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교회 행복한 목회

오클랜드 하늘샘교회 선교팀과 함께

오래전 한국의 한 교회의 표어는 건강한 교회, 행복한 목회였다. 그 표어를 보면서 “나는 과연 건강한 교회를 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었다. 이것은 아마 모든 목회자들의 평생의 딜레마이며 숙제가 아닐까 싶다. 그럼 과연 행복이란 무엇 일까? 나는 지금 행복한가? 아니면 그렇다고 믿고 있는 건 아닐까?

행복, 소유인가? 존재인가?
신앙 생활을 하던 한 성도가 자신은 매주 로또를 사는데 이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로또에 당첨되면 교회에 헌금 할거라고 했다. 자신이 로또에 당첨되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나 보다.

모든 인간은 예수를 주로, 그리스도로 믿게 되면 이전에 갖고 있던 가치관이나 인생의 목적이 달라지게 된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았다는 것이 행복이 아니고 무엇이 행복이겠는가?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있다. 중학교 때 만난 이 친구는 학창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다. 나는 고 1때 예수님을 만나서 성경공부를 하며 지냈지만 이 친구는 좀처럼 믿지않은 친구였다. 그런데 이 친구가 군대를 해병대로 가면서 점차 더 와일드 해지고 더 세상적으로 변해서 군 생활 중에 휴가를 나오면 늘 여자있는 술집이나 술에 쩔어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고는 늘 술에 취한 모습으로 전화를 하던 친구였는데 하루는 술에 취한 이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이 친구가 그 순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 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 친구는 대한민국 최고의 설계사가 되는 것이 목표였으나 어느 날 내게 찾아와서 하는 말이 설계를 하면 늘 야근이 많아서 전도와 신앙 생활을 못하겠다고 오랫동안 꿈을 꾸었던 직장을 그만 두겠다는 것이다.

어떤 일이 가장 좋을까를 기도하다 사표를 내고 초등학교 소사(10급 공무원)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인데 일찍 퇴근한다는 거다. 그래서 자신이 전도도 할 수 있고, 성경공부도 할 수 있다고 행복해 했다.

그리고는 찬양 중에 ‘나 주님의 기쁨 되길 원하네’라는 찬양만 부르면 눈물이 나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나는 그때 보았다. 그렇구나 예수를 만난 사람은 이런 거구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꿈도 욕망도 내려 놓을 수 있는 것, 자신이 갖고 있는 소유도 포기 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 예수 만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지나 이 친구는 자신이 일 하던 초등학교의 신실한 크리스천 교사를 만나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소유가 나쁜 것은 아니다. 나도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전문직을 갖고 돈을 많이 벌라고 한다. 소유를 갖고 경험을 쌓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많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기를 바란다. 소유가 목적이 아니라 그 소유를 잘 사용하여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여행도 많이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곳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를 바란다. 소유 보다는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을 통해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알고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더 행복해 지려거던 행복한 사람 옆으로 가라
내가 자녀들을 키우면서 기도하는 기도 제목중 한 가지는 자녀들이 건강한 친구들과 사귀며, 건강한 선생님을 만나 건강해지는 것이다. 사람은 주변의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다.

‘근묵자흑’, 검은곳에 있으면 같이 검어지고, ‘근주자적’, 붉은곳에 있으면 같이 붉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내 주변에 누가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 옆에서는 행복해질 수 있지만, 불행한 사람 옆에서는 행복해 질 수가 없다.

수년 전 한국에서 두 가정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왔다. 두 가정은 인터넷을 통해 이곳에 오기 전에 서로 알게 되고 정보도 공유하며 왔는데, 이곳에 왔을 때 한 가정은 교회를 선택하고 신앙생활을 하였지만 다른 한 가정은 다른 이민자들이 사는 방식을 따라 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서 이 가정은 결국은 뉴질랜드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갔다.

두 가정 중에 왜 한 가정은 이곳에서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지치며 행복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떠나게 되었을까? 그럼 남아 있는 다른 한 가정은 늘 순조롭기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이 가정에게는 교회라는 공동체와 성도들과 목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하며 주님 안에서 기쁨을 찾는 이들이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자신만 잘한다고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내 아이만 잘 키운다고 과연 내 아이가 행복해 질수 있을까? 주변에 그렇지 못한 친구들로 결국은 내 아이까지 불행해 질 수 있다. 결론은 모두 다같이 성장하고 행복해 지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구한 결과를 보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 곁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모이고, 자신이 행복한 사람에게는 행복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주변에 행복한 사람 곁으로 가야 한다. 그 사람과 시간을 같이 보내고 삶을 나눠라.

불행해 지고 싶은가? 그럼 불행한 사람 곁으로 가면 된다. 우울증에 걸리고 싶다면 우울한 사람 옆에 가면 된다. 그럼 우울증에 걸릴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40일이면 갈수 있는 광야의 길을 40년 동안 돌게 하셨을까? 그것은 그들 안에 있는 패배 의식과 부정적인 마음 때문이었는데 그것을 정화하는 시간이 40년이나 걸렸던 것이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사탄의 가장 큰 무기는 부정적인 것이다. 부정적인 시각,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행동들을 통하여 사탄은 관계를 깨뜨리고 공동체를 깨뜨린다.

따라서 우리는 건강한 말을 하고 행복한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누가 내 뒤에 있는가를 영적으로 분별할 필요가 있으며,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늘 성경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40일 금식하시고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받으실 때에 오직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은 땅끝이기에 선교팀이 가끔 이곳에 오고는 하는데 이런 선교팀들과의 교제는 늘 내게 행복감을 준다.

행복한 목자를 만나는 것은 성도의 복이고, 행복한 성도를 만나는 것 또한 목자의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