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델 하우스 뮤지엄 런던

오는 11월 25일 저녁 7시 30분, 파넬 대성당에서 정기 연주회 열려 박성열 목사<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 운영위원장>

헨델(1685년 2월 23일-1759년 4월 14일)이 죽는 그 날까지 30년 이상 살았던 집이 런던의 브룩 스트리트 (Brook Street)에 있다. 2001년에 헨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집을 구입해서 헨델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Handel House Museum’ 이라고 부른다.

바로 이곳에서 헨델은 ‘메시아(Messiah)’를 작곡했다. 광활한 도메인 풀밭위에 웅장하게 서있는 박물관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연립 주택에 끼어있는 소박한 박물관이다. 자유롭고 화려하게 독신 생활을 즐기며 산 덕에 그의 죽음 이후에 그를 챙겨줄 자녀가 없었으니 최근에 이 집이라도 건진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소박한 그의 집에서 그는 인류 역사상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한 최고의 역작을 탄생시켰다.

헨델 하우스 뮤지엄은 가급적 바로크 시대의 유물들을 가져와서 그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려고 했다. 침실, 침대, 하프시코드, 의상, 내부 장식들을 보면 바로크를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유물들은 사람들에게 바로크 시대를 살았던 헨델의 참모습에 더 큰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럼 리얼한 바로크의 헨델과, 지금 우리가 배우고 상상하는 위대한 헨델과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헨델과 관련된 여러 글들을 읽으면서, 헨델이 구약의 야곱과 많은 부분 오버랩 되는 것을 나는 느낀다. 헨델도 야곱처럼 부와 명예를 부여잡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살았다. 독일사람인 그가 영국 국적으로 바꾼 것도 결국 그의 성정 때문이었다.

그는 돈이 안되는 독일 하노버 궁정악장직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서 버텼다. 요즘으로 말하면 탈영에 해당된다고 할까. 그런데 바로 그 하노버 선제후가 영국 앤 여왕의 후임이 되어 영국 국왕 조지 1세로 즉위하게 된 것이다. 외통수에 걸린 헨델은 언제 처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조지 1세는 배신자 헨델을 용서하고 그를 다시 고용한다.

헨델은 언제나 대박을 노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음악 천재였던 그가 쓴 오페라가 그의 기대대로 대박이 났다. 그는 마침내 오페라 작품뿐만 아니라 자금 운영, 무대, 극장 운영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유행처럼 지나가 버리는 오페라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다. 파산이다. 더구나 그는 과로로 인한 뇌졸중으로 쓰러져 죽을 고비에 직면한다. 겨우 이 죽음의 위기를 넘다가 그는 반신 마비가 되어버린다.

하나님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겼다’는 뜻이다. 아버지와 씨름하여 이길 아기가 없듯, 누가 하나님과 대항해서 이길 수 있겠는가?

단지 형의 발목을 붙잡고, 삼촌을 붙잡고, 라헬을 붙잡고 일생을 살아오던 야곱이, 급기야 하나님을 붙잡은 것이 너무 예뻐서 하나님이 붙여주신 이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야곱처럼 헨델은 이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을 붙잡게 되었다. 얼떨결에 그러나 숙명적으로 하나님을 붙잡게 된 것이다.

대박과 명예를 붙들며 평생을 살아온 헨델은 이제 죽음의 문턱에서 압복강의 야곱처럼 살아남기 위해 ‘메시아’를 붙들고 24일을 씨름한다. 그리고 이때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니 헨델 하우스 뮤지엄은 헨델에게 있어서 야곱의 얍복 나루이다. 헨델 하우스 뮤지엄에 장식된 바로크의 미술 양식은 오히려 가발을 벗은 헨델의 맨 얼굴을 보게 한다.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긴 야곱은 환도가 위골되어 절었다. 그때부터 다리를 저는 것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헨델은 메시아를 다 쓰고 이렇게 썼다.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 다른 사람은 몰라도 헨델에게 있어 ‘Soli Deo Gloria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세상의 대박과 명예를 붙잡던 손을 놓고 하나님을 붙잡느라 생긴 상처, 즉 헨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것이다.

