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취. 향. 저. 격”

요즘 인터넷에서는 취준(취향 존중), 취저(취향 저격) 또 취향 폭발 등 취향에 관한 다양한 단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아름답고, 의미있다고 여기는 ‘취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취향을 가지고 계시나요?

첫번째 공간
저희 한국 집 곳곳에는 테라코타 작품들이 있습니다. 테라코타는 고운 진흙을 빚어 800도에서 초벌구이 하는 작품들인데, 그 중에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말뚝박기 하는 아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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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그리고 삼남매. 저희 다섯 식구가 말뚝박기 하는 모습이라며 가족 사진처럼 다루는 작품입니다. 곱던 진흙이 센 불에 구워져 딱딱한 돌이 되었지만, 손으로 만질 땐 아직도 고운 흙 촉감이 느껴집니다.

저희 집의 테라코타 작품은 주로 아버지가 모으십니다. 저희 아버지는 흙과 흙에서 나오는 것들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흙을 다루는 사람과 동물에겐 꼭 다가가서 말을 거십니다. 그러다 그 옆에 풀썩주저 앉아 남의 밭 고추, 남의 집 소를 빤히 쳐다보십니다. “하~소, 참 예쁘네요”, “이건 무슨 고추요?”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는 길, 아빠는 항상 이렇게 밭두렁에 차를 세우시곤 할머니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즐겨 들으셨습니다. 아빠가 밭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저희 삼남매는 그 옆에서 논과 밭에서 뛰어 놉니다.

그렇게 뛰놀다 보면 아빠가 멀리서 우리들을 부르시며 와보라고 하십니다. 아빠가 “이거 좀 봐, 이거 해볼래?” 하시면 삼남매는 한번 쓱 만져보고는 멀뚱 서서 가만히 아빠를 쳐다보고 맙니다. 어릴 적 그렇게 하나 배운게 새끼 꼬는 방법입니다.

처음에는 돌돌 마는 손모양이 어색하고 까칠한게 싫지만 죽-길게 꼬아두고 나면 그럴싸 합니다. 첫째가 하면, 둘째가 그 옆에 쭈끄려 앉아 만들고, 또 셋째가 둘째를 따라 그렇게 새끼를 꼽니다. 꼬아진 새끼 줄로 옆에 소를 간질여 봅니다. 간질여도 아무 반응이 없어서 죽은지 알았는데 눈을 보니 살아있네요.

두번째 공간
아빠의 취향을 어릴 적부터 습득한 결과 일까요, 그의 딸이 찾아 가는 카페에도 나무와 흙이 가득 합니다. 요즘의 카페는 인더스트리얼 혹은 미니멀리즘이라는 유행에 맞게 공장처럼 혹은 깔끔하고 차가운 모던한 느낌의 카페가 대부분이지만 여전히 자연으로 만들어진 카페가 있습니다.

해밀턴에 한 카페가 그렇습니다. 취.향.저.격! 카페 주인 아버지와 아들이 손수 만든 나무 바닥과 나무 펜스. 직접 만든 나무 테이블과 옛날 초등학생 때 쓰던 나무 책상과 의자. 카페 주인 아주머니의 작은 소품들과 딸의 결혼식에 쓰인 모든 꽃들이 마른 꽃이 되어 카페 이곳 저곳을 채우고 있습니다.

장미, 수국, 유칼립투스, 갈대, 안개꽃, 강아지 풀 그리고 이름 모를 지푸라기 같은 마른 풀들. 그렇게 이 카페를 운영하는 한 가족의 취향이 보이네요. 어쩜 가족의 취향은 그렇게 닮고 또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그렇게 카페에 작은 나무들과 말린 꽃 나무들을 가만 보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돌려보면 사람이 바글바글 합니다. 사뿐사뿐 들어오는 파스텔 치마를 입은 소녀도 있고요, 일명 핑크색 조리 신고 플립폴롭 하며 들어오는 여자, 또각또각 구두신은 엄마들, 엄마 옆에 서 오줌을 참느라 다리를 베베꽌 소년, 진주 귀거리를 한 아줌마, 엉덩이를 긁고 있는 아이, 그런 손자를 보고 씩 웃는 할머니, 그 옆엔 밀짚모자 쓴 할아버지가 할머니 꽃무늬 가방 들고 주문 중 이시네요.

아빠의 손이 계산대 위에서 바쁠 동안 아빠 손 대신 허벅지 꼭 안고 있는 아이가 글 쓰는 저를 빤히 쳐다봅니다.

이렇게 살아 있는 것들은 생김새도 눈동자의 움직임까지도 참 다양합니다. 생명이 없는 것들은 차분하고 고요한 반면, 생기가 있는 것들은 쉴새 없이 움직입니다. 살아있는 것들은 저런건가 보다 합니다.

살아 있다, 즉 숨을 쉰다. 쉬지 않고 생각하는 뇌와,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온탕 냉탕 넘나들듯 하는 우리의 감정, 쉬지 않고 뛰는 심장, 신생아의 열 손가락도 쉴새 없이 쪼물딱대고 또 우리의 지치지 않고 쫑알대는 입. 하나님이 마른 흙에 물 먹여 정성들여 빚으시곤 초벌구이 대신, 생기를 불어넣으신 작품들은 저렇게 다양하게 움직이는 거구나 라며 카페에서 사람 구경을 합니다.

세번째 공간
어느 한 공간에 들어가면 그 공간을 만들어가는 주인의 취향이 느껴집니다. 자신이 가치있고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로 그 공간을 만들어나가죠. 미켈란젤로의 작품 천지창조에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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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에 그려진 창조의 아버지는 손 끝과 눈빛마저 역동적입니다. 반면 흙으로 빚어진 아담은 건강한 신체와는 대조적이게 생기없는 눈동자와 축 쳐진 손 끝을 가졌습니다. 그런 아담의 손 끝에 하나님의 손 끝이 닿고, 흙으로 빚어진 아담이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인간이 태어나 처음 숨통이 트일 때에 뱉은 소리가 ‘야웨’라고 합니다. 그리고 매순간 우리가 숨을 들이 마실 때 ‘야’, 숨을 내쉴 때 ‘웨’. 야웨, 여호와. 그렇게 매 숨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하시네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취향. 하나님의 숨결과 하나님의 영으로 사람을 살리시고, 그가 만든 공간을 채워나가십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취향과 이야기를 이곳 저곳에서 찾도록 해보죠. 아빠의 취향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딸처럼 또 가족끼리 공유하는 비슷한 취향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개인의 취향도 하나님의 취향과 닮아 가겠죠?

하나님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들을 아끼고 같이 즐거워 하는 크리스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 들어가는 날에 다같이 하나님께 한마디 듣도록 하죠.

“너.내.취.향.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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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연
해밀턴에서 간호학 전공. 해밀턴 지구촌교회 청년. 새내기 간호사로 일하면서 병원에서는 사람을 공부하고, 병원 밖에서는 카페에 앉아 시, 소설, 음악, 미술, 역사, 철학을 통해 하나님을 공부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인 빛과 색 그리고 인간의 창조물인 문화와 예술 사이의 연결고리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