 열심히 받아 적으며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모든 하나 하나의 작은 노력들과 가르침들과 배움의 여정 가운데 아직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알려고 노력하는 배움의 여정속에 있는 구도자 중에 한 명이 내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민을 와보니 이민법이 참 중요하더군요. 그리고 이민자들의 케이스와 워낙 한사람 한사람이 독특하고, 모두 드라마틱한 경험을 하였기에 그 경험에 귀를 기울이면 참 배울 것이 많습니다.

누군가 이민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부딪힌 경험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그리고 수많은 블로그에는 그런 경험들을 저 포함하여 조각조각 기록해놓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는 인류를 사랑하는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실 하나님의 모습,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들이 적혀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여러 모습들은 이 험한 세상 속에서 진정한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고, 이들의 앞길을 인도합니다.

나는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경험하고 배우는 과정속에 있습니다. 예전의 습관적으로 읽었던 성경읽기의 유혹에서 벗어나 나의 삶의 현장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아픔, 그리고 고민 가운데 몸부림치며 성경을 읽고 질문하고 배우고 그 가르침 대로 노력하고 싶은 것이 성경에 대한 나의 마음입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제한된 경험과 나 혼자만의 책상에서 묵상한 깨달음이 완전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겠지요. 에베소서 2장 21-22절‘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성도의 교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고달픈 이민 생활 속에서 몸부림치며 읽고 묵상한 말씀들이 그리고 그 나눔들이, 어쩌면 각자의 나눔이 부족하고 제한된 경험과 지식들의 파편일지라도,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함께 지어져가면서 사랑 안에서 완전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목사라는 위치가 가르치는 자의 위치에 있기에 다 아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 나를 돌아보면 가장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기도 어렵고, 마음껏 질문하며 배울 공동체를 찾기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선생은 가르치기 때문에 선생이 아니라 지금도 공부하기 때문에 선생일 수 있는 것처럼,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배우는 자리에서 성도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며, 배운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