제3회 헨델의 오라토리오
어릴 때 추석과 설날이 되면 매번 버전과 배우가 달라진 춘향전을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나 혼자 아는 양, 두 세 장면을 미리 앞서 짐작하면서도 가슴 졸여 가며 ‘암행어사 출두요!’가 나오기를 고대했었다.

이렇게 어린 우리는, 이런 고전을 통해 한국의 미, 해학, 전통, 역사에 익숙해져갔다. 그리고 우린 또 다른 고전에 쉽게 맘을 열었으며, ‘한’이라는 정서를 공유하는 한국 사람으로 조금씩 영글어져갔다.

프로테스탄트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춘향전과 같은 고전이 뭐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헨델의 메시아’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이유는 프로테스탄트의 전통과 역사와 미학을‘헨델 메시아’만큼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을 달리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킹 제임스 성경, 12음계와 기보법 발견,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이라는 서양 역사의 엄청난 대 변혁을 정말 알뜰하게 총망라해서 녹여낸 독보적인 작품이 ‘헨델 메시아’다.

당시 구교는 라틴어로 찬양했고, 라틴어 성경을 읽었으며, 라틴어로 기도드렸다. 반면 개신교는 자기 나라 말로 찬양과 기도와 성경을 읽었다. 그러니까 구교와 신교의 차이점은 예배 양식이 아니라 어떤 언어로 예배를 드리느냐에 있었던 것이다.

마틴 루터가 95개 조항을 비텐베르크 성벽교회 출입문에 붙였을 때 서민들 95% 이상이 그것이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후 루터에 의해 독일어로 성경이 번역되고 영어로 성경이 번역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인쇄술의 발명은 오늘날 SNS급 이상의 엄청난 파급력으로 세상을 바꿔 버렸다. 그리고 헨델은 킹 제임스 영어번역 성경을 텍스트로 하여 서양 음악 역사상 최고 발명인 12음계와 5선 기보법을 이용하여 ‘메시아’를 작곡하게 된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라는 시구에는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라는 표현이 있다. 여름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단다.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내렸단다.

그렇다. 200년 전 종교개혁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가 굽이치면서 ‘헨델의 메시아’라는 원숙한 국화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종교 개혁 500년이라는 역사의 현장에 서있다.

크리스천들에게 거의 300년을 지속해서 내려오는 참 좋은 문화가 있다. 그것은 헨델 메시아를 매년 연주하는 것이다. 이것은 고질적이고 없어져야 할 적폐가 아니라, 보존하고 이어가야 할 너무나 소중한 크리스천 문화유산이다.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한 이후, 세대와 세대를 이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연주되고 있는데, 이것은 여느 작곡가도 그 예를 찾을 수 없는 매우 특별한 현상이다.

다행히 오클랜드에는 100년 세월을 이어오며 헨델 메시아를 연주하는 합창단이 있다. 우리들이 일 년에 한 번 있는 추석이나 설날을 기다리는 것처럼 키위들은 이 연주를 기다린다. 다행히 한국말로 메시아를 연주하는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이 3년 전에 창립되어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작년, 재 작년, 두 번이나 가서 봤는데 이번에도 또 하냐?’며 볼멘소리하는 친구 목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일년에 한 번씩 열리는 크리스천 축제라고 답해주었다. 헨델 메시아 공연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300여 년간 크리스천들에게 내려오는 최대의 문화유산이다. 그리고 이 크리스천 문화를 이어가자는 것이다.

교회세습, 교회이기주의에 우리는 개탄한다. 세상을 살려야 할 교회가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대안은 없는가? 왜곡된 크리스천 문화에 대응하여 신선한 생수처럼 세상을 살려나가는 문화, 자손에게 길이길이 물려줘도 전혀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문화가 무엇이든 있어야 하지 않을까?

