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you Dad

전에 인터넷 기사로 본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어떤 남자가 아주 고가의 유럽 새 차를 장만했다. 그 남자는 기쁜 마음에 열심히 주말에 세차를하고 있었고, 세차를 하던 중 미세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차 반대쪽에서는 4살배기 아들이 평소에 벽에 크레파스로 낙서를 하던 것처럼 아주 값비싼 새 차에 조그만 돌을 주워서 낙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차를 하던 남자는 그것을 발견하고 이성을 잃었고 아들의 손을 잡아 니퍼로 여러 차례 내려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아들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그리고 아들은 정신을 잃었다. 병원으로 아들은 옮겨졌고 병원 측에서는 아들의 손에 골절과 심한 손상으로 인해 손을 못 쓰게 될 것 같다고 하였다.

의사와의 상담 이후에 아버지는 병실에 앉아있는 아들에게 돌아왔다. 아들이 “아빠! 내 손이 다시 자랄까요?”라고 물었을 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간 아버지는 차를 걷어차며 걷잡을 수 없는 후회에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아들이 차에 했던 낙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곳에는 “love you Dad”라고 쓰여 있었다.

이 기사를 읽고 나는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항상 가족이나 사람과의 관계들을 옷으로 표현해보던 나에겐 ‘저들의 관계 가운데 어떤 부족함이 있었기에 이런 아픈 사고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앞만 보고 일만 하던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Communication
부모님의 야근과 주말 근무가 당연했던 한국은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에 같이 밥을 먹을 기회가 잦지 않았다. 밥상 위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열심히 자녀들을 위해 일했기에 자녀들에게 당연히 좋은 성적을 기대했고, 자녀들은 항상 성적보다는 부모님의 사랑이 고팠던 것이다. 그로 인한 대화의 부족은 서로를 이해 못하고 많고 잦은 다툼을 일으켰었다.

지난 호에서도 사랑의 표현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었는데, 자녀들의 낙서나 표현하는 것들도 대화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녀들이 집안에 하는 낙서는 부모에게 많은 스트레스가 되지만 혹은 그것이 그들의 부모에 대한 사랑 표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성가신 낙서가 부모의 일터에서 힘이 되어 함께하고. 또 자신의 개성이 표현된 방법이 적용된 옷을 입음으로 부모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존중받는 느낌이 들 것 같았다. 그래서 낙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원단으로 컬렉션을 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자녀들만 위한 것 같지만 누구든지 일을 하면서 그 일하는 목적을 잊는 경우가 많다. 매일의 직무에 지쳐서 일 가운데 공허함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자녀들의 흔적을 일터로 가져간다는 방법을 통해 일하는 곳에서 그런 낙서를 옷으로 입음으로 자녀들과 연결되고, 기억하게 되고, 또 그런 것들이 힘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 태도들은 골로새서 3장 12~14절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말씀과 굉장히 닮았다고 느꼈다

패션 학교 다닐 때의 작품이라 정말 일터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지만 오피스를 강조하는 수트나 테일러링에 베이스를 둔 옷을 만들었고 여러 가지 낙서 모양을 클래식 한 패턴으로 모아서 프린트로 제작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일터에서 느꼈을 외로움을 생각해보며 하나님 말씀도 옷에 적용됐던 아주 뜻깊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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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석
더니든 오타고폴리텍 패션디자인과 졸업. 남녀 공용 의류 브랜드 invis-Able(인비스에이블)에서 디자이너로 있으며, 그의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옷에 대한 의미나 생각들을 그저 일상에서 입는 옷보다는 삶과 신앙에 적용해 보는 것으로 함께 들여다보며 소통하는 그의 옷에 대한 일상을 입어 보는 글을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