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의 근원이 된 ‘헤넬리’

통가 김인권선교사

내가 가족과 함께 통가에 오기 전에 이미 망고트리센터 사역을 시작했던 전임 선교사는 2005년에 센터 건축을 마치고 건강이 악화되어 2006년에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2007년에 통가에 도착한 우리는 선교사역에 대한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채 사역을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은 사역의 인수인계가 필요없었다. 왜냐하면 돌보던 장애아동이 1명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통가 타푸섬의 동쪽 외진 마을에 살던 그 장애아동의 가정을 우리는 매주 수요일마다 방문을 하였다. 14살이던 그 아동의 이름은 헤넬리였다.

태어나 6개월 만에 뇌성마비 장애를 갖게 된 헤넬리는 그때까지 아무런 재활치료도 받지 못한 채 더 이상 나빠질 수 없는 몸으로 누워서 지냈다. 엄마는 속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씻기고 입히고 먹였지만 아이의 몸은 야위고 비틀어져서 두 다리는 마치 대나무 젓가락 같은 모습이었다.

장애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갖고 있는 수치심과 죄의식은 흡사 거대한 콘크리트 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래서 방문할 때마다 주님께서 그 가정과 장애아이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고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이것이 많은 위로가 되었는지 헤넬리는 우리가 도착하는 차 소리가 들리면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우리가 가려고 밖으로 나가면 소리내어 울곤 하였다.

이렇듯 가정심방을 위주로 한 장애인 사역을 통해 장애인 가정을 한 가정 한 가정씩 섬기고 있을 때, 오클랜드에서 의료봉사팀이 통가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이 의료팀을 헤넬리의 마을로 안내하였다. 이 마을은 너무 외진 곳이어서 버스도 다니지 않아 주민들이 아프면 병원을 가지 못해 큰 고통을 받던 곳이었다.

의료팀이 마을회관에서 진료를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모든 주민들이 나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치료를 받고 약을 타갔다.

의료팀이 봉사활동을 마치고 뉴질랜드로 돌아가고 우리는 그 다음주 수요일에 다시 헤넬리의 가정을 방문하였다. 우리가 들어서자 엄마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번의 울음은 전처럼 억눌렸던 고통으로 인한 울음이 아니었다. 붉어진 눈시울로 우리를 쳐다보며 헤넬리의 엄마는 우리에게 지난 주일에 있었던 일을 알려줬다.

“목사님이 설교 때 우리 헤넬리 얘기를 했어요”
“그래요?”우리가 놀라서 되물었다.
“네, 말씀하시기를, 전에는 헤넬리가 왜 이세상에 태어나서 가족들에게 고통을 주는가라고 생각했었대요. 그런데, 지난 주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이 와서 우리 모든 마을 주민들을 치료해 주었는데, 바로 헤넬리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렇게 복을 받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헤넬리가 우리 마을의 복의 근원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을 들은 우리는 기쁨에 겨워 함께 부둥켜안고 울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큰 파도가 되어 그동안 이 가정을 둘러쌓던 수치와 죄의식이라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14년동안 심한 장애를 가진 채 비틀린 몸으로 골방에 누워만 있던 작은 장애아이가 그 마을의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그 후로도 여러 봉사팀과 단기 선교팀이 통가를 방문할 때마다 헤넬리 가정을 방문하여 커튼을 달아 뜨거운 햇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고, 집을 수리해서 비가 들이치는 것을 막아주고, 엄마의 수고를 덜 수 있도록 세탁기를 제공하였으며, 여러 후원자들이 헤넬리 형제들의 학비를 지원하는 등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헤넬리는 가정에서도 복덩어리 역할을 잘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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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넬리의 이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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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넬리의 새 집

헤넬리는 몇 년전에 하늘나라로 가서 주님 품에 안겼다. 장례식 때에 만난 그의 엄마는 밝은 얼굴로 헤넬리가 더 이상 장애로 인해 비틀어진 몸이 아닌 완벽한 모습으로 주님과 함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였다.

평생 심한 장애를 안고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복의 근원이 된 헤넬리는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다.

주님은 망고트리센터 사역을 통해 장애인들과 그 가정에 복 내려주기를 계속하고 계신다. 흡사 움막 같은 집에서 살던 장애인 가정들을 위해 벌써 4채의 새 집을 지어주었다. 장애아동이 다니는 학교를 찾아가 지붕을 고쳐주고, 유리창을 바꿔주고, 휠체어 경사로를 만들어 주었다. 이 모든 일들이 장애인이 복의 근원되게 하시는 주님께서 하신 일이다.

장애인이 복의 근원이 되도록 하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은혜로 하시는 일이며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가능하다. 또한 장애아이로 인한 죄의식과 주변의 손가락질로 인한 수치심으로 괴로운 삶을 살던 엄마 아빠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았던 거대한 벽이 무너지면서 비로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보는 것은 진정한 기쁨이며 큰 특권이 아닐 수 없다.

외진 마을의 구석진 곳에서 남의 눈을 피해 살아가던 한 작은 장애아이와 수치와 죄의식으로 인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던 가정에 주님의 사랑스런 얼굴 빛이 비쳐졌고, 그들의 삶은 바뀌었다.

선교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살던 사람들을 찾아가 예수님의 사랑과 말씀을 전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아름다운 선교사역이 이 땅 통가에서 수행되고 있다는 것이 한없이 감사하고 기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