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몸부림으로서 흔적 온라인 예배

성경을 보면 우리가 의도치 않게 록다운을 경험했던 것처럼 인생에 록다운을 만나 몸부림쳤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감옥에 들어갔던 요셉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운데에서도 그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상에서 만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맡은 관원장. 그들의 꿈을 해석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이집트 파라오의 꿈을 해석하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흉년으로부터 구원한다.

감옥에 갇힌 바울 그저 죽을 날만 기다리며 불평하고 우울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가장 슬프고 힘든 장소에서 넘치는 기쁨을 편지로 오히려 갇히지 않은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하고 믿음에서 떠나지 않도록 권면하며 사랑과 눈물로 썼던 그의 편지는 이제 우리가 읽는 성경이 되었다.

70년간 바벨론의 포로로 록다운을 경험했던 이스라엘 백성 역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할 수 없는 가운데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일상을 살아냈다.

십자가에 달리셔서 정말 실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예수님은 자신을 찌르고 조롱하던 이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시고 숨을 거두시며 삼 일 후에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의 주가 되셨다.

사실 록다운 기간 교회가 에센셜이 아닌 것에 대한 좌절감이 내 속에서 끊이지 않았었다. 뭔가 해야 하는데 하지를 못하니 목회자로서의 정체성과 예배는 무엇인지, 교회는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과정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찾아서 했던 것이 바로 온라인 사역이었다.

주일예배를 위해 온라인 영상에 한국어 자막을 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성도들에게 전화하고, 이메일을 쓰고, 때로는 줌이나 행아웃을 통해 영상으로나마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비단 나의 모습뿐만 아니라 모든 목회자가 록다운 기간 동안 교회의 교회 됨을 위해 몸부림치며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교제를 이어나가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동안 한 번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유튜브 라이브 영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상작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막 작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코로나 이후도 뉴노멀의 시대를 생각하고 대비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록다운의 하루하루를 살아내기도 버거웠었음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온라인 예배는 그저 시대가 변하기에 그 변화를 급급히 따라가다 만들어진 산물이 아닌, 그래도 할 수 없는 가운데 무언가를 해보려는 교회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요셉처럼 바울처럼 지금 이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는 교회 가운데 하나님은 분명 그분의 선하신 계획을 이루고 계시고 있음을 믿는다.

또한 옹알이를 시작한 아기가 처음에는 그저 한 단어, 두 단어만 말하다가 어느 순간 완전한 문장을 말하듯, 온라인이라는 변화가 어색하고 아직은 훌륭한 모습이 아니지만 끝까지 그리고 꾸준히 하다 보면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할 훌륭한 무기들 중 하나가 될 것을 확신한다.

여러 성도들에게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자가 얼마나 몸부림치며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는지의 노력의 이야기들은 나 자신에게 큰 도전이 되었다. 어떤 목사님은 일일이 성도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어떤 목사님들은 새벽마다 줌을 통해 새벽기도회를 가졌다.

또 어떤 목사님은 레벨이 하향됨에 따라 성도들의 집에 사회적 안전거리를 지키며 작은 선물을 배달했고, 어떤 목사님들은 녹화영상을 찍고 또다시 찍으며 그래도 어떻게든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했다.

역사 이래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여정 속에 그 누구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믿음으로 도전하는 모든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어둠 속에 빛을, 사망 가운데 생명을, 묶임 가운데 해방을, 아픔 가운데 치유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록다운 속에서 태동하는 교회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 일을 행하시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