聯合(연합), 自願(자원), 慈善(자선)이라는 아름다운 기독교 가치관을 모토로 시작했고 그것을 지켜 나가면서 이 이타적 축제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격려가 된다. 합창을 하려니까 연합해야만 한다.

그리고 억지가 아니라 자원해서 모여야 한다. 그리고 모인 이유는 고여두기 위함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자선인 것이다.

헨델의 ‘메시아’를 계기로 ‘나’를 위한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나’를 지지하려는 의지로 오클랜드 오라토리오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의 이웃들과, 우리 다음 세대들이 매년 이 축제를 지속하기를 원한다.

헨델의 메시아는 초연 이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상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클래식 음악이다. 이번 11월 25일 토요일 7시 30분에 파넬 대성당에서 오클랜드 오라토리오 코랄이 제3회 공연을 하게 된다.

50여 개 교회에서 모인 70여 명의 합창 단원과 30여 명의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되어 합창과 반주를 하며, 오스트리아에서 오는 바리톤 김정호, 소프라노 고현아, 미국에서 오는 테너 진철민, 메조소프라노 박영경이 솔리스트로 나선다. 이번 공연에서 나오는 티켓 판매 수익금과 후원 업체의 도네이션은 전액 선교기관에 기부된다.

관객을 위한 공연 관람 TIP
1. 어떻게 음악만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나

오페라는 의상이나 조명이나 연기 그리고 여러 가지 무대 장치로 극적인 면을 연출할 수 있지만 오라토리오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기 때문에 오로지 음악으로만 승부를 걸어야 한다. 헨델이 어떻게 극적인 장면을 음악으로 풀었는지를 눈여겨보는 것이 첫 번째 팁이다. 하나만 힌트를 준다면 오페라에서는 솔로 아리아가 극적인 면을 연출하고 합창은 그저 솔로를 도와주는 것이 주이지만,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합창이 오히려 클라이맥스다.

2. 찬송가가 아니라 복음성가의 측면으로 시각을 바꿔보기
헨델의 메시아는 찬송용이 아니라 선교용으로 작곡되었다면? 음악이 어떻게 다르게 들릴까?‘이 땅에 죄인을 구하러 오신 메시아를 어떻게 구원받을 사람들에게 전할까?’를 고민하고 쓴 헨델의 용기와 재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3. 바로크 음악 감상의 정석 세 가지 챙겨 듣기
A. ‘다카포’란 반복이다. 반복을 한다는 것은 이게 아주 중요하다며 강조하는 의미다. 덕분에 관중들이 멜로디를 익히게 되고 어느새 친숙하다고 느끼게 된다.

B. ‘멜리스마’는 긴 프레이즈, 즉 늘어지는 음이라고 해석을 해야할 것 같다. 멜리스마가 나오면 이 단어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엄청난 기교를 발휘하는 멜리스마는 바로크 음악의 꽃이기도 하다.

C. ‘대위법’이란 용어는 어렵지만 사실은 아주 단순한 이론이다. 이 파트에서 음이 올라가면 다른 파트는 음이 내려가고, 이 파트 음이 두 박자이면 다른 파트 음은 그와는 다른 박자를 쓴다. 문제는 그러면서도 엄청난 통일성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4파트 모두 자기 멜로디를 노래하는 거다. 보통의 합창이 주요 멜로디 파트가 있으면 다른 파트가 그 멜로디에 종속된다. 그러나 대위법에서는 같은 멜로디지만 각각의 음역에 맞게 개성있게 부르는 데도 절묘한 화음을 이루는 멋진 음악의 방법이다.

4. 파넬 대성당의 파이프 오르간
그 동안 수리하느라 듣지 못했던 파이프 오르간이 마침내 수리를 완벽하게 마쳤다. 이 파이프 오르간을 파넬 성당의 전속 오르가니스트가 협연을 한다. 전보다 더 웅장하고 아름다운 파이프 오르간의 반주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기대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