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같은 날

싼 옷의 실밥은 쉽게 풀린다. 시장 골목에서 산 속옷이 바지 속에서 흘러내리듯이. 단추도 금세 떨어진다. 싼 신의 끈은 단단히 매듭지어 묶어도 잘 풀린다. 무늬만 가죽인 구두코는 늘 뭉개져 있다. 가방 대신에 옆구리에 낀 서류 봉투는 부푸러기가 인다. 출근하는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가 내린 사내의 머릿기름은 땀내와 섞여 쾨쾨하다. 일은 끝이 없다. 하루를 시래기 국밥 한 그릇으로 버틴다.

하루는 반복된다. 반복되는 하루는 지루하다. 지루한 일상은 지겹다. 지겨운 하루에서 일탈을 꿈꾼다. 일상에서 이탈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린다. 가족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럼, 일상으로 돌아온다. 사람은 많고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적으니 하루의 일상이 피곤하고 고단하다. 전쟁 세대의 가장인 아버지의 일상이다.

세상에는 빈부의 차이가 있다. 공정과 공평으로 기회가 균등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부정과 부패의 고리가 있다. 돈과 권력에 의한 차별이 있다. 차별은 계급으로 나뉜다. 신분의 경계가 있다. 또한, 부와 일의 세습이 있다. 돈과 권력이 있는 곳에는 세습이 있다. 일상적인 기회까지 세습으로 이어질 때 오는 박탈감은 크다. 세상은 언제나 부조리의 연속이다.

그러다 보니, 돈을 버는 사람과 권력을 가지려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것보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적다. 중요한 사람보다 소중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

누구나 평생을 살아도 하루에서 시작해서 하루로 마친다. 물질적인 것들이 전보다 모든 것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지금을 살아가는 세대 또한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버겁다. 일상을 사는 의미나 가치가 사라지면, 반복되는 일상으로 멈추어 버리거나 뒤로 밀려갈 수도 있다.

지루하다고 느끼는 하루를 의무가 아닌 의미 있는 일상으로 살아낼 수는 없는가. 평생을 살아도 소중한 하루이다. 하찮은 하루는 없다. 하루에 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로 일상의 참된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일상은 존중받을 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스스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이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남을 존중해야 내가 존중받을 수 있다.

하루를 잘하는 것부터 시작하라. 쉬운 것부터 천천히 하라. 한 걸음을 걷듯이 걸어라. 그리고 하루를 모두 생각하지 말고 더디 가더라도 한 번에 한 가지씩 해보자. 그럼 산만한 생각이 정리된다.

부족하고 결여된 것에 집착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집중하라. 뻔한 생각을 버리고 보다 구체적인 일을 담아내라. 그럼 흔한 일상을 피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거든 혼자서라도 음악에 맞춰 노래하든지 춤을 춰 보라. 아니면 가사를 써 본다거나 나름 멜로디라도 적어 보라. 더 나아가 일상을 성경 중심으로 살다 보면 일상에 향이 금방 나지 않더라도 한 줄기 고운 꽃 같은 날이 될 것이다.

이전 기사이 땅의 부흥을 위한 기도 필요해
다음 기사두 번의 전화 벨
이승현
크리스천라이프발행인. 1997년 1월 뉴질랜드 현지교단인 The Alliance Churches of New Zealand 에서 청빙. 마운트 이든교회 담임목사. 저서로는 '하나님의 아가', '예수님의 아가' 시집이 있으며 단편소설 '마른 강' 외 다수 와 공저로 '날마다 가까이 예수님을 만나요'가 있다.