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후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천하에 증거하는 명령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고, 그 선교의 일차적 책임이 교회에 있음을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구태의연한 이야기 일 것이다.

그리고 선교사는 교회로부터 파송을 받으며, 그 파송받은 교회로부터 선교사는 재정적인 지원과 기도의 후원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어느 선교단체의 일도 아니고 가장 오래된 오순절 성령의 사건 이후에 사도행전 13장 이후로부터 이어져 오는 교회의 선교적 전통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현장교회에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선교의 실천 즉 선교의 후원제도는 많은 관심과 논의가 필요한 주제일 것이다.

첫 번째 논의의 주제는 선교사 후원 이전에, 파송선교사의 선발은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13장은 이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선교사의 파송은 교회의 책임이었다
사도행전의 최초의 선교사는 안디옥이라는 지역교회의 사역자였고,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이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여 보냈다. 즉 그들은 교회안에서 성장하였고 사역하였으며, 교회는 이들을 하나님이 인정하는 선교사로 파송하였다는 점이다.

오늘날 선교사 파송의 경우 지역교회에서 선교단체로 그 주체가 옮겨간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교회가 파송하는 선교사가 파송하는 교회와의 충분한 교제와 그리고 비전을 확인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교사 훈련을 마친 후 추천을 받았다 할지라도 선교지로 떠나기 전 파송하고 후원하는 교회와의 충분한 교제와 사귐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선교단체가 아니라 교회가 파송하여 선교단체와 협력하고 동역하는 관계가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선교사의 후원은 성령의 작품이고 교회의 책무였다
사도바울은 안디옥으로부터 파송하여 나갔지만, 그는 사역하는 동안 빌립보교회와 여러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았다. 흔히들 바울을 선교비를 스스로 벌어서 사역하는 자비량 선교(Tent-Making)의 효시와 모델로 이야기하지만, 성경은 바울이 지속적으로 교회로부터의 후원과 지원을 받으며 사역하였다는 사실을 말하여 주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는 자신이 파송한 선교사를 위해 장기적으로 기도하며 그의 삶의 전 영역에 걸쳐 동역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후원하는 교회는 때로는 선교사 후원 10년 정책, 새로운 신임 선교사를 우선 후원하는 정책 등 지속적이고 장기적 후원에는 제도적으로 부정하는 경우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선교사 파송과 후원은 전략적 관점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종종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을 결정할 때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가 교회 담임목사, 아니면 선교위원장 등 인간관계의 친밀성, 또는 중직자 중의 가족과 연결되는 즉 관계중심의 선교사후원 및 파송정책을 종종 볼 수 있게 된다.

후원을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는 전략적 우선순위라는 측면에서는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음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교회는 반드시 선교정책과 전략이 필요함을 생각해 본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어느 지역, 어떤 문화 또는 언어권, 아니면 미전도종족의 어느 종족 등 교회가 선교적으로 우선시하는 분명한 선교정책에 입각하여 이에 맞는 선교사를 찾고 후원, 파송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시간이 지나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는 선교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균형 있는 선교 지원이 필요하다
한 조사에 의하면 선교사에게도 빈익빈 부익부의 원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크게는 홍보를 잘하는 부류와 홍보를 잘하지 못하는 선교사로 분류 될 수도 있지만 선교사역의 열매와 비교하여 볼 때 어떤 선교사는 다른 선교사보다 훨씬 더 많은 후원을 받고 어려움 없이 사역할 때 어떤 선교사는 정말로 어렵게 살아가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런데 종종, 선교사의 아버지가 목사, 장로거나 교회 중직가정의 자녀가 선교사로 나온 경우가 아무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더 많은 후원을 받는 경우를 실질적으로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선교사 후원에도 일정한 균형이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숫자적 의미에서의 균형과 때로는 공정성이 있는 선교훈련이 매우 필요하지만, 때로는 영광의 뒤편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살아가는 선교사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교현장에서 선교지원의 균형과 배려가 필요함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선교후원은 무엇일까?
첫째로, 교회의 선교적 우선순위에 입각하여 후원을 결정하라. 그리하여 우선순위의 순서에 따라 선교후원을 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예견할 수 있다.

두번째로, 생활비 후원과 사역비 후원을 구분하여 후원하라. 많은 이들은 선교사가 현장에서 사역비와 생활비 후원이 동일하다고 느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생활비 후원과 사역비 후원을 분명히 이원화 시킴으로써 어려움을 없게 할 수 있다. 사역비는 후원이 되는데 생활비가 부족한 선교사가 참으로 많다는 점이다.

세번째로, 꼭 필요한 곳에 후원하라. 늘 익숙하고 자주 가는 선교지라면 그곳의 상황과 필요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선교사 보다 현지사정을 잘 아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이럴 때 선교지에 정말로 필요한 곳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누가 도움이 필요한지는 선교사가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에게 꼭 필요한 후원과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교회의 입장이 아닌 선교사의 입장에서 후원을 하는 교회가 있음이 감사한 일이다. 선교지에는 수많은 필요가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한 지역교회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럴 때일수록 교회의 연합이 선교의 연합으로 발전되어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