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인가? 선지자인가?

나승식 목사<오클랜드안디옥교회>

현대 교회에서 목회자는 구약 시대의 제사장일까? 아니면 선지자일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둘 다이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내가 거룩하니 너도 거룩하라”라는 말씀처럼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제사장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예배에 전심을 다 해야 합니다. 즉,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함을 함께 체험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임재함이 우리 안에 올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며, 거룩함으로 살도록 몸부림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할 때에 자연스럽게 권위가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권위를 세워야 하나요? 아니면 관계가 먼저인가요? 이 질문에는 당연히 관계가 먼저입니다. 관계 이후에 사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거룩함으로 살려는 애씀, 즉 다시 말하면, 성령 충만으로 살려는 애씀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권위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선자자의 역할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대언하듯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회에서 정말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가 설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설교를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고민하던 것은 도대체 ‘preaching과 Bible teaching의 차이는 무엇일까?’하는 것입니다.

Bible teaching은 진행자가 상대의 상황에 맞게 커리큘럼이나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의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가르치지 않도록 공신력 있는 주석이나 강해 집을 보면서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Preaching도 성경공부와 동일하게 자신의 주장이나 방법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가르치지 않도록 공부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그러나 이전에 한 가지 더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먼저 물으며, 기도하며 확증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제일 어려운 과정인 듯합니다. 그런 후에 나의 묵상과 생각이 바른 것인지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는지 공신력 있는 강해나 주석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설교자는 청중들이 금방 알게 될 뿐아니라, 자신이 고갈되기 때문에 교회의 공동체에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preaching에는 기본적으로 teaching과 말씀 묵상이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preaching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주 친한 친구와 어떤 일을 합의하고 그것을 글로 남겼다고 합시다. 둘의 관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백 년이 지난 후에 어떤 사람들이 약속한 내용을 보고 그 사람들의 마음을 알지 못하면서 글자만 해석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설교를 위해 일주일 내내 고민하던 것을 토요일에 준비하면 10시간 정도 소요됩니다. 대개 원고를 쓰기 시작할 때 무엇을 써야 할지 전체 틀은 명료하게 잡힙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알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신 그 마음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작업이 힘듭니다. 말씀을 통해 제 마음속에 충만한 하나님의 마음을 교인들과 함께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단 하나의 단어, 단 하나의 표현을 어떻게 만드냐가 관건입니다. 씨름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아무리 강하게 느껴도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하나님 입장에서 설교란?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서 그 마음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의 언어로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행위가 바로 설교인 것입니다.

청중의 입장에서 설교란? 청중의 눈을 덮고 있는 비늘을 벗겨주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그릇된 욕망과 잘못된 습관들, 그리고 이생의 자랑의 유혹으로 세상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비늘이 있습니다. 그 비늘을 벗기고 하나님의 기준과 마음을 알며, 삶 속에 순종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 입장에서 설교란? 바로 헌신입니다. 내가 살아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제대로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서는 사람으로부터 칭찬도 듣지만, 핀잔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입니다. 이러한 헌신의 수고와 노력함이 없는 설교자는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이사야서를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어서 나누고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사야 6장에서 “누가 나의 백성들을 위하여 누가 갈꼬” 하실 때에, 이사야가 “내가 갈게요”하고 말을 합니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을 뿐더러 더욱 완악하여 질 것이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지만, 이사야는 전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거룩한 씨인 그루터기를 남겨 주시겠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20장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선포할 때에 말 뿐아니라, 벗은 몸과 벗은 발로 3년 동안 다니라고 하십니다. 이것을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묵상하게 됩니다.

벗은 몸으로, 벗은 발로? 처음에는 너무 하시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나라면 이 말씀에 순종 할 수 있을까? 라는 마음도 들면서 ‘설마 그렇게 까지?’라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백성이 돌아오며, 또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시어 십자가를 지게 하실 때 더한 모욕과 수치를 감당하며,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이사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선지자 이사야이기에 자신이 수치스럽다 할지라도 기쁨으로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가 묻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갈 것이냐고, 나의 백성들을 돌이키는 데에 우리가 필요하다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삶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라면 가야죠, 해야죠, 엎어지고 넘어진다 할지라도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아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는 거룩한 제사장의 삶을 살아야 하지만 이사야와 같은 선지자의 삶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사야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