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해방과 존 웨슬리

노예 해방 하면 윌버포스(Willam Wilberforce 1759-1833)가 떠오른다. 2007년에 개봉된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나이 21세에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것도 주목할 만하지만, 그가 유명한 것은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통과(1807년)시키기까지의 열정 때문이다.

그 열정은 멈추지 않고 평생 계속되어 36년 뒤에는 노예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법안을 확정(1833년 7월 26일)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든 법안이 확정된 불과 이틀 뒤에 그는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숨을 거두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 여러 가지 일화가 그를 기억하도록 돕고 있다.

윌버포스와 웨슬리
윌버포스의 일화 속에서 존 웨슬리 목사님을 찾기는 어렵다. 웨슬리의 일기에도 1789년 2월 24일 화요일 “윌버포스와 유익한 대화를 나누었다”는 간단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렵게 찾은 기록을 자세하게 분석하면, 그날 윌버포스와의 대화가 몇 시간 동안 이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암호로 기록한 일기 쓰기 방법을 이해하고 일기의 원본을 구해서 읽을 수 있다면 점심 식사 시간도 잊고 대화에 몰두했다는 사실까지 어렵지 않게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대로 출판된 일기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의견이 일치했다는 사실이다.

그때 윌버포스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노예무역 폐지 법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이 30세 청년 윌버포스와 나이 86세 할아버지 웨슬리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 그들의 생각과 열정이 서로 통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윌버포스에게 보낸 웨슬리의 편지
1791년 2월 24일 목요일은 중요한 날이다. 윌버포스와 유익한 대화를 나눈 뒤 2년이 지났다. 웨슬리는 자신의 일기 마지막 페이지에 날짜와 요일을 기록하였다. 그것이 끝이었다. 내용은 기록하지 않았다.

웨슬리는 평생 하루도 빼먹지 않고 기록하던 자신의 일기장을 덮었다. 추측하기로는, 더 이상 펜을 들어 기록할 힘이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웨슬리는 남은 숨을 몰아쉬며, 세상을 떠날 마지막을 준비했다.

이틀 뒤에야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서, 마지막 힘을 다해 한 장의 편지를 썼다. 윌버포스에게 남기는 편지였다. 그리고 사흘 뒤에 평안히 세상을 떠났다. 웨슬리의 마지막 기록이 윌버포스에게 남긴 편지라는 사실은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와 인종차별이 동시에 뉴스가 되는 오늘날우리에게 많은 이야기와 숙제를 남긴다.

그 편지를 읽기 쉽게 번역하여 소개한다.

의원님을 “세상에 저항하는 아다나시우스”로 세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 없었다면, 신앙심과 영국과 인간 본성의 부끄러움인 이 지독한 악행에 저항하는 의원님을, 이 영광스러운 싸움을 싸워가시는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하도록 의원님을 세워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사람들과 악마들의 반대에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지쳐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원님 편에 함께 계시면 누가 의원님께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과 악마들의 반대가 하나님보다 더 강합니까? 선한 일을 하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그 크신 능력으로 버티십시오. 그 앞에서(해 아래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가장 지독한 악행인) 미국 노예제도까지 모두 없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그 크신 능력으로 계속하십시오.

오늘 아침에는 한 사람 불쌍한 아프리카인이 직접 쓴 글을 읽었습니다.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이 백인에 의해 잘못되고 유린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잘못을 바로잡을 수 없다는 처참한 환경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백인이 저지르는 어떠한 일도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우리 모든 식민지의‘법’이랍니다. 이런 지독한 악행이 무슨 일입니까?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의원님을 인도하신 주님께서, 이 일과 모든 일을 할 수 있도록 힘주시기를 제가 기도합니다. 친애하는 의원님, 의원님을 사랑하고 후원하며 편지 드립니다.
1791년 2월 26일 토요일

큰 어려움으로 힘들어하던 때에 웨슬리의 손편지를 받았다. 웨슬리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도 함께 전해졌을 것이다. 윌버포스는 다시 법안을 상정했지만 이번에도 부결되었다. 계속되는 반대와 부결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지치지 않고 평생 같은 일을 계속했고, 결국 노예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윌버포스와 웨슬리의 마지막이 닮은 것도 뜻밖의 일화이다. 인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에, 가장 의미 있는 일을 마무리하고 세상을 떠났다.

웨슬리의 암호 일기
웨슬리의 암호일기를 추적하며 그가 사용했던 시스템과 방법을 실제로 사용하면서 얻는 선물이 있다.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가는 작은 순간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하는 행복이다. 그가 일기를 쓰면서 만들어 놓은 방법과 스타일이 아니라면 이해하기도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수많은 일들이 아주 쉽게 드러난다.

솔직한 삶을 살았고, 단순한 삶을 추구했고, 대놓고 행동했던 그의 삶이 암호 속에 시스템과 방법으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젊어서 시작하고 평생 계속하였던 그의 일기 쓰기가 그동안 묻혀 있던 일화를 세상에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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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환
감리교 신학대학원 졸업. 뉴질랜드 트리니티 대학에서 리더십에 관한 교사와 연구 학생으로 수학했으며, 현재 뉴질랜드 감리교회가운데 한 교회에서 영어 설교 목사와 한인 제자들교회 담임을 하고 있다. 존 웨슬리 암호 일기 연구해 “방법쟁이” 책내고 자기만의 암호 일기를 기록할 수 있는 방법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