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왜 자기가 있는 자리에 만족하지 못할까

우리는 드넓은 평야에 바다가 보이고 푸르른 잔디가 있는 평화로운 주변을 가진 집을 소유하는 꿈을 꾼다. 많은 사람이 열심히 일하다가 노후의 삶을 찾으러 시골의 그런 환경을 찾아서 도시를 떠난다.

그와 반대로, 조금만 나가도 강과 바다가 보이고 드넓은 평야에 양과 소가 보이는 환경에 사는 먼 작은 마을 사람들은 차가 많고, 사람이 많으며, 번쩍번쩍하는 대도시를 꿈꾸며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꿈꾸고 탈출(?)하려는 노력을 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고 산다면 남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고 있었을 텐데…

불현듯 내가 공부하고 있는 옷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들이 어떻게 서로 행복하게 옷의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만족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옷에 인격을 부여해보며 옷의 측면에서 생각해보았던 대학교 2학년 때의 작품 이야기다.

옷과의 대화
항상 우리는 윗옷에 먼저 눈이 가고 그다음에 아래옷을 보게 된다. 윗옷도 알고 있다. 아래옷도 언젠가는 튀어보고 싶고 먼저 귀염받고 싶어 하는 갈망하는 마음을.

그래서 이번에는 윗옷이 희생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어서 아래로 가고 아래옷에 먼저 드러나는 자리를 주기로 했다. 그렇게 그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와서 낮은 위치에 있는 자를 높은 자리로 올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남을 도왔을 때 조금 더 그 만족감은 오래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을 돕는다는 것에는 그들에게 베풀었던 것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정말 순수한 도움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참으로 희생적이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태도였다.

그러던 중 전에 봤었던 “Amish Grace”라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생각이 났다.
미국에서 사는 아미쉬라는 현실 문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는 공동체에 어떤 남자가 아이들이 있는 학교에 침입해서 소녀들 10명을 총으로 사살하고, 본인은 자살로 결말지었던 충격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비극적인 사고가 영화화되었던 것은 그 사건 이후의 그 마을 부모들의 태도였다.
그 피해 부모들은 용의자를 용서하기 쉽지 않았지만, 그 용의자의 가족들에게 먼저 가서 그를 용서하겠다고 했고 그 이유는 성경에 남을 용서하라고 쓰여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아가 용의자 가족들에게 혹시 도움이 필요할 경우 돕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가족들의 태도는 아까 만족에서 말했던 희생적이며 남을 자신보다 생각하는 겸손의 태도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미쉬 사람들은 깔끔한 테일러링이 바탕이 된 정장이나 하얀색 셔츠 등의 위주로 옷을 입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아미쉬 느낌의 바탕과 윗옷, 아래옷과의 대화를 통해 높고 낮음이 융화된 아래옷의 섬세함을 윗옷에 넣고 그 반대로 윗옷의 디테일들을 아래옷에 표현하는 옷을 제작했었다.

Awareness
전에 옷을 만들 때 Awareness 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사용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표본이 완성되어 직접 입어 착용해보아야 하므로 그 주일날 ‘AWARENESS’라는 프린트가 된 맨투맨을 입고 주일 예배를 참석하게 되었다.
찬양 가운데 너무 은혜가 되었고 손을 들고 찬양하고 싶어졌다. 손을 들려는 순간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하나님 앞에 사업적으로 정직하지 못했던 것들이. 90% 정직했더라도 10%정직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거짓이며, 나의 사업이 금전적으로 힘들어지던 가운데 가격을 조금 낮추어 이야기했던 것들이 떠오르게 되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겠다는 자가, 또 그것을 대놓고 표면으로 옷을 입은 자가 뻔뻔함으로 하나님 앞에 그분을 Aware 한다고 할 수 없었다.

그 옷을 입고 갔던 예배 가운데 많은 눈물과 회개가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정직했을 때 더욱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아무 가리는 것 없이 우리의 하나님을 AWARE하고 살아가는 것에는 우리에게 참 자유가 허락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