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것’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창세기 12:1)

아브라함이 ‘아브람’이던 시절, 그가 직면했던 첫 번째 신앙의 도전은 ‘떠나는 것’이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고향을 떠나는 것과 지금의 ‘이민’과는 큰 온도 차이가 있었다. 거처를 옮긴다는 본질적 의미에서야 일맥상통 할 수 있겠으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고대인(古代人)들의 이민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험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이민은 말처럼 쉽지가 않다(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내신 교민 여러분께 박수를!). 어쩌면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고된 과정을 통과해 지금의 자리에 있는 교민들도 분명 계실 터. 하지만 비유적으로 ‘목숨이 위태로울 만큼 고된 과정’이라는 의미와 ‘정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의미는 분명 다르지 않을까?

한 번 상상해 보자. 공항을 통과하여 무사히 계약된 집(혹은 방)으로 들어온 다음 날, 주변 키위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내가 한국에서부터 고이 들고 온 소중한 물건들을 들고 나가버린다면? 마오리들이 몰려와 아내를 강제로 데려가려 한다면? 이웃집 중국인이 난데없이 수도를 끊고 자신에게 돈을 내야 수도관을 연결해주겠다며 겁박한다면? 아침에 일어났는데 내가 산 차를 뒷집 인도인이 타고 달아나 버린다면?

이런 황당한 일들이 과연 상상이나 되는가? 게다가 이런 부당한 처사에 항의하니 그 공동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게 집단 폭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해보자.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하소연할 곳도 고소할 곳도 없어 스스로 무기를 소지하고 태권도를 연마하며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것이다. 상상을 해봐도 말이 안 되는 이런 일들이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당시 고려해야 했던 실제 스트레스들이었다.

불과 수백 년 전 조선시대의 ‘농경문화’에서도 자신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은 태어난 곳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같은 ‘성’(Family name)을 가진 이들끼리 모여 씨족 사회를 이루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삶, 그런 가족 공동체를 떠난다는 것은 공동체에 큰 죄를 범한 사람이 쫓겨날 경우에만 가능했다.

그리고 그렇게 쫓겨나더라도 가는 길에 산적이나 도적 떼를 만나면 어떻게 됐을까? 신고나 할 수 있었을까? 지도조차 변변치 않던 시절 무슨 수로 범인을 추적하고 실종된 사람을 찾겠는가? 그저 목숨만 부지해도 다행이었다.

험한 산세를 넘어 새로운 곳에 들어왔다 해도 그 공동체로 쉽게 편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보화 사회도 아니었기에 알지도 못하고 검증도 안 된 이방인을 함부로 받아줄 리 없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일종의 텃세에 시달리며 충분히 검증된 이후에, 그것도 운이 좋아야 새 공동체로 편입될 수 있었다.

사회가 문명화, 도시화되며 안전을 책임져주는 전문가 집단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지금 모습의 경찰과 군인이다. 오늘날 치안과 안보의 문제는 과학 기술과 경제의 발전으로 훨씬 더 전문화 되었고 보편화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더 이상 가족 혹은 지역 공동체에 안전을 의지하지 않게 되었고 비로소 개인의 단위로 흩어져 살기 시작했다.

이같은 사회를 이루며 산 것이 한국에서는 불과 100여년, 앞선 서구에서는 불과 200여 년 남짓이다. 그러므로 무려 4000년 전 고대 중동에 오늘날과 같은 보편적 치안 제도가 존재했을 리 없다. 전문가 집단이 있었다 해도 지극히 사조직(私組織)적 성격이 강했고 힘과 권력을 가진 이들을 위한 조직이었다. 힘이 약한 자는 자연스럽게 수탈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약육강식의 시대’ 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자신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아브라함.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그 신은 고향을 떠나야만 목적지를 알려 준다고 한다. 일단은 떠나라는 것이다. 당시 시대적 상황으로 비추어 봤을 때 이는 정말 무책임한 ‘명령’이었다. 고향을 벗어난 순간이 주변 부족의 사냥감이 되는 순간인데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하지만 아브람은 결국 떠났다. 안전한 자리, 익숙한 자리, 편안한 자리를 떠나 부르심을 쫓아 길 한 가운데로 들어섰다. 당시 대부분의 부족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높은 성벽을 쌓을 때, 아브라함과 그의 식솔들은 이 신의 음성에 기대어 길 한 가운데 거주했다. 단단한 성벽 안이 아닌 성 밖 들판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더 위험에 노출시키는 선택이었다.

그러므로 그를 불러낸 신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그의 선택은 충분히 ‘의’로 여겨질 만한 것이었다. 이후로 순간순간 연약한 모습을 드러낼 때도 있었으나, 그의 첫걸음만큼은 신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지목한 것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도 남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신은 아브라함의 군대가 되어주었고 경찰이 되어주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주변에 있는 다른 어떤 부족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받고 크게 번성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번영과는 반대로 세상에서 볼법한 ‘성공한 사람’ 혹은 ‘권력자’ 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번영에 기대지 않고 번영을 허락한 존재에게 기댔기에 가질 수 있었던 특별한 ‘겸허함’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 또한 그가 기댄 존재를 증명하는 하나의 증거가 되었다.

“그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창세기 21:22)

그의 삶은 이야기가 되었다. 그는 또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고. 수많은 사람이 그냥 살다가 그냥 죽어갈 때 그의 이야기는 개인의 삶을 뛰어넘어 신의 이야기의 한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일부는 여전히 믿음의 여정을 따라가는 많은 이들을 위한 ‘의미 있는 출발점’이다.

나는 어떨까? 그분 안에서 진정한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을까? 어디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멋진 출발 지점을 한 곳 소개하고 싶다. ‘떠남’이라는 출발 지점을. 익숙하고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해온 모든 것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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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용욱
단국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 기독교 출판작가, 예술선교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커피’와‘예수님’으로 기독교적 사색을 담은 글을 연재하고 있다. 글쓰기를 배운 적도, 신학 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데 12년 째 신앙서적 내고 있는 이상한 평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