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지효과 Nudge Effect

읍내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하나는 비포장도로에 먼지가 폴폴 인다. 길고 구불구불해서 멀다. 다른 하나는 산길이다. 솟대 바위 밑으로 난 길을 따라서 언년이네 채마 밭을 지난다.

좌우의 옥수수가 우거진 돌이네 돌 짝 밭을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을 넘는다. 언덕을 넘어서 외딴 집 서넛을 지나면 멀리 읍내의 불빛이 보인다. 아마도 오리는 족히 가깝다고들 한다. 외진 길이라서 혼자 다니기에는 어깨춤이 움츠려 드는 게 흠이랄까.

까까머리 고딩들이 읍내에서 시오리길이나 되는 이 산골마을에 하숙을 든 지는 반년이나 된다. 해수병으로 큰 기침이 많은 욕쟁이 할아범네에는 탄광촌에서 유학 온 수야가 있다. 중년 쌍 과수댁에 하숙 든 철이는 남쪽 어장으로 유명한 어촌 마을에서 유학을 왔다. 얌전이로 소문난 과수원 집 딸네에 하숙 든 범이는 시멘트 공장으로 유명한 읍내에서 유학 온 친구들이다.

어찌 어찌해서 이 마을에 모인 유학생만해도 나를 포함해서 여섯 명이나 된다. 청운의 큰 뜻을 품고 읍내에서 도회지로 유학 온 친구들이라 공부깨나 한다. 모두가 자신의 고향 중학교에서 첫째, 둘째를 다투는 실력자들이라 개성이 강하고 자존심도 엄청 강한 친구들이다. 그런데 단 하나 이들에게 약한 것이 있다. 바로 배고픔이다.

1960대 초는 하숙집에서 주는 세끼 밥 외에는 간식이라고는 못 먹던 때이다. 열여섯 일곱 살 나이 또래는 먹고 돌아서면 배고픈 시절이다. 온 동네에 암흑이 내릴 즈음이면 슬슬 시장기가 동한다. 오늘 예습할 공부 량을 채우자면 자정은 족히 지나야 한다.

탄광촌 출신의 수야가 설레 발을 친다. 문풍지가 달랑대는 장지문을 똑똑 두드린다. 출출한데 자정까지 공부하겠어. 오늘 저녁은 주인댁 증조부의 제삿날이라서 잘 먹었는데……이미 얘기가 대충 끝난 어촌 마을 출신의 철이까지 가세한다.

까까머리 고교생 셋이서 야밤에 시내 순례를 나간다. 선배들에게서 전수받은 대로 빵집 학습을 나가는 것이다. 당시에는 천환이면 제법 큰 접시에 찐빵이 수북이 쌓인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고 일어선다. 때맞추어 통행금지 사이렌이 여지없이 불어 댄다.

순찰 도는 방범대를 따돌리고 하숙집에 무사히 도착하면 온몸은 땀으로 질펀하다. 아마도 한국판 죽은 시인의 사회는 이때부터이다.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너 또한 한편의 시가 된다는 것을 비밀로 해줄 수 있겠니(존키팅 선생 분, 로빈 윌리암스, 2014년에 작고)

너지효과(Nudge Effect)는 ‘옆구리를 슬쩍 찌른다.’ 는 뜻이다. 강요에 의하지 않고 부드러운 개입을 통하여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다. 넛지라는 단어는 행동경제학자인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와 카스 선 스타인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공저인 <너지>에 소개되어 유명해진 말이다.

이들에 의하면 강요에 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선택을 이끄는 힘은 생각보다 큰 효과가 있다. 의사가 수술해서 살아날 확률이 90%라고 말했을 때와 그 수술로 죽을 확률이 10%라고 말했을 때 죽을 확률을 말한 경우에는 대다수의 환자가 수술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에 남자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놓았다. 이후에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나 줄었다고 한다. ‘너지’라는 단어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란 뜻인 것처럼, 너지 마케팅은 사람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한다. 선택의 자유는 개인에게 준다.

즉, 너지는 특정 행동을 유도하지만 직접적으로 명령을 하거나 지시를 내리지는 않는다. 가령 소변기에 파리 그림을 붙이는 것이 너지이다. ‘파리 그림을 맞추라.’라고 하는 것은 너지가 아니다. 유도와 명령과 지시가 너지의 정의를 가른다.

한국의 남녀상열지사의 노래 중 누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쿡쿡 찔렀나/네가 먼저 살자고 옆구리 쿡쿡 찔렀지/ 작자미상의 노래 말이다. 해피 앤딩으로 끝난 사랑이야기에도 이런 추임새가 들어 간다. 불장난으로 끝난 사랑의 종말에도 이런 추임새로 티격태격한다. 사랑의 시작이 누구면 무슨 상관인가. 사랑했다. 행복했다.

우리는 영원을 약속했다. 그 종말이 좋았다. 그러나 비극이었다. 이것이면 족한 게 아닌가? 미주알 고주알 무엇을 그리 따지는가. 최근에 동남아, 미주, 대양주까지 한류의 열풍이다. 언어, 문화, 의상, 여성들의 미용과 화장품에 이르기까지 한국 따라 하기가 유행이다. 바라기는 반짝하다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한류는 사양한다. 멋지고 아름답고 기억에 남는 한류의 열풍이 불기를 기대한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춘삼월 호시절이 지나면 어느 시인이 노래했던 잔인한 4월이 우리를 기다린다. 고난과 역경은 잠시 뿐이다. 4월을 지나면 계절의 여왕인 5월이다. 십시일반으로 어려운 다민족 가정을 사랑하며 섬겨온 지가 5년이다.
누가 먼저 돕자고 옆구리 쿡쿡 찔렀나. 네가 먼저 돕자고 옆구리 쿡쿡 찔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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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만
춘천교대와 단국대 사범대 졸업. 26년 간 교사. 예장(합동)에서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 받아 밀알선교단 4-6대 단장으로 13년째 섬기며, 월드 사랑의선물나눔운동에서 정부의 보조와 지원이 닿지 않는 가정 및 작은 공동체에 후원의 손길 펴면서 지난해 1월부터 5메콩.어린이돕기로 캄보디아와 미얀마를 후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