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 자유롭되 고독한 음악가

브람스를 가리켜 흔히 자유롭되 고독한(Frei aber Einsam) 음악가라고 합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을 혼자 살았으니 고독하였을 터이고, 혼자 살면서 음악에 전념하였으니 자유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자유로운 영혼이 한 가지에서만은 온전히 자유롭지 못하였으니 그것은 베토벤의 그늘입니다.

당대의 명 지휘자이자 음악 비평가였던 한스 폰 뷜러는 바흐와 베토벤, 그리고 브람스를 묶어 ‘독일 음악의 3B’로 호명하며 브람스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브람스가 각고의 노력과 엄청난 시간을 들여 드디어 1번 교향곡을 내놓았을 때 ‘우리에게 드디어 10번 교향곡이 생겼다’고 말한 것도 이 사람이었습니다.

9개의 뛰어난 교향곡을 내놓아 사실상 교향곡을 완성했다는 평을 듣는 악성 베토벤의 업적을 생각할 때 그의 뒤를 잇는 10번 교향곡이라는 평은 어떻게 보면 최대의 찬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브람스의 첫 교향곡에 드리워져 있는 베토벤의 그림자가 그만큼 역력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브람스, 거인의 발걸음 소리에 쫓기던 신중한 작곡가
브람스는 원래 젊었던 스물한 살 때 교향곡을 작곡하려고 시도했지만 중간에 마음이 바뀌었기에 이 시도는 ‘피아노 협주곡 제1번’으로 끝맺음 되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다시 교향곡 작곡에 착수했지만 브람스 특유의 신중한 성격과 베토벤이 남긴 아홉 개의 걸작 교향곡으로부터 받는 부담(브람스는 이 부담을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라고 했습니다) 때문에 작곡은 쉽게 앞으로 나가지 못했습니다.

작곡을 시작한 지 7년 뒤인 1862년에 겨우 1악장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12년의 세월이 지난 1874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작곡에 전념하여서 2년 뒤인 1876년에 첫 교향곡을 내어놓았습니다. 작곡을 시작해서 완성되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 그가 얼마나 이 곡의 작곡에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거인의 발걸음 소리’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썼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작곡을 마쳤을 때 그의 나이 43살이었습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1번 작품 68, 전통의 맥을 잇다
브람스는 첫 교향곡을 내놓음으로 고전주의의 대표적 장르인 교향곡의 전통의 맥을 이으며 베토벤 이후 침체하였던 교향곡의 물꼬를 트는 큰일을 했습니다. 물론 한스 폰 뷜로가 10번 교향곡이라고 했듯 이 곡에는 곳곳에서 베토벤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1악장의 호른 주제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주제를 닮았고, 4악장에도 ‘합창 교향곡’의 ‘환희의 주제’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곡 전체에 흐르는 브람스 특유의 심각하고 우수에 젖은 분위기는 이 곡이 다른 누구의 것이 아닌 브람스의 교향곡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베토벤처럼 크고 당당한 발걸음은 아니지만 느리고 신중한 브람스의 발걸음이 교향곡을 향해 첫걸음을 떼어놓은 것입니다.

느린 서주부로 시작되는 1악장, 독주 바이올린과 감상적인 오보의 선율이 브람스 특유의 서정을 자아내는 2악장, 통상의 교향곡 3악장의 스케르초나 미뉴에트가 아닌 새로운 스타일의 우아하며 쓸쓸한 3악장, 명상에 잠기면서도 기쁨과 환희를 노래하는 4악장으로 구성된 이 교향곡은 어쩌면 그의 4개의 교향곡 중 가장 브람스 적인 곡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연주가 많지만 우리는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연주로 들었습니다.

이날 화요음악회에서 들은 또 하나의 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작품 77번

브람스의 단 하나뿐인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이상하게도 베토벤도 멘델스존도 차이콥스키도 모두 단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이 단 하나의 협주곡이 모두 뛰어난 걸작이어서 이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모아서 세계 3대 혹은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부르니 참 놀랍습니다.

헝가리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요아힘(Joseph Joachim)은 브람스보다 두 살 위이지만 브람스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국제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어렸을 때 요아힘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엄청난 감동을 느꼈던 브람스는 그를 마음속으로부터 존경했습니다. 요아힘도 브람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슈만 부부에게 소개해주어 브람스에게 음악가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브람스는 그 고마움을 평생 잊지 않았고 두 사람의 우정은 그때부터 지속하였습니다.

브람스는 이 고마운 친구 요아힘을 위하여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고 헌정했습니다. 1879년 1월 1일 브람스의 지휘와 요아힘의 바이올린 독주로 열린 초연은 꽤나 성공적이었습니다. 브람스의 모든 협주곡이 그렇듯이 이 곡도 교향적인 성격이 강해서 혹자는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 아니라 ‘바이올린에 거슬리는 협주곡’이라고 빈정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당하고 중후한 오케스트라와 어울리는 바이올린이 빚어내는 음악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브람스다운 깊이를 보여주는 곡입니다. 결코 친해지기 어려운 곡이 아니며 특히 2악장의 목가적인 아름다움은 절창입니다.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의 바이올린 연주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은 브람스의 것입니다. 왜냐고 물으면 지네트 느뵈(Ginette Neveu)의 연주를 이야기합니다.

까마득한 옛날 젊은 시절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다가 저는 온몸이 감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브람스가 요아힘의 베토벤 연주를 듣고 느꼈던 비슷한 경험이 아닐까 합니다.

누구의 연주인가를 알아내기 위하여 방송국에 전화까지 하는 극성 끝에 그 곡이 1948년 Hans Schmidt-Isserstedt가 지휘하는 북독일 방송관현악단과의 협연으로 지네트 느뵈가 연주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곧장 음반 가게를 뒤져 구한 CD를 듣고 또 들으며 30년 넘게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습니다.

1919년 파리에서 가난한 부모 아래 태어난 느뵈는 16세 때인 1935년에 제1회 비니아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열 살이나 위였던 명장 오이스트라흐를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놀라운 집중력과 격렬함 그리고 자기만의 창조적 연주를 구사하는 그녀는 모든 바이올린의 권위자를 놀라게 만드는 재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아, 왜 세상의 천재들은 그렇게 단명해야 했는지! 성공의 절정에 올라있던 1949년 나이 30세 때 미국으로 연주 여행을 떠나는 도중 비행기 추락으로 인하여 그만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사랑했던 애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비행기 안에서 죽음마저 같이 껴안은 것입니다.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녀가 가장 좋아했고 또 마음껏 그녀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곡이었습니다. 이 CD에 수록된 연주는 그녀가 죽기 1년 전 1948년에 독일 함부르크에서의 실황 녹음입니다.

음악 감상을 마치고 같이 본 하나님 말씀은 베드로 후서 3장 8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브람스는 천천히 성실하게 살다가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느뵈는 불꽃 같은 능력의 여인이었지만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래 살든 짧게 살든 주님께서 보시는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렇기에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길고 짧음에 연연하지 말고 주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어가며 매일의 삶을 충실히 사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