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서 가축 돌보는 게 쉬운 줄 알았지!

이스라엘 농장에서 생활한지 다섯 밤이 지났다. 그토록 바래왔던 이스라엘 농부와 목동의 꿈, 매일같이 자연과 호흡하며 땀 흘리며 일하고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하루 하루의 삶이 뿌듯하고 감사했지만 가끔 아차! 하는 순간들과도 마주한다.

한밤중 산책을 하는데 저 앞 어두컴컴한 숲 속에서 껌뻑거리는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였으니, 바로 성경에서만 들어봤던 ‘승냥이’라는 짐승(여우 혹은 들개와 비슷)이 그곳을 매일 어슬렁거리는 것이었다.

낮에는 들판에 물어뜯긴 채로 몸의 반이 사라져버린 불쌍한 염소 한 마리의 시체를 목격하고 농부에게 긴급 신고를 했었는데, 농부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승냥이 녀석이 왔다 갔군.”

‘이런 몹쓸 승냥이! 마주치면 물 맷돌 맛을 보여줄테다, 각오해라!’ 화를 내보지만 실은 그 이후부터 밤길이 무서워져 튼튼하게 생긴 나무 막대기를 꼭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의 동굴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한 간이 샤워 실에는 이틀 전날 밤 방울뱀 한 마리가 출현해서 막 옷을 벗은 나를 기겁하게 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반 나체로 뱀과 마주하는 일은 이스라엘 로망의 일부가 아니었다.

농장에서는 승냥이나 뱀을 마주하는 일 따위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기에 나의 아찔했던 체험담은 농부의 관심조차 얻지 못했다.

오늘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15년 동안 손보지 않아 녹슨 채로 방치되어온 농부네 쇠 문짝 두 개와 창가를 다듬고 칠하는 일을 했다.

녹슨 금속을 깎고 다듬는 전동 연장을 들고 반나절 내내 진땀을 빼며 노동, 노동, 노동. 농부는 하루 종일 가축들과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기에 내게 맡긴 일을 확인하는 유일한 시간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오후 4시쯤이었다.

“에잇… 이 문짝은 다듬어도 다듬어도 끝이 없구나! 이런 일을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닌데 말이야! 내게도 소떼를 몰 수 있는 목동의 업무를 주시오!”

혼잣말로 시위를 해본다. 하루에 두 번씩 400여 마리의 염소 떼를 몰고 휘파람을 불며 저 멀리 들판으로 나갔다 들어오는 팔레스타인 스무 살 목동 유니스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하지만 평생 경력자인 전문 목동과 이제 막 입사한 농장 자원봉사자에게 주어지는 일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마의 땀을 훔치고는 다시 15년산 구릿빛 낡고 녹슨 문짝과 묵묵히 씨름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분명 더 큰 일이 맡겨지리라!’속삭이며…

한 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에 몰두했던 이유가 또 하나 있었다. 농장에 도착한 첫날 농부에게 이전에도 한국이나 뉴질랜드에서 농장 일꾼으로 왔었던 적이 있는냐? 묻는 질문에 단 한 명도 없었다고 대답한 그는 곧이어 말했다.

“독일인들은 많이 왔었지.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도. 일본인들도 좀 왔고. 독일인과 일본인은 계속 남았으면 싶을 정도로 기가 막힌 일꾼들이었어. 미국인들은 말만 많이 하고 게을러서 별로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국과 뉴질랜드의 노동인력을 대표하는 멍에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아쉬울 것 없이 언제든 그냥 떠나버리면 그만인 자원봉사 농장이지만 이스라엘 땅까지 와서 한국과 뉴질랜드에 대해 실망스러운 모습보다는 흡족한 이미지를 심어줘야 할 것 아닌가. 게다가 농부는 이미 일본인 일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터.

그 누구도 부여해주지 않은 부담과 경쟁심이 내 안에서 불끈 솟아나며 ‘어떤 민족보다 뛰어난 대한건아의 성실함을 보여주겠어!’ 혼자 외치며 맡겨진 일거리에 최선을 다했다.

낡은 문짝을 새것처럼 만들기 위해 씨름하고, 과수원 밭을 고르게 하기 위해 삽질하며, 씨 뿌리는 시즌 준비를 위해 보리밭 곳곳에 박혀있는 짱돌을 골라내며, 염소우유를 유리병 속에 보기 좋게 담아 냉장실로 운반하며, 하루 종일 들판에서 풀을 뜯고 목장으로 퇴근하는 젖소 떼들을 위해 우리 문을 열어주며, 언젠가는 나도 이스라엘의 목동이 될 수 있으리라 꿈꾸며 또 하루를 살아냈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코리아의 ‘성실유전자’가 담긴 땀을 쏟아내며 필사노동을 한 나에게 그토록 기다리던 농부의 특명이 떨어졌다. 농장에 입사한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얻은 콜링.

“두루, 내일 아침은 소 우리 앞에서 보자. 소떼를 몰고 들판으로 나갔다 와.”

드디어 꿈이 이루어지는구나!
두꺼운 우비와 장화를 신고 80마리의 소떼를 우리에서 끌고 나와 소나기가 내려 질퍽거리는 언덕을 넘어 도로를 지나 보리밭을 가로질러 넓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데까지는 정확히 1시간이 걸렸다.

2km 남짓 되는 거리 치고는 꽤 오래 걸린 셈이다. 소떼들과 발을 맞추며 녀석들을 인도하는 일은 상당한 인내심과 카리스마를 요구했다.

어떤 녀석들은 느릿느릿, 저 녀석은 급히 앞서가고, 저기 신난 녀석은 혼자 멀리서 놀고 있고, 서너 마리 그룹은 툭하면 곁길로 새고… 녀석들을 한 줄로 모아 같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일이 보기보다 쉽지 않음을 깨달은 나는 무리를 벗어나는 녀석들을 향해 달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무리에 합류하기를 유도했으나 내 체력만 떨어질 뿐, 오히려 겁을 먹은 이 녀석들은 무리에서 더 멀리 달아나며 급기야는 아주 엄한 곳으로 가버렸다. 목동의 위치선정이 중요함을 배웠다.

너무 앞서도, 너무 뒤쳐져도 안되고 맨 앞과 맨 뒤를 수시로 살피되 선두그룹 (앞선 리더 10마리가량) 소들에게 가장 많이 소리치며 바른길로 앞장 서서 걸어가도록 해야했다. 그럼 나머지 무리는 저절로 뒤따라 오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받아, 두루.”
“아니, 괜찮다니까요, 농부~”
“받으라고, 훌륭하게 일해줘서 고마워. 내 선물이야. 여행하려면 잘 먹고 다녀야지.”
“아… 괜찮은데.. 그럼… 땡큐.”

2주간의 농장생활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는 나에게 유대인 농부는 언제든 다시 찾아오라며 흡족한 미소와 함께 300세겔을 내 손에 쥐어줬다. 한국과 뉴질랜드 노동인력의 우수함을 인정받은 것도 기뻤지만 더 귀한 가치를 배우고 간다.

하나님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돌아보며 다스리며 인간에게 주어진 노동의 가치를 다시금 회복시켜준 이 곳. 그리고 나의 꿈이 이루어진 이 곳. 나도 이스라엘 목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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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두루
순한글 '두루'는 본명 임명현의 키위 이름 'Drew'의 또 다른 이름, 메시대학교 졸업, 리테일 매니저, 오클랜드 사랑의 교회 청년, 뉴질랜드 내 무슬림을 섬기는 FFF(Friends of Friends Fellowship)에서 활동하며, 중동과 아시아를 두루두루 여행하며 만난 세상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