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안전의 날 제정 반대

태아는 크기만 작을 뿐이지 우리와 같은 사람
유엔에 낙태 안전의 날 제정을 요청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반대서명하기 바라

낙태와 시술행위에 반대하여, 금년 2월 중순에는 낙태시술건물 맞은편 길가에서 낙태반대운동을 한 그룹이 있다. 가톨릭 단체에서 4~10명이 와서 피켓을 들고 부활절까지 2달 동안 조용한 시위를 벌렸다. 시술소 측은 경찰을 불렀고 지나가던 어떤 여인은 철없이 말다툼을 걸기도 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에도 한 멤버 키위 아저씨가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도 불사하고 얼굴이 새까맣게 탈 때까지 2달 동안 낙태반대운동을 했다.

분수령이 된 낙태 합법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는 낙태분야는 1973년 1월, 미국 대법원의 Roe vs. Wade 케이스 판결이 낙태를 합법화시킨 분수령이었다. 미국의 대법원이 그 나라 건국이념과 그 사회의 도덕성 정도를 지탱해온 법체제인 성경적 기준을 짓밟고 불법을 합법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었다.

1973년 1월, 경제적으로 유럽이 하나로 통합되는 유럽경제 공동체(EEC)에 영국이 조인했는데 그때까지 모국 영국을 꼭 붙잡고 있던 뉴질랜드는 모국에 의해 무참히 짓밟힘을 당한 꼴이었다.

뉴질랜드 역사에 획기적 사건이었고, 그때부터 뉴질랜드는 살아남기 위해 호주처럼 아시아 시장개척으로 눈을 돌려야 했고, 오늘날 우리가 뉴질랜드에 이민 와서 살게 된 동기가 됐다. 이러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적은 인구에 비해 불명예스럽게도 뉴질랜드의 낙태분야는 낙태합법화 조류를 따르는데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같이 인구가 많은 나라들에게는 낙태시술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인구억제정책으로 받아들여졌고, 한국에서도 한 해의 낙태건수가 200만 건에 이른 적이 있었다.

낙태 합법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미국 산부인과 버어나드 나타슨의사는 낙태에 의한 과오와 문제점을 크게 깨닫고 낙태반대 운동가로 변신하여 1984년에 제작된 반 낙태 비디오 홍보물‘침묵의 절규(Silent Scream)’의 나레이터가 됐다.

한편, 스페인에 의해 정복당했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 쪽에서도 낙태찬성 목소리가 고조되어 왔다. 대부분 낙태를 반대하는 전통적 가톨릭 국가들이지만, 낙태찬성 단체들이 1990년 이래로 매년 9월 28 일에“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지역에서의 낙태 비차별의 날”로 정해 차별금지를 부르짖어 왔다.

이제는 활동영역을 글로벌 운동으로 넓혀 특히 낙태반대 국가이던 아일랜드를 타켓 삼아 낙태 자유화 운동을 지원했다.
낙태찬성 단체들이 유엔에 “9월 28일을 낙태는 안전하다는 날(Safe Abortion Day)로 제정해달라” 고 반기문 사무총장에게도 보냈다. 뉴질랜드 낙태찬성 단체들도 그 배후에서 이 일에 적극적이며 그 바닥에 깔고 있는 이들의 행동무기는 역시 인권.

이러한 유엔상정 움직임에 반대한 낙태반대 단체들은“낙태는 안전하지가 않다”며 서명운동으로 반대 캠페인을 벌리고 있다. 따라서 낙태 찬성단체들은 낙태 반대 단체들과 빚어지는 충돌을 인권유린이라고 공격하고 있는데 낙태반대가 인권유린인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 회복되는 날이 어서 오기를
이 문제에 대해 크리스천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청은 무엇인가? 서명운동 참여와 같은 크리스천들의 행동이 요구됨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무지의 소치인 낙태는 자신의 죄를 손바닥으로 가리려는 행위인 만큼 진리가 왜곡된 흐름을 잘 인식해야 한다.

1973년 1월에 있었던 낙태 합법화와 영국의 EEC 조인과 같이 그릇된 역사들은 얼마든지 번복될 수 있다는 듯 2016년 6월, 영국 국민들은 Britexit 국민투표로 EU 탈퇴를 결정했다.

뉴질랜드가 크게 희생을 감수했던 1973년 사건처럼 2016년에도 번복이 일어났다. 낙태문제에 있어서도 유엔을 압박한 낙태 안전의 날 제정이 아닌 창조주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경말씀에 기준을 둔 인간생명의 존엄성이 회복되는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임준기집사<오클랜드주님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