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얼굴 드러낸 기적의 세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광채를 드러낸 사람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자라난 기적의 세대, 즉 만나 세대이다.

만나 세대는 출애굽 일 세대와는 달리 서슴없이, 겁 없이 가나안 땅으로 진격했다. 가나안 서편의 31명의 왕들을 5년 만에 정복했다. 통쾌한 승리였다. 그래서 여호수아서에 증언된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내는 기적의 세대가 될 수 있는지,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분명해야 한다.
비전이 없으면 망한다. 비전이 있어야 길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비전은 방향이다. 방향이 분명해야 한다. 무엇을 위하여, 어디로 백성들을 이끌어갈 것인지에 대한 방향이 분명해야 하나님의 얼굴을 드러낼 수 있다.

여호수아는 40년 동안 모세의 시종으로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법, 백성을 이끌어가는 법을 훈련받았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지도자가 아니라 40년 동안 하나님의 눈으로 국가 전체를 보는 통찰력을 훈련받은 사람이다.

“내가 주는 땅으로 가라……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으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프라테스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또 해 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여호수아 1:2-4)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분명했다. 말씀을 받아 가야 할 그림을 그렸다. 비전이 준비된 사람이 공동체를 이끌어간다. 비전이 명확해도 뜻을 다 이루지 못하는데, 비전이 없는 사람은 어두움 속에서 사람들을 어두움으로 이끌고 간다.

여호수아를 볼 때마다 아쉬운 점은 끝까지 가지 않은 것이다. 중단하지 말고 끝까지 갔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지 못하고 정복전쟁을 중단했다.

시작을 했으나 끝을 맺지 않은 불순종 때문에 가나안 정복 이후 사사 시대 350여 년 내내 가나안 족속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했다.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야 한다.

여호수아에게 허락하셨던 비전, ‘광야에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 주시겠다던 약속이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은 절대 헛된 약속이 아니다. 이룰 수 없는 약속이 아니다. 믿음으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견뎌내야 한다.‘비전을 따라 시작하고, 믿음으로 끝까지 견뎌내고 버텨내야’ 결실을 보게 된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설렘과 함께 두려움이 찾아온다. 여호수아의 마음속에도 두려움이 있었다. 두려움을 가지고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희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여호수아 1:5-6)

38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출애굽 1세대가 실패한 원인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강대한 7족속을 보고 ‘우리는 그들 앞에서 메뚜기 같은 존재다.’라는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도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두려움은 모든 능력을 빼앗아 간다.

두려움이 들어오면, 모든 것이 흔들린다. 그래서 마귀는 어찌하든지 두려움의 통로를 열려고 한다.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두려움을 극복하지 않고는 새로운 은혜의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38년 후에 다시 똑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무엇이 달랐는가?

만나 세대는 두려움을 극복한 세대이다. 두려움이 없는 신세대들이 하나님의 말씀 붙잡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믿음으로 들어갔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반대로 가나안 사람 쪽에서 간담이 녹아 내리는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게임 끝이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두려움을 극복한 세대를 양육해야 한다. 교회의 사활을 걸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두려움이 없는 세대를 양육해야 한다.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면 두려움은 정복된다. 예배드릴 때 두려움은 도망간다. 하나님을 높여드리면 두려움은 사라진다. 이 위대한 신앙으로 뼈 속까지 무장된 오늘날의 만나 세대를 양육해야 한다.

자기를 버려야 한다
십자가는 자기 죽음이다. 나를 묶어 버리는 곳이 십자가다.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부활의 영광에 도달할 수 있다. 믿으려면 제대로 믿어야 한다. 어설프게 믿지 말고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단 했으면 자기 소견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제사장들에게 언약 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그들은 말씀대로 요단강으로 들어갔다. 요단강이 갈라지고, 바닥이 마르고, 흐르던 물이 겹겹이 쌓이는 기적이 일어났다. 대단한 기적이었다.

말씀에 의지해서 말씀대로 행동했더니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주셨다. 그 때에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스라엘은 위대한 믿음으로 응답했다.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은 요단강 물 속에서 가져 온 12돌로 기념탑을 세우게 하신 후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다. 할례를 받으면 며칠 간은 드러누워야 한다.

적군의 코앞에서 할례를 받고 눕는 것은 목숨을 맡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60만 명 전체가 할례로 누웠다. 누가 그 위대한 믿음의 힘을 막을 수가 있을까!

믿으려면 제대로 믿자. 어설프게 불을 피우기 때문에 연기만 난다. 적군 앞에서 60만 명이 할례를 받고 함께 누웠던 그 위대한 믿음, 하나님을 향한 절대 믿음, 그 믿음을 사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