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멈추는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안식일

“샤밧 샬롬!”(Shabbat Shalom)

유대인들의 거룩한 안식일이다. “평안한 안식일입니다.” 쯤으로 해석이 가능한 유대인들이 주고받는 이 정겨운 안식일 인사가 예루살렘 거리 곳곳에서 들린다.

금요일 해질녘에 시작되어 토요일 해질녘까지 이어지는 유대인 정체성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샤밧, 안식일을 성경으로만 접하다가 오늘 처음 피부로 느껴보았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하다. 모든 식당, 가게들이 정말 문을 다 닫았다. ‘설마 다 닫겠어? 몇군데는 열겠지’ 생각하며 저녁을 늦게 하리라 여유부리며 해가 질 때까지 신나게 예루살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배고픈 시간이다.

해가 진 금요일 저녁이면 한국과 뉴질랜드에선 오히려 쇼핑몰도 식당들도 불금 손님맞이에 열을 올리며 오히려 연장업무를 하는데 이러한 상업소비 패턴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거짓말처럼 조용해진 예루살렘의 최대 번화가를 걸으며 난감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방인 여행자들 배려도 좀 해줘야지! 안식일을 이렇게 문자적으로 융통성 없이 지키다니! 배가 고픈 여행자들은 안식일에 어디 가서 뭘 먹냐고!’

배고프고 억울한 마음에 유대인들에게 “이런 율법적인 족속들!”이라고 외쳐주고 싶지만 수천년간 하나님의 계명인 샤밧(안식일)을 타협하지 않고 지켜오고 있는 유대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나갈 때마다 매일같이 북적거리던 마하네 예후다(Mahane Yehuda )시장, 예루살렘의 퀸스트릿쯤 되는 욥바거리(Jaffa Street), 홍대나 압구정쯤 된다는 벤 예후다 거리(Ben Yehuda Street). 설마 설마 하며 두어 군데는 열었겠지 실낱 같은 희망을 안고 동네 구석구석 고픈 배를 움켜쥐고 걷고 또 걸었다.

‘안식일 이방인 손님 환영’ 이라고 적힌 팻말이 어딘가에는 보이리라 기대하며 식당을 찾아보지만 이럴수가, 맥도날드도 피자헛도, 모든 식당, 카페, 매장들이 싹 닫았다! 유령도시 뺨친다.

미리 먹거리를 사놓지 못한 나는 호스텔 자판기에 세겔 동전을 넣어 초콜릿과 칩스를 뽑아먹으려 했지만 초콜릿만 나오고 칩스는 작동오류로 인해 자판기 난간에 걸쳐 멈추어버렸다. 너 마저 안식이냐? 이런 유대자판기!

내일 해질녘까진 거룩한 안식일이 계속 될 터이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슬림들 거주지역인 구시가지(올드시티) 아랍쿼터로 가던지, 서안지구(West Bank) 팔레스타인에 들어가던지 해야만 할 것 같다.

샤밧 샬롬(평안한 안식일)이라고 매 주말마다 유대인들이 주고받는 이 인사가 이들끼리만 외치는 인사가 아니길 소망해본다. 지금 이 순간,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난 몹시 배가 고파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겠단 말이다. 꼬르륵 꼬르륵……

토요일 아침, 계속되는 안식일 아침이다. 여전히 배가 고프다. 일어나자마자 아랍쿼터로 달려가 양고기 케밥과 후무스와 칩스를 단숨에 삼켜버리겠다고 다짐했던 지난 밤과는 달리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황.

기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예루살렘 안식일 라이프스타일에 ‘정면돌파’를 해보자는 각오로 옷을 갈아입고 유대인들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전통을 지키며 사는 극 정통파 유대인들(Ultra-Orthodox Jews)이 모여 사는 동네 메아 쉐아림(Me’a She’arim)으로 향했다.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율법의 전통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정통 유대인들의 거주지역 메아쉐아림을 ‘이스라엘의 청학동’이라고 표현한 어떤이의 글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동네를 걷다보면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헷갈리게 된다.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전통 유대인복장을 하고 안식일엔 자동차 시동조차 걸지 않는다. 그 흔한 스마트폰을 들고있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동네를 탐험하던 한 시간 남짓 되던 짧은 시간 동안 길을 걸으며 무려 네 번이나 내게 시간을 물어오는 유대인 남성들을 만났다.

안식일엔 티비도 뉴스도 안본다는 이 울트라 정통 유대인들. 정말이었다. 신호등에서 마주친 한 젊은 청년은 내게 “어젯밤 파리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거야? 몇명이 죽었데? 부상자는? 다에시(ISIS)가 저지른 거지?” 궁금해하며 지난밤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사건에 대해 질문세례를 퍼붓는다.

정확한 정보를 위해 내 아이폰을 보여주며 지금 뉴스를 확인해서 최근 업데이트된 뉴스를 확인해주겠다고 하자 그가 두 손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괜찮다며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갈 길 가라고 한다. 모든 전자제품 사용도 금하는 안식일 규정에 의해 이러한 사소한 활동마저 제약을 받는 것이다. 아, 정말 징하다 유대인들이여!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메아쉐아림 주민들처럼 보수적인 유대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극정통파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전체 인구의 15% 미만이라고 한다.

내가 만나 대화를 나눈 다른 이스라엘 청년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사실 국민의 대다수는 이러한 고집불통의 극정통파 유대인들에 대해 오히려 반감과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시대와 상황에 전혀 맞지 않는 생활 코드와 이렇다할 직장생활도 하지않고 매일같이 회당에 나가 토라를 외우고 세금도 내지 않으며 자녀들은 무지하게 많이 낳는다며 이들 생활보조금이 평범하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21세기 이스라엘’국민들의 눈에 그리 곱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의 40퍼센트 이상이 자신을 ‘세속적인 유대인’으로 여긴다고 대답한 통계를 보니 정통유대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곧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메아 쉐아림 동네를 나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바로 시장이 한창 활기를 띠고 있을 반가운 무슬림들의 동네, 아랍쿼터를 향한 발걸음이었다.

시장 어귀에 도착하자 과일장수들의 컬러풀한 매대와 시끌벅적한 자동차 소리와 함께 활기 넘치는 ‘이방인’들의 모습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결국 그토록 염원하던 양고기 케밥과 함께 후무스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안식일엔 냉장고를 열면 자동으로 켜지는 전구불도 꺼놓는다는 유대인들. 에어컨과 냉난방기기들도 작동해선 안되기에 미리 타이머를 설정해놓는다는 유대인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것조차도 금지되기에 안식일에 사용 가능한 ‘샤밧 엘리베이터’까지 발명했다는 대단한 유대인들.

이런 유대인들을 바라보며 매인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러 오신 예수님을 생각한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시고 자유의 땅으로 인도하신 구원자 하나님을 생각한다.

또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말씀하신 마가복음 2장 27절을 생각한다.

성경과 가장 가깝지만 예수와 가장 멀리있는 예루살렘에서 짧게 마주했던 정통 유대인들을 생각하며 이들에게도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지기를 기도한다.
배고픈 이방인도, 율법에 목숨거는 유대인도, 우리 모두 하나님 은혜 안에서 샤밧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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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두루
순한글 '두루'는 본명 임명현의 키위 이름 'Drew'의 또 다른 이름, 메시대학교 졸업, 리테일 매니저, 오클랜드 사랑의 교회 청년, 뉴질랜드 내 무슬림을 섬기는 FFF(Friends of Friends Fellowship)에서 활동하며, 중동과 아시아를 두루두루 여행하며 만난 세상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