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한 염소

술 취한 염소

비둘기 샬롬이 울타리에 앉아 숫양 아벨과 염소 아사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표정이 얄궂네. 무슨 일 있어?”

아벨이 묻자 샬롬은 주저하는 표정을 짓다가 입을 열었다.

“왜 예수님은 염소를 싫어하실까?”
“무슨 말이야? 예수가 우리 염소를 싫어하다니?”

아사셀이 머리를 흔들며 물었다.

“내가 지금 감람산을 다녀오는 길인데 말이야. 거기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있는거야. 그래서 가만히 들어봤지. 근데…”
“근데?”
“음, 글쎄 이렇게 말씀하더라구.”

비둘기 샬롬은 기억나는 대로 전해주었다.

“인자가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영광 가운데 다시 와서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인자는 자신의 오른쪽에는 양을, 왼쪽에는 염소를 둘 것이다.”

셋이서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자 암양 술람미도 어느새 끼어들었다. 중간에 끼어든 술람미가 입을 열었다.

“오른쪽에 양, 왼쪽에 염소?”
“응. 그러면서 그러시더군.”

비둘기 샬롬은 울타리 나무 위를 떨어지지도 않고 잘도 걸어다니면서 계속 말했다.

“그 때 왕이 오른쪽에 있는 자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로부터 복을 받은 너희들이여, 와서 세상이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준비하신 나라를 물려받아라.”
“우와, 오른쪽이 양이었지? 양은 좋겠다. 그럼, 왼쪽의 염소에게는?”

염소 아사셀이 샬롬의 다음 말을 재촉하였다. 샬롬은 무지 고민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주받은자들아, 내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해 준비한 영원한 불에 들어가거라.”
“뭐라고? 저주? 영원한 불?”

아사셀이 기겁을 했다.

“잘 들은 거야? 그럴 리 없는데. 그렇게 말할 리 없는데.”
“내 두 귀로 똑똑히 들었어.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더라구.”

아사셀의 턱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 말이 비수처럼 아사셀의 마음에 깊이 박혔나보다. 그 시간부터 그는 달라져버렸다. 양들과는 통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아벨이 다가서도 못 본체 하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다. 비둘기 샬롬은 괴로움에 못이겨 부리를 땅바닥에 쿡쿡 찧었다.

“이 놈의 몹쓸 주둥아리!”

자존심이 세고 성질이 불같은 염소 아사셀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왜 양은 복을 받는데, 염소는 저주를 받는단 말인가? 질문이 거듭되어도 답은 찾아지지 않고 화만 치밀어오르는 것이었다.

그 말을 했다는 예수가 미웠다. 그 말을 전한 비둘기도 미웠다. 칭찬받은 양도 미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염소로 태어난 자신이 너무 미웠다.

밤이 되었다. 아사셀은 잠이 오지 않아 우리 안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그 때, 울타리 바깥쪽에 뭔가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뭘까?’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물을 넣어두는 가죽부대였다.

‘이게 왜 여기 떨어져있지?’

발을 밖으로 내밀어 가죽부대를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가죽부대는 몹시 낡은 것이어서 곳곳이 헤져있었다. 발로 누르며 끌어당겼던 탓에 터진 틈을 통해 물이 새어나왔다.

목을 축여보려고 혀를 갖다대어 조금 핥아보았다. 근데 맛이 좀 이상했다. 늘 마시던 그 물맛이 아니었다.

‘뭘까? 무슨 맛이지?’

아사셀이 발로 가죽부대를 더 세게 누르자 틈에서 많은 물이 흘러나왔다. 염소는 계속 핥아먹었다. 마실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자세히 보니 물은 붉은 색이었다. 발굽이 끈적끈적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져있었다.

‘이상해. 이 물은 마실수록 더 마시고 싶어지네.’

한 발로 꾸욱 밟다가 점점 성에 차지 않아 두 발로 꾹꾹 밟아대며 핥아 먹었다.
포도주!

그 물은 다름아닌 포도주였다. 누가 실수로 포도주 부대를 여기에 떨어뜨리고 간 모양이었다. 염소 아사셀은 포도주 한 부대를 모두 마셔버려 완전 고주망태가 되었다.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취해버린 아사셀! 술취한 아사셀의 마음은 제멋대로 날뛰었다.

이전 기사제296회 크리스천
다음 기사우리의 연합을 원하시는 하나님
김이곤
연세대정외과 졸업, 코람데오 신대원 평신도지도자 과정 수료하고 네이버 블로그 소설 예배를 운영하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그 어떤 조건도 구원에 덧붙여져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어른이 읽는 동화의 형식에 담아 연재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