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과 배려가 넘치는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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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않은 곳에서 누군가가 베푸는 친절함과 따뜻한 배려를 받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살맛 나는 일이다. 뉴질랜드를 떠난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뉴질랜드’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음에 느껴지는 온기는 아마도 뉴질랜드에 살면서 경험했던 키위들의 친절함과 배려심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년에 딸이 사는 웰링턴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만난 중년 키위 여성의 따뜻함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다. 쇼핑센터를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향해서 걸어 가는데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산이 없었던 나는 비가 더 쏟아지기 전에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위해서 막 뛰어갔다. 마침 지나가던 차가 속도를 줄여 내 앞에 서더니 창문을 내리며 나에게 차에 타라는 손짓을 했다. 너무 뜻밖의 제안을 받아 잠시 머뭇거리니 은발의 중년여성은‘가는 길에 방향이 같아서 태워주는 것이니 부담을 갖지 말라’며 친절하게미소를 지어 보였다.

낯 모르는 사람에게 차를 태워주겠다고 권유하는 것도 요즘 같은 불신이 팽배한 시대에 용기가 없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기에 그녀의 용감한 친절과 미소에 감동이 되어 그 차에 올랐다. 오랜만에 마치 고향에 돌아와 시골인심을 맛보는 듯한 푸근함을 느끼며 그녀와 대화를 시작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버스 정류장을 지나서 원래 버스를 타고 가려던 쇼핑몰까지 그냥 그 차로 가게 되었다.

영국 출신의 그 중년 여성은 선교사로 여러 나라에서 살았던 사람이었다. 나에게 쉽게 차를 태워주겠다고 한 것은 아프리카 오지의 마을과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생활하면서 자신의 차로 많은 사람을 늘 태워주었던 일상적인 배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진솔하고 의미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가 차를 태워준 덕분으로 비를 맞지 않고 무사히 쇼핑몰에 도착하여 일을 잘 볼 수 있었다. 이처럼 친절과 배려가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나오려면 생활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정과 사회에서 경험해야 하며 어릴 때부터 훈련되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키위들은 사생활의 영역에 대해서 철저한 구분을 하고 있지만 때로는 낯선 사람, 혹은 외국인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태도는 공동체 안에서 특히 연약한 자에 대한 배려를 함으로써‘함께 사는 사회’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지역주민들 스스로가 평화롭고 안전한 환경으로 지역사회를 만들어가는 노력과 또 건전한 시민의식의 표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뉴질랜드 이민 정착기간에 받았던 많은 친절과 배려의 순간들이 새삼 기억의 수면위로 떠올랐다. 오클랜드에 일년을 살고 적응이 될 무렵 딸아이와 함께 웰링턴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지인의 소개로 키위 집에 잠시 홈스테이를 했었는데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던 홈스테이 맘은 딸아이가 새로운 학교에 첫 등교를 할 때부터 항상 아침마다 아이의 손을 붙들고 기도를 해 주었다.

또한 우리에게 고향의 음식이 그립겠다며 아시안 요리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한번도 먹어본 적 없는 국적이 모호한 아시안 요리를 종종 만들어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 미리 사놓은 자동차만 있고 운전면허증이 없었던 나에게 홈스테이 맘은 무료로 운전연습을 시켜주어 동네 길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외롭고 힘든 이민생활을 새로운 도시에서 다시 시작하는 나에게 많은 용기와 격려가 되었다. 마치 우산 없이 비를 맞고 걸어가는 나에게 차를 태워준 친절한 은발의 중년 여성의 친절함처럼…
세월이 20년이 흘렀어도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이와 내가 기러기 가족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측은하게 생각하는 몇몇 이웃들이 부활절과 크리스마스 때 가족 파티에 불러주어 외롭지 않게 명절을 지낼 수 있도록 해준 일들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고마움으로 기억이 된다.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한국에서의 명절은 가족들끼리 모이고 친지들을 불러 나누는 날이지 외로운 이웃을 불러서 대접한 것을 경험하지 못한 나에게 있어서 그들의 초대는 문화충격이었다. 소외된 이웃을 불러 음식을 대접해 주는 것이 얼마나 귀한 대접인지에 대해서 가슴 깊이 느끼기에 충분했다.

누군가가 힘들 때 조용히 손을 잡아주고 외로울 때 다가와 등을 두드려 주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나는 초기 이민생활의 어려움을 잘 견디고 낯선 땅 뉴질랜드에 잘 정착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아름다운 노년을 멋지게 살아가는 키위들을 보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베풀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 그리고 인생 경험을 통해 배운 지혜로움과 그것을 통한 안정감과 겸손함을 지닌 삶을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 동안 뉴질랜드에서 아름답게 나이가 들어가는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그들이 누리는 노후의 자유함과 삶의 행복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국적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다가갔던 그들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얼굴들이 가끔 떠오른다. 나에게 당장의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계산을 따지지 않고 늘 먼저 베풀었던 삶이 바로 평안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만들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면 늘 누군가와 경쟁하고 비교하면서 살아간다면 결코 여유롭고 평안한 얼굴을 가질 수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었다. 도서실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아침에 바닷가를 걷는 여유로운 뉴질랜드 노인들과 마주치면 그들이 어떻게 살아 왔고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 왔는지 그 얼굴과 표정에서 읽혀진다.

이제 성장한 자녀들과 함께 뉴질랜드에서 사는 은퇴한 중년의 한인 이민자들의 얼굴에서는 지난 삶에 있어서 어떤 메시지를 담게 될까?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와 3세 아이들이 한국인 부모와 조부모를 바라볼 때 어떠한 느낌을 갖게 될지 궁금하다. 혹시 자녀에게만 온갖 정성을 쏟아 부어, 이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빈 둥지를 지키면서 허망함과 서운함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제부터 이웃을 돌아보며 도움이 필요한 곳이 어딘지 살펴보자.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의외로 많이 있다.

독거 노인을 위해 음식을 나르는 일부터, 최근에 들어오는 난민들에게 또는 새로운 이민자 혹은 이웃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다면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질 수 있으며 보람된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부모의 행동이 자녀로 하여금 존경심을 가지게 하고 손주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화제거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친절과 배려에 한국인의 정까지 합쳐진 이민 첫 세대의 아름다운 노년의 삶은 차세대에게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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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미
10년동안 뉴질랜드에 거주하며 교육이민의 경험을 담아낸‘해외에서 보물찾기’저자로 글로벌 시대의 자녀교육을 위한 교육 에세이를 출간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현재 싱가포르에서 아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한류에 대한 교육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