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 공동체를 이루라

“그렇게 좋냐?”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15살짜리 아들의 얼굴이 차 유리창에 비치어 희미하게 보였다. 얼마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지 그 기쁨이 속에서부터 차고 넘쳐서 녀석의 얼굴을 히죽히죽 웃음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아마 3주만에 처음 보는 웃는 얼굴이었다.

“어 좋아……”
“야, 뭐가 그렇게 좋냐?”
“음…… 고향에 온 것 같아!”

두 달 전 웰링턴에 내려갈 때는 몰랐다. 10년의 사역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역을 향해 나아간다는 기대감에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주변에 선배목사님들의 조언도 듣고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느라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다. 물론 나름대로 가족들의 의견을 묻는 시간도 분명 있기는 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모두 한마음이 된 줄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사춘기의 자녀들이 새로운 학교에 전학을 가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같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오클랜드 안에서도 교회 사역지를 따라 벌써 3번이나 학교를 옮겨보기도 했지만 새로운 도시로 새롭게 옮기는 모험은 이번이 처음이니 아이들이 혼란스러울 만도 하다.

4명의 자녀들 가운데 가장 괜찮은 줄로 생각했던 셋째가 몇 주 전부터 오클랜드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유일한 남자 아이니까 그래도 제일 씩씩하게 적응할 줄 알았는데 그것은 흔한 아빠들의 착각이었다. 엄마 아빠도 모르는 사이에 방학하면 버스를 타고 오클랜드로 올라갈 계획을 짜고 있었다.

다행히 내 일정과 시간이 맞아서 이번에 녀석을 데리고 오클랜드에 올라 왔다. 그리고 공항에서 차를 빌려 시내를 지나 하버브리지를 넘어서자 아예 몸을 틀어 창 밖을 바라보던 녀석이 콘스탈레이션 로드에 들어서자 그 얼굴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창 밖을 보며 히죽히죽 웃는 모습이 창문에 비치어 내 눈에 들어 왔다.
‘그렇게 좋을까? 아니 그렇게 그리웠을까?’

15살짜리 녀석의 입에서 ‘고향’이라는 단어를 듣자 왠지 마음이 뭉클해 졌다. 녀석에게는 여기가 그런 곳인가 보다. 오클랜드에서 태어나 15년간 오클랜드에 살았으니 자기 말대로 여기가 고향이 맞기는 맞다. 마치 문득 문득 내 맘속에 떠오르는 한국의 한 산동네…… 내가 어릴 적에 친구들과 무작정 뛰어 다니며 즐거워하던 그 곳이 그립듯이 녀석도 여기가 아마 그렇게 그리웠나 보다.

그런데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고향을 떠나 사는 나그네들이야 말로 성경이 그리고 있는 믿음의 모습인지 모른다. 예를 들어 히브리서 기자는 11장의 믿음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기록해 나가다 중간에 이렇게 기록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렇다! 히브리서가 자랑스럽게 기록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을 사는 동안 나그네로 살았다. 영원한 고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는 나그네로 살았던 사람들을 히브리서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히고 있다.

선교적 교회가 지향하는 모습도 이 나그네적 신앙과 일맥상통한다. 이 땅이 마지막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간마다 인식하며 사는 신앙인, 또 다음 도착지를 향한 기대로 인해서 현재에 너무 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신앙인, 그렇기 때문에 이 땅의 환란과 핍박은 충분히 견딜 이유가 있다고 믿는 믿음의 사람들, 이런 나그네적 신앙인을 선교적 교회는 지향한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 교회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오래 전에 어떤 목사님에게 예배당 건축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 해서든지 작은 사택이라도 미리 사 놓아야 결국 그 집 값이 올라 예배당 건축을 할 수 있는 종잣돈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참 지혜로운 방법인지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주변에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해서 예배당을 건축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문제는 그렇게 온 지혜를 동원해서 예배당 건축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전도가 왕성해서 성도들의 숫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가고 그래서 더 이상 예배할 장소가 비좁아서 어쩔 수 없이 예배당을 건축하는 경우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그 반대이다. 예배당을 지어야만 사람들이 찾아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더 편리하고 좀더 크고 좀더 화려한 예배당을 지으려고 교회들은 힘쓰고 노력한다. 더 이상 고생하는 나그네로 살고 싶은 성도들은 사라지고 좀 더 편하고 좀 더 있어 보이는 신앙인으로 살고 싶은 성도들은 늘어나고 있다.

물론 예배당 건물이 없어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웰링턴에 내려와 지금까지도 예배장소를 정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가며 커뮤니티센터에서 예배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편하게 예배 드리고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너무 너무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건물이 있어야만 성도가 온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선교적 교회는 보여주어야 한다. 아니 요즘 성도들의 영적 수준이 그것보다 더 높다는 사실을 선교적 교회가 입증해야 하는 시대를 사는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공동체! 그러나 우리가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는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가 도착하게 될 고향을 가슴에 품고 사는 공동체! 나는 하나님께서 새로 주신 이 선교적 공동체에 오늘도 나그네적 믿음의 씨앗을 뿌려본다.

그리고 그 씨앗이 자라 주렁주렁 나그네적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선교적 교회를 상상해 본다. 이 상상도 혹시 사치스런 상상은 아닐까?

오클랜드에서 친구들을 만난다고 들떠있는 녀석을 내려주고 고향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몇 달 전 살던 집 앞을 지나고 있었다. 집 겉모습만 보아도 왠지 마음이 뭉클하다. 고향은 나에게도 감동스런 장소인가 보다.

나도 언젠가 창 밖을 보며 히죽히죽 웃으며 그 고향에 도착하겠지? 저 멀리서 우리를 맞이하시기 위해 맨발로 달려오시는 우리 주님이 기다리시는 그 고향을 생각하니 왠지 그리움에 가슴이 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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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준
중앙대학교 및 레이드로우칼리지와 신대원 졸업. 예닮교회를 시작하면서 10년 후에 분리개척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고, 삶의 현장을 선교지로 여기며 직장과 가정에서 복음의 칼을 들고 공격적이고 영적인 삶을 사는 교회 공동체가 바로 선교적 공동체이기에 다음세대를 일으켜 세워 나갈 선교적 공동체 이야기를 13회 동안 